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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사비나 Jun 29. 2024

중학생 ADHD 아이가 혼자가 된 이유

그 여학생은 왜 따돌려졌을까?

"선생님, 아무도 저랑 안 놀아줘요."


민희는 수업 시간에 항상 말이 많고, 장난치는 것을 좋아하는 여학생이었다. 우리 반은 아니었지만, 수업 때마다 밝게 장난도 치고, 친구와 떠드는 걸 좋아하는 아이였다. 그 아이가 어느 날, 대성통곡을 하고 있었다. 세상 밝던 아이가 왜 갑자기 저렇게 서럽게 울고 있나 해서 물어보니, 따돌림이었다.


민희의 이름을 잘 기억하게 된 건 3월 중순이었다. 200명의 아이들을 가르치며 이름을 3월에 기억하게 되는 아이들은 딱 두 경우이다. 수업 때 너무 출중하거나, 너무 튀거나. 민희의 경우는 후자의 경우였다. 민희는 수업을 시작하면, 교과서를 가장 늦게 피는 친구다. 그리고 과잉 언행이 심해서 갑자기 불쑥 쓸데없는 말로 수업의 흐름을 끊기도 하고, 친구에게 해선 안 되는 말을 공공연하게 내지르곤 한다. 


학기 초부터 나는 민희가 ADHD가 있다고 판단했다. ADHD가 있는 아이 치고는 늘 친구와 떠들며 즐겁게 보내기에 친구 관계는 문제가 없구나 안심하기도 했다.



그러다 결국 터질 게 터졌다. 

여자 친구들 뿐만 아니라 남자 친구들까지도 민희와 대화하고 싶어 하지 않고, 어울려 놀려하지도 않게 된 것이다. 


"세라야, 민희랑 무슨 일 있었니?"

민희와 싸운 세라를 불러 물어봤다. 

"민희가 자꾸 제 이야기를 여기저기 하고 다녀요."

민희가 세라에 대한 험담을 다른 친구들에게 이야기하고 다닌 것이다. 


민희에게 물었다. 

"민희야, 세라에 대해 다른 친구들에게 이야기한 게 있니?"

"네. 그 친구들이 세라한테 말할 줄 몰랐어요. 그 순간엔 그냥 아무렇지 않게 제 생각을 말한 거라고요."


민희의 문제는 중학교 여자 친구들의 미묘한 또래 관계에서 지켜야 할 것들을 '눈치껏' 지키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비밀로 해야 할 것은 지켜야 하는 것, 생각 나는 대로 다른 친구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여기저기 말하면 안 되는 것 등등, 여자 친구들 사이에서는 '말'이 가장 조심해야 한다는 그 암묵적 규칙을 모르는 게 문제였다.


'아, 민희같이 ADHD가 있는 여학생들은 이렇게 따돌림을 당할 수도 있구나.' 하고 깨닫는 순간이었다. 

민희의 ADHD는 언어 충동성이 항상 문제였다.


민희: 야, 너 그거 알아? 이세라가 얘기해 줬는데 박정현이 현주한테 고백했다더라.

친구 1: 뭐? 대박. 


다음 날.

친구 1: 야, 대박. 너 그거 알아? 박정현이 현주한테 고백했대.

친구 2: 엇? 너 그거 어떻게 알았어?

친구 1: 김민희가 말해줬는데? 

친구 2: 김민희는 어떻게 알았는데?

친구 1: 이세라가 말해줬다는데?


친구 2: 야, 이세라. 너 내가 말해준 거. 박정현이 현주한테 고백한 거 그거 김민희한테 말했어? 내가 말하지 말랬잖아.

세라: 아... 미안. 너는 어떻게 알았어?

친구 2: 김민희가 말하고 다니던데?


세라: 야, 김민희. 너 내가 말하지 말라고 했는데 왜 말했어?

민희: 네가 말하지 말라고 했었어...? 나는 괜찮은 줄 알았어...


민희의 이런 잦은 말실수는 여학생들이 가장 싫어하는 '험담'이 되었다. 어느새 민희는 입이 가볍고, 험담을 잘하는 친구가 되어 있었다. 


"민희야, 선생님이 생각했을 땐 민희가 너무 말을 생각하지 않고 내뱉어 버릴 때가 있는 것 같아."

민희는 울면서 말했다.

"선생님, 저도 알아요. 근데 안 고쳐져요. 그리고 이젠 진짜 잘못한 거 알아서 다시 잘 지내고 싶은데 애들이 다 저를 싫어해요. 아무리 다시 잘해보려 해도 기회를 다시 주지 않아요."

민희는 좀처럼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민희가 많이 힘들었겠네. 이제 다시 잘하면 돼. 친구란 파도 같은 거야. 갔다가 다시 또 오고, 다른 친구가 떠나면 또 다른 친구가 와주고. 너무 아쉬워하지 마. 집착하지도 말고."

"어떤 친구를 사귀어도 또 제가 잘못해서 잃게 될 까봐 불안해요."


민희는 어느새 관계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겨 어떤 친구를 만나도 마음이 편하지 않게 된 것이다.


ADHD 아이들의 과잉언행, 충동성은 초등 고학년부터 관계에 문제를 만들기 시작한다. ADHD의 약물치료가 도움이 되는 경우도 물론 있다. 말을 생각하고 하게 해 주고, 친구의 대화에 집중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미묘한 말의 흐름, 여자 아이들 무리 사이의 표정을 읽는 것, 분위기를 읽는 것은 ADHD 아이에겐 매우 힘든 일일 것이다. 


이때 교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민희에게 어떤 말을 해줄까? 생각했다. 그날 이후, 나는 민희에게 자주 말해주었다. 


1. 말할까 말까 고민이 될 때는 심호흡하고 숫자를 세기, 그리고 말하지 않기

2. 실수를 했을 때는 바로 사과하기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3. 자책하지 않고, 자신을 용서하기

4. '나는 발전하고 있다'라고 생각하기

5. 친구와 멀어져도 새로운 친구가 온다는 것을 꼭 기억하기



어른들은 아이들이 90점 이상의 성적표를 가져오면 학교 생활을 잘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른들은 아이가 친구 수가 많으면 잘 지낸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각자 자신만의 상처를 키워갈 때가 있어요. 그 상처는 단 한 번에 나는 상처가 아닙니다. 곪고 곪아 터지고 나야 보입니다. 관계가 어려운 아이들을 위해, 어른들은 미리 가르쳐줘야 합니다. 

- 친구들 사이에서 말을 조심해야 한다는 것
- 친구가 한 말을 전달하지 말아야 하는 것
- 온라인상에서는 언제나 '나'의 말이 캡처되어 기록될 수 있다는 것
- 친구에게 잘못했을 땐, 바로 사과하는 용기를 가질 것
- 친구와 멀어져도 집착하지 말 것
- 친구들은 파도처럼 왔다가 또 가는 것, 그리고 반드시 다시 또 온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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