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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사비나 Jun 22. 2024

"선생님, 저만 한 거 아닌데요?"

ADHD 아이는 왜 자꾸 '남 탓'을 할까?

중학교 2학년인  ADHD 아이 동글이는 오늘따라 기분이 좋았다. 수업 중에도 수위를 모르는 농담을 던지며 수업 분위기를 떠들썩하게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다 정말 선을 넘는 단어를 써 버린 동글이.

나는 동글이를 수업 후 교무실로 불러야 했다.


“왜 그런 단어를 수업 시간에 썼니?”

“저만 한 거 아닌데요? 육각이도 했는데요?”

“네가 잘못한 것만 얘기해.”

“왜 저한테만 그러세요? “

“네가 잘못한 것만 얘기해. 남 얘기 하지 말고. 수업 시간에 그런 단어를 쓰면 안 되는 거야 “


동글이는 이미 교무실에 들어올 때부터 “나는 사춘기니까 건드리지 마시오.”라는  눈빛을 쏘고 있었다. 나의 지도를 받으면서도 자신이 왜 잘못했는지, 수업 시간에 어떤 규칙을 지켜야 하는지 전혀 이해하고 있지 않았다.



이런 전형적인 ‘남 탓’, ‘핑계’, ‘변명’은 ADHD가 있는 나의 아이, 세모를 훈육할 때도 자주 마주하는 상황이다. 늘 동생에게 시비를 먼저 걸고, 안 건드린 척 툭 건드려놓고 세모는 항상 말한다.


네모가 먼저 나 건드렸어. 

나는 그냥 어쩌다 건드리게 된 거야. 정말 몰랐어.”

나는 분명 보았다.

세모가 네모를 툭 건드리고 지나가는 것을.

그러나 세모는 여느 때처럼 오리발을 내민다.

“내가 안 그랬어.”


ADHD 아이는 왜 자꾸 상황을 왜곡해서 받아들일까?

아니, 질문이 잘못 됐다. 아이는 자신이 분명 먼저 잘못을 한 것을 알고 있다. ADHD 아이는 대체 왜 자꾸 남 탓을 하며 핑계를 댈까?


처음엔 아이가 전두엽 발달이 느리니 상황 파악을 못하는 것인 줄 알았다. 주변을 잘 살피지 못해서 정말 모르는 거라고. 하지만 ADHD 아이가 부모나 교사에게 지도받을 때 자꾸만 말을 돌리거나 남 탓을 하며 변명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충동성 때문이다. 충동적인 아이는 행동하기 전에, 말하기 전에 그 결과를 고려하지 않는다. 변명을 하거나 억울한 듯 자기 자신의 잘못을 빠르게 모면하려다 보니, 선생님과 부모의 ‘신뢰를 저버리기'로 선택한다. 당장에 자신이 하는 행동과 말이 미칠 부정적인 영향이 어떤 것인지를 그 순간에는 인지하지 못하는 충동성인 것이다.


둘째, 불안 때문이다. ADHD 아이들은 타고난 불안을 약하게 때론 강하게 항상 친구처럼 데리고 있다. 불안한 아이의 1번 본능은 '자신을 지키는 것'이다. 불안한 아이는 일단 본능적으로 '거부'한다.

'여기서 내가 잘못한 것이라고 인정하면, 또 어떤 벌을 받을지 알 수 없어.'

'여기서 내가 잘못을 인정하는 것보다 일단 아니라고 하자.'

'사실 내가 먼저 한 게 아니잖아? 네모가 먼저 나를 방해했으니까 나는 한 대 때려도 되는 거지, 뭐.'

불안한 아이는 자기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생각의 방향을 급하게 정해버린다.


셋째, 낮은 자존감 때문이다. ADHD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지적과 비난을 받아온 경험이 비 ADHD 아이들보다 많을 수밖에 없다. 이렇게 누적된 타인의 부정적인 평가는 아이의 자아정체성에 영향을 준다.

'다른 사람들은 다 내가 하는 모든 걸 싫어해.'

'나는 노력해도 못하는 아이야.'

이렇게 부정적인 자아상을 갖고 있는 아이는 일단 '남 탓'을 해야 자신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을 포장하고 또 포장해서 '나를 무시하지 않도록'  방어하는 것이다.

'내 잘못을 또 들키면 안 돼. 일단 아니라고 하자. 그래야 나를 무시하지 않을 거야. 또 잘못할 수는 없어.'

자신의 잘못마저 인정하지 못하고 꽁꽁 숨기는 아이의 본능인 것이다.



이렇게 계속 '남 탓'이 습관이 된 ADHD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이 아이들에게는 두 가지 해결책이 있다.


첫째, 당장 타인에게 미움받지 않도록 돕는 것이다. "규칙처럼 알려주는 것"이다.

"세모야, 선생님이나 어른이 불러서 너를 혼낼 때는 네가 좀 억울해도 그냥 '죄송하다'라고 말씀드리면 돼. 거기서 '아니' '근데요' '다른 애들은요' 하면서, 의견을 더 말하면 너는 더 혼날 수도 있어. 어른이 널 가르칠 때는 이유가 있는 거야. 너를 위해서라도 그냥 죄송하다고 말씀드려야 해."

ADHD 아이들에게 당장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는 법을 익히라고 해도, 객관적인 상황을 인지하라고 해도 쉽게 되지 않기 때문이다.


둘째, 긴 호흡으로 아이의 자존감 회복을 위해 노력한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들은 타인에게도 너그럽지만, 무엇보다 자신에게도 너그러워진다. '내가 이 정도는 손해를 봐도, 내가 이 정도 잘못은 인정해도 내 존재 가치가 무너지진 않아.'라는 자기 신뢰감을 쌓아가야 한다.


자존감을 올려주는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매일 아침 아이의 존재에 감사하자.

머리를 쓰다듬고, 어깨를 주물러주고 꼭 안아주자.

"우리 가족은 네가 있어 참 감사해."

신체 접촉은 뇌에 각인된다.

그리고 존재 자체로 감사하다는 마음이 전달된다.


ADHD 아이는 '억울함'이 디폴트 값이다.
ADHD를 갖고 있어서
쉽게 해낼 수 있는 일보다
어려운 일이 더 많기 때문이다.

그것은 시험에서 몇 점 이상을
더 받아야 하는 문제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 아이들에게도 분명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 선한 마음이 타인에게
전해지지 않는 이유는 하나,
아직 아이들도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아이를 더욱 꽉 안아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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