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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사비나 Apr 27. 2024

ADHD 학생을 위해 시험 시간을 늘려줄 수 있나요?

우리나라 공교육은 다양성을 대비하고 있을까

"얘들아, 다 했니? 이제 넘어갈게."

영어 본문을 열심히 설명하고 내가 판서한 필기를 다 썼는지 아이들에게 물어본다.

학습자의 이해를 확인하는 것은 교사가 되기 전 교육학 전공 서적에도 명시되어 있는 교사의 수업 스킬 중 하나다. 가르치는 이가 학습자의 학습 속도에 맞추고 있는지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올해 맡은 반 아이 중에 조용한 ADHD가 강하게 의심되는 학생 하나가 있다. 아이는 맨 앞자리에 앉아있지만 시선은 나를 보고 있지 않다. 어떤 다른 학생들보다도 나와 가장 가까이에 앉아있지만 아이는 어딘가 다른 세상에 있는 느낌이다. 아이의 초점을 보면 알 수 있다.


"얘들아, 다 적었니? 이제 넘어가겠습니다."

모두가 페이지를 넘길 때, 상현이는 가만히 멈춰있다.

"상현아, 지금 24쪽 봐야 해."

"아."

그제야 넘어가는 상현이의 교과서.


ADHD 아이들은 주의력 전환이 잘 되지 않는다. 45분이라는 정해진 시간 안에, 정해진 교과목 지식을 다 전달해야 하는 학교 시스템에서는 ADHD는 아주 불리하다. ADHD 아이에게는 사실 이렇게 가르쳐줘야 한다.

"상현아, 지금 칠판에 있는 이 필기를 네가 5분 동안 다 적어야 해."

다른 아이들은 내가 칠판에 판서를 하면 자동으로 적어 내려 가지만 ADHD 아이는 그렇지 않다. 공상에 빠져 있거나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 채 시간만 보내고 있는 경우가 많다.

"상현아, 다 적었네. 잘했어. 이제 24쪽으로 넘겨."

"얘들아, 다 적었니? 이제 넘어가자."라는 말보다 더욱 구체적인 행동과 시간을 알려줘야 움직이는 ADHD 아이들이다.



ADHD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은 어떤 면에선 토끼처럼 방방 뛰어서 힘들지만, 어떤 면에선 거북이처럼 느려터진 아이의 행동을 보면 답답함에 한숨을 푹푹 쉬는 게 일상이다. ADHD 아이의 지시 수행이 느린 것은 아이의 의지 문제가 아니다. 바로 '처리 속도'가 느리기 때문이다.


ADHD 아이의 이런 느린 처리 속도는 지필 고사 시험을 칠 때도 큰 영향을 준다. 지필 고사에서는 주어진 시간 안에 얼마나 많은 양의 문제를 정확히 풀어낼 수 있는지를 평가한다.


몇 년 전, 영어 교사를 위한 국외 연수에 참여한 적이 있다. 미국의 교육제도를 가르쳐주는 교수님의 수업을 들었던 날이다. 미국은 다양한 인종과 이민자들이 살아가는 나라인 만큼 '다양성'의 가치를 아주 중요하게 생각한다.


특히, 외국에서 이민 온 사람들을 위해, 표준화된 시험 문제를 그 사람의 본토 언어와 영어로 같이 표기하거나 시간을 더 주게 되어 있다는 점에서 굉장히 놀랐다. (물론 주마다 다를 수는 있다.)


신기한 것은 이런 다양성의 가치는 언어에만 있는 것이 아니란 것이다.


바로, 신경다양성(Neuro Diversity)을 존중하는 문화.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ADHD 아이들에게도 시험 시간을 추가적으로 더 주고 있다.


"선생님, 아이가 ADHD인데
시험 시간을 늘려주실 수 있나요?"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요구가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날이 올까?


ADHD 아이들은 처리 속도가 느리기에 제대로 그 지식을 이해하고 적용할 수 있는지 평가받기가 어렵다. "시간 안에 푸는 것도 실력인데요?"라고 말한다면 할 말은 없다.


그러나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ADHD가 미국형 캐나다형 ADHD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닐 것이다. 그 나라는 처리속도가 느린 ADHD 아이를 배려 대상으로 보고, 우리나라는 골칫거리로 본다는 것이 차이점이겠다.


나 역시 공교육에 종사하는 교사로서, ADHD 아이에게 추가 시간을 준다는 것이 상상이 가지 않는다. 그러나 미국과 캐나다는 가능하고 우리나라는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지, 깊이 생각해 보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도 ADHD 진단이 늘어나고 있다. 우리나라의 공교육은 신경다양성의 아이들을 위해 어떤 대비를 하고 있을까? 아이를 병원으로만 몰아넣고 약을 털어 넣으며 등교하는 일상. 지금의 인식과 지금의 학교의 시스템으로는 이 아이들의 도전 정신, 몰입, 에너지, 창의성 등의 강점을 발휘하기엔 한참 모자라다.



미국의 중학교에 실습을 갔을 때 봤던 모습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아이들 개개인의 특성을 존중하는 교실의 모습을. Reading Class에서의 아이들의 자유롭고 자율성이 존중받는 그 교실의 평화로움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미국의 중학교 수업 모습. 코로나 이전의 학교 모습이다.


ADHD 아이들에게 짐볼이나 소파는 과잉행동을 해소하고 지루함을 줄일 수 있는 좋은 도구이다. 일렬로 앉아 수업을 듣는 모습이 아닌, 아이들이 지식을 탐구하고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다가가 말을 건다. 이 교실에서 공부할 세모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각성제를 먹고도 지적받을까 긴장하고 있는 모습이 아닌, 편안한 얼굴의 세모를.



다양성이 존중받는 문화권을
일부 목도한 교사로서,
이렇게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에 태어난 이유로
ADHD 아이는 더 힘겨운 싸움을
해야 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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