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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사비나 Jun 08. 2024

"어머님 왜 ADHD 검사를 받지 않으세요?"

치료의 기회를 빼앗긴 아이들을 위해

교직에 있다 보면 그런 해가 있다.

"올해 저는 2학년 빼고 다 괜찮을 것 같아요.

작년에 수업하기 정말 힘들었어요."

"나도 2학년 빼고는 다 괜찮은데.

새로 오신 선생님들이 맡으시겠지."

모두가 특정 학년을 피하는 그런 해가 있다.


2018년, 정말 맡고 싶지 않았던 2학년을 맡았다. 수업 시간이 시작하자마자 엎드려 잠을 자던 아이부터 다른 친구와 계속 잡담을 하느라 나의 말을 끊는 아이, 쉬는 시간에도 해서는 안 되는 발언들을 일삼아 여학생들이 계속 신고했던 남학생까지. 그 해는 수업 지도보다 또 무슨 사건이 터지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생활 지도를 더 많이 했던 기억이 난다. 그중 몇 명은 ADHD가 의심되는 아이들이었다. 그중, 진태는 이미 품행장애가 의심될 정도로 문제 행동이 심각했었다.


당시 나는 세모의 ADHD도 모르던 때였기에, 이 아이가 '교육'만 하면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학교 규정에 따라 생활 지도를 하고, 선도위원회를 열어 아이에게 정당한 벌을 주고, 학교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그러나 진태의 문제 행동은 졸업할 때까지 나아지지 않았다.


몇 년 후, 진태의 소식을 들었다. 결국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소년원을 다녀왔으며 고등학교를 마치지 못했다는 소식을.



ADHD 아이를 키우며 다양한 양상의 ADHD 아이를 학교에서 만난다. 현재 중학교 2학년의 200명 남짓 되는 아이들 중 10% 정도, 약 20명은 ADHD일 수 있다. ADHD 유병률이 8% 정도라고 보면 그렇다.


내가 본 ADHD가 의심되는 학생들의 모습은 이렇다.

과잉행동과 충동성이 심한 ADHD 아이

조용하지만 멍 때리고 수업 시간에 주의 집중을 잘하지 못하는 아이

소리에 과민하게 반응해서 친구들과 선생님이 수업하는 목소리에 다 예민해지는 아이

긴 글을 잘 읽지 못하는 난독증이 있는 아이

불안이 높아서 틱이 있거나 손톱을 물어뜯는 아이

점심시간마다 곤충에 빠져 개미굴을 파는 아이

과학에 과몰입해 영재 소리를 듣지만 매시간 숙제를 하지 않아 벌점을 받는 아이

밝고 재밌지만 말실수를 자주 해 여학생들 무리에서 따돌림당하는 아이

책에 과몰입하고 친구에겐 관심이 없는 아이

충동을 이기지 못해 화가 나면 친구를 때리는 아이


위 아이들 모두 올해 내가 맡는 200명의 아이들 중 ADHD가 의심되는 아이들의 모습이다. 이 중, 내가 알고 있는 ADHD 치료를 받고 있는 아이는 단 1명이다. 나머지는 치료가 받지 않은 채, 교실에서 홀로 ADHD와 싸우며 자신이 왜 불편한지 모르는 그런 아슬아슬한 하루를 보내고 있다.


이 중, 가장 진단과 치료가 급한 친구는 단연 "충동을 이기지 못해 친구를 때리는 아이"였다. 용기를 내 이 아이의 담임선생님께 말씀드렸다. 어머님께 아이가 병원을 가서 검사를 받아보라고 권해보시는 게 어떠냐고. 선생님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셨다. 


"무슨 소리를 들으려고~"


그렇다.

교사는 부모에게 ADHD든 뭐든 정서 행동 문제에 대해 '문제 제기'조차 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용기를 내 부모님께 "어머님, ADHD 검사를 받아보세요."라고 말해주시는 선생님은 정말 한 아이와 그 가정의 인생을 구하는 일을 하신 거나 다름없다. ADHD로 인해 진태와 같은 결말에 이를 수도 있으니까.



"어머님, 왜 ADHD 검사를 받지 않으세요?"

"제 아이가 왜 정신과를 가야 하죠?"


나는 ADHD 아이를 기르는 교사로서, 이 질문과 답이 애초부터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렇게 대화해야 한다.


"어머님, 진태는 ADHD가 의심됩니다. 학교와 연계된 병원에 검사를 의뢰해 놓았으니 검사를 받고 등교하도록 해주세요. 검사비는 교육청에서 지원됩니다. ADHD에 대한 부모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곳도 함께 알려드립니다. 검사와 부모 교육은 의무라서 꼭 받으셔야 합니다."

안타깝게도 이런 이상적인 대화는 시스템이 없이 절대 이루어질 수 없다는 사실. 시스템의 부재로, 교사와 부모와 아이는 여러번의 난장을 견딘다. 누가 먼저 포기할 것인가 경쟁하듯.


왜 교사는 마땅히 아이의 미래를 위해 필요한 병원 검사를 당당히 권유하지 못하며, 왜 부모는 아이의 치료받을 권리를 빼앗는 것일까.


온갖 교실 속 문제들이 펑펑 터지며 기사화될 때면, 마음이 아프다. 고통받는 교사와 회피하는 부모 사이에서 치료의 기회를 빼앗긴 ADHD 아이들이 생각난다. ADHD 아이들은 적기에 진단받고 조기에 치료받아 세상에 적응할 기회를 얻을 권리가 있다.


치료가 필요한 아이들에게
'교육'을 하라고 하면 교사는 무력해진다.
용기를 내야 할 부모들이
'회피'를 하면
아이는 또 한 번 기회를 놓친다.

그렇게 또 우리는
아이의 편안한 일상을 지켜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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