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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사비나 May 04. 2024

"지금 선생님을 무시하는 거니?"

ADHD를 도덕성으로 판단할 때 생기는 문제

"형주야, 조용히 하자. “

"저요? 저 말 안 하고 있었는데요?"

"지금 계속 떠들어서 선생님이 수업을 못 하고 있잖아."

"네."


1분 뒤.

"김.형.주. 선생님 말 무시하는 거니?"

"네? 왜요?"

"수업 끝나고 교무실에서 보자."


교무실에 온 형주는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는 눈치였습니다.

"김형주, 선생님이 조용히 하라고 했으면 조용히 해야지. 그런데 계속 떠드는 건 뭐야?"

"아, 시영이한테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떠들지 말라고 했는데 계속 떠드는 건 왜 그러는 거니? 선생님이 말 하자마나 몇 분도 안 돼서 다시 떠드는 건 선생님을 무시하는 거잖아."

"아닌데요?"

더 이상 형주에게 할 말을 찾지 못해 지도를 멈춰야 했습니다.


ADHD가 있는 형주를 맡은 교사는 왠지 모르게 매번 기분이 나쁩니다.

수업 중에 계속 말을 하는 형주를 지도한 일이 이번 한 번이 아니었습니다. 준비한 수업을 다 마치지 못한 데다가 아이의 퉁명스럽고 배려 없는 말투에 한번 더 상처를 받는 일이 계속 반복되고 있었습니다.


형주가 수업 중에 좀처럼 집중하지 못하고 계속 떠드는 이유는 형주의 ADHD 때문입니다. 단지 착석이 안 되고 방방 뛰고 분노 조절을 못하는 아이들만이 ADHD가 아닙니다. 형주처럼 집중 시간이 짧고, 자꾸 머릿속에 생각들이 많아져 기어코 친구에게 말을 걸거나 혼잣말, 흥얼거리기 등을 하는 모습도 전형적인 ADHD의 모습입니다.


또한, ADHD 아이들은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고 사회적 상황을 인지하는 전두엽의 발달이 또래보다 늦기에 '어른에게는 공손해야 한다' '어른에게는 이런 말투와 이런 표정으로 얘기하면 안 된다'라는 것을 잘 모릅니다. 사회성 발달은 특히나 약물 치료로 해결되지 않는 부분이 많기에 교사가 느끼기에 '버릇없다'라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


만약, 우리 반에 ADHD 아이가 있다면 교사들은 이런 답답한 대치 상황을 자주 마주할 것입니다. 이럴 땐, 사실 또래 아이의 기준에 맞춰 ADHD 아이를 바라보면 지도가 어려워집니다. "대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 거야? 나를 무시하는 거야?"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ADHD를 갖고 태어난 아이들은 사회성 발달이 2, 3살 느린 아이들입니다. ADHD가 있는 학생을 가르치실 때, 항상 2, 3살 더 어린 학생을 가르치고 있다고 생각해 주세요. 중2 아이를 가르치는 선생님이시라면, 초등학교 6학년 학생을 가르친다 생각하셔야 합니다.


화용 언어란, 상황과 상대에 맞는 언어를 말합니다. 화용 언어 발달이 잘 이루어진 아이는 상대방의 말의 의도를 잘 이해하고, 상대방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자신의 말과 비언어적 표현까지도 조절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회성 발달이 느린 ADHD 아이는 이 화용 언어 부분이 잘 되지 않습니다.


형주의 이야기에서도 사실 "네, 선생님. 죄송합니다." 한 마디와 죄송한 자세, 표정, 눈빛이 있었다면 선생님께서는 "날 무시하는 거 아니니?"라는 생각까지 하지 않으셨을 겁니다. 하지만, ADHD 아이는 그런 미묘한 상황과 비언어적 표현을 잘 모릅니다. 죄송한 상황인데도 표정은 퉁명스럽고, 교사가 하고자 하는 말의 핵심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대화가 겉돌기도 합니다.


"ADHD면 다인가요? 가르칠 건 가르쳐야 하지 않나요?"

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물론, 가르쳐야 할 부분은 가르쳐야 합니다. 하지만 ADHD 아이의 표정과 자세, 말투, 그리고 계속 규칙을 어기는 행동들을 아이의 '도덕성'과 연관 짓는 순간, 교사와 부모는 화가 납니다. 아이의 버릇없는 말투, 규칙을 계속 어기는 행동은 ADHD가 하는 일입니다. 도덕적으로 '틀린' 아이라고 보는 순간, 우리는 아이에게 '가성비 떨어지는 훈육'을 하게 됩니다. 감정과 에너지는 있는 대로 다 쓰고, 아이는 전혀 무엇을 잘못했는지 잘 모릅니다. 자신이 선생님께 기분이 상해서, 예의 없이 굴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기 때문이지요.



ADHD 아이의 화용 언어는 규칙처럼 알려주셔야 합니다.

"형주야,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얘기하지 말라고 할 때는 말하고 싶어도 참고 멈출 수 있어야 해. 그리고 선생님한테 '아닌데요?'라고 말하기보다는 지도받을 땐 바로 '죄송합니다. 다음부터는 안 하겠습니다.'라고 하는 것이 맞는 거야. “라고 간결하게 옳은 행동을 알려주세요.


또한, ADHD 아이를 가르칠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의 행동에는 의도가 없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그저 ADHD가 하는 일이 대부분이지요.


조금은 답답하고 반복되는 지도에 지치더라도 감정은 빼고, ADHD 아이에게 어떻게 효율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할지에 집중하는 것이 좋습니다.



ADHD 아이를 키우며, 깨달은 점입니다.

아이의 ADHD에 도덕적 판단을 들이미는 순간, 감정적 에너지를 다 소진하고 아이에겐 어떤 메시지도 전달되지 않음으로써 “가성비 떨어지는 훈육”을 하게 된다는 것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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