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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사비나 Jun 15. 2024

“교감선생님, 병가를 낼게요.”

선생님들께 차마 부탁을 드리지 못하는 이유

세상엔 다양한 사람이 있다.

이는 만고의 진리다.


2월이 되면, 우리는 30명의 아이들의 명단을 받는다. 앞으로 1년을 함께 할 새로운 인연들. 그리고 우리는 그 이름들 뒤에 있는 60명의 학부모와도 인연을 맺는다. 매년 60명의 학부모들을 대하며 알게 된 사실, 세상엔 참 다양한 학부모가 있다.


ADHD 아이를 키우며, 2월이 되면 부모로서 다시 긴장한다. 또 어떤 선생님이 세모의 담임 선생님이 될까? 부모가 되고 나니 알게 됐다. 학교에는 참 다양한 선생님이 있다.


어떤 해에는 정말 나를 교사로서 존중해 주는 학부모님만 만나기도 한다. 그러나 어쩌다 만나는 상식 밖의 말과 행동으로 나의 교권을 당당히 침해하는 한두 명의 학부모는 교직 인생에 트라우마를 남긴다. 그 한 두 번의 경험은 내 뇌리에 진하게 자리 잡아 다음 학부모들에게도 방어적으로 대하게 했다.


학부모들 역시 그럴 것이다. 학교에 계신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아이들에게 진심을 다해 교육한다. 그러나 어쩌다 기사에나 나올 법한 이상한 교사가 나의 아이의 담임교사일까 성급한 일반화로 불신하기도 한다.



교사에 대한 신뢰가 없는 부모는 교사를 내 아이를 ‘가르치는 이’로 보지 않는다. 내 아이에게 언제든 정서적으로 해를 끼칠 수 있는 존재로 보는 듯하다.

“선생님, 재영이 엄마입니다. 재영이가 어제 혼이 났다고 하던데요. 아이들 보는 데서 혼내지 말아 주시겠어요? 아이 자존감이 떨어질까 걱정되어서요.”

“선생님, 초등학교 1학년이면 좀 뛰어다니고 떠들 수도 있지 않나요? 우리 아이만 그런가요?”

“선생님, 아이들이 크다 보면 친구 좀 때리고 싸울 수도 있지 않나요? 정말 우리 아이만 잘못했나요? “


이런 말들은 실제로 매해 빠지지 않고 교무실에서 들려오는 민원 전화다. 이런 민원 전화를 받다 보면, 학부모에게 솔직한 아이의 학교 생활 모습을 알려드리기가 겁이 날 때가 있다. 교사도 사람인지라, 이 아이가 또 집에 가서 나의 정당한 지도를 어떻게 전달할까… 말과 행동, 표정까지 검열하게 된다. 그렇다 보면 가르쳐야 할 것도 가르치지 않게 되고, 다른 아이들까지 맡아야 할 책임이 있는 교사는 어딘가 잘못되고 있는 교실을 어쩌지 못해 하루하루를 견뎌본다.


“선생님, 재영이 어머님이 교장실에 왔다고 해요.

한번 가보세요. “

“교감 선생님, 저는 병가를 내야겠어요. “

교사의 손발을 묶어버린 지금, 가르침이 필요한 아이들, 치료가 필요한 아이들이 교실에 방치되고 있다. 교사는 무력해질 수밖에 없는 이런 현장에서 “따듯한 가르침”을 기대하는 게 얼마나 기이한가 생각해보곤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요즘 교사들이 마음에 새기는 말이다. 칭찬 스티커 시스템을 하지 않으면, 부모에게 왜 내 아이는 매번 적게 받냐는 민원을 받을 필요가 없다. 일기 검사를 하지 않으면, 왜 이렇게 숙제가 많냐는 민원을 받을 필요가 없다. 친구를 때리는 아이를 혼내지 않으면, 왜 내 아이만 혼내냐는 말을 들을 필요가 없다.


 나는 ADHD가 있는 나의 아이가 따뜻한 선생님을 만났으면 좋겠다. 아이의 지금 이 순간만 보는 것이 아닌 아이의 미래를 보고, 따끔한 가르침을 주는 선생님. 아이가 험한 사회에 나갔을 때, 순간의 좌절에 무너지지 않고 그때 선생님께 받은 가르침으로 다시 일어나도록 좌절내구력을 길러주는 선생님. 이런 교육은 교사의 따뜻한 시선이 없이는 이뤄질 수 없다.


그렇기에 ADHD 아이의 부모로서, 교육이 사라진 교실이 더욱 안타깝다. 마음 아픈 선생님에게 따뜻한 가르침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우리나라의 학교 현장이 너무나도 안타깝다.




이번 글은 이런 이유로 쓰게 되었어요.

ADHD 아이를 키우며 선생님께 부탁드릴 일들이 참 많은 걸 깨닫습니다.


아이가 흥분할 땐 이렇게 해주세요.

아이가 과하게 떠들 때는 이렇게 지도해주세요.

ADHD 아이는 칭찬을 해야 잘 하려고 노력합니다.

ADHD 아이가 친구와 트러블이 있을 땐 이렇게 말해주세요.


이런 말과 각종 매뉴얼들을 알려드린다 해도

마음이 병들어가는 교사에게

이것도 더 지도해달라 말할 수 없었습니다.


상식 밖의 민원들에 지쳐가는 동료교사의

마음아픈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어떻게 더 지도해달라고 말할 수 있을지 고민이 되었습니다.


교사에게 아이를 마음으로 지도할 수 있는,

학교의 본질적인 문화가 다시 살아나지 않는 한,

교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가장 해야할 가르침마저도 줄 수가 없는 현실입니다.


우리는 압니다. 대부분의 부모님들은

교사를 존중하며 아이를 위해 함께 협력하는 분들이라는 것을요. 그러나 한 두번의 화살이 남기는 상처는 강력합니다.


우리나라의 선생님들이
진심으로 행복하길 바랍니다.
그래야만 교실 속 ADHD 아이들을
잘 가르쳐주시길 바란다는
그 간곡한 부탁을 드릴 수 있을테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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