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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사비나 Jul 06. 2024

그들이 알면서도 또 하는 이유

ADHD 아이의 충동성에 관하여

"세모야, 잘 들어. 영어 학원에 가면 선생님이 수업하실 때는 선생님 목소리만 들어야 해. 그리고 친구들이 공부를 할 때는 너도 똑같이 공부를 해야 해. 절대 말을 걸어서는 안 돼. 알았지?"

"응. 알았어 엄마."

"엄마가 말한 거 다시 말해 봐."

"선생님 목소리 듣기. 친구들 공부할 땐 말 걸지 않기."

"그래. 이번엔 잘할 수 있을 거야. 엄마는 세모를 믿어."


세모를 처음 영어학원이란 곳에 보냈을 때, ADHD 진단을 받았지만 약물 치료를 하지 않았을 때였다. ADHD여도 세모에게 당부하고 잘 가르쳐주면 본인도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거라고 믿었다. 아이들은 믿어주는 만큼 해내곤 하니까.


영어 수업을 마칠 때쯤 데리러 간 곳에는, 영어로 울면서 반성문을 쓰고 있는 모습이었다.

"세모야..."라고 불렀을 때, 세모는 한참을 구불거리는 글씨로 영어 반성문을 쓰다 마음이 지쳤는지 울컥하는 표정으로 나에게 달려왔다.


'ADHD, 너 참 지독하구나.'

세모는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엄마와 약속한 내용도, 영어 학원에서 지켜야 했던 규칙들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모는 선생님의 목소리보다 친구의 목소리에 더 관심이 많았고, 공부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친구에게 말을 걸어 버렸다.


ADHD 아이들이 괴로운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본인의 행동이 잘못된 걸 알면서도 이미 움직이고 있는 자신의 행동, 그리고 필터링 없이 스쳐가는 생각들을 조절하지 못하는 것. 저지르고 나서야, 타인에게 불쾌한 피드백을 받고 나서야 '아! 그랬으면 안 되는데!' 하고 뒤돌아 후회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의 시작은 '충동성'이다.


사실 충동성은 선사 시대 우리 조상이 살던 옛날 옛적으로 돌아가면, 꼭 필요했던 특성이었다. 가족을 위해 먹을 것을 찾아 사냥해야 했던 우리 조상들은 생각하고 행동하면 먹을 것을 얻지 못한다. 벌꿀집에 벌에 쏘일 거란 생각을 하면 누가 벌꿀집에 손을 넣어 벌꿀을 얻었겠는가? 위험 요소가 있을 때, 생각하고 행동하면 우왕좌왕 대다 짐승에게 잡아먹힐 위험도 높았다.


그런 특성은 안타깝게도 현대 사회에서는 득 보다 실이 많아진 것이다. 생각하고 행동하지 않는 사람은 예측불가한 사람, 불편하게 만드는 사람이 되었다.


아이들은 모든 것을 배웠고, 이미 알고 있다.

- 친구는 때리면 안 되는 것

- 수업 중에는 말하지 않고 조용히 해야 하는 것

- 거짓말을 하면 안 되는 것 등.


기억 속 모든 규칙들을 '알면서도 또 하는 이유'

바로 '충동성'이다.


이런 충동성은 어떻게 도와줘야 할까?

첫째, 대부분은 ADHD 약물 치료가 도움이 된다. 행동과 감정을 조절하는 뇌의 전두엽이 발달이 느리긴 하지만, 발달을 멈춘 것은 아니기에 그 발달 속도를 약물 치료로 또래와 맞춰주면서 충동성 조절에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둘째, 충동성을 조금이라도 조절했다면, 그 발전에 대해 꼭 칭찬을 해야 한다. ADHD 아이들은 늘 지적을 더 많이 받는 아이들이다. 아이들의 발전은 티끌과도 같아서 하나의 행동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노력은 배로 들이는데 개선된 부분은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교사와 부모는 아이의 작은 노력에도, 작은 개선에도 잊지 않고 긍정적인 피드백을 주어야 한다.

"기태야, 어제는 선생님이 지적해도 계속 떠들었는데 오늘은 선생님이 그만 말하라고 2번 말했을 때 멈췄어. 잘했어. 내일은 한 번에 멈춰보자!"


셋째, 그들이 알고도 했다는 것을 이해해줘야 한다. 그리고 다음에는 잘 조절해 낼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준다. 긍정적인 믿음은 때론 아이들에게 긍정적인 행동을 이끌어내 주기 때문이다.

"선생님이 뭐라고 했어?"

"거짓말하지 말라고 했어요."

보통 물어보면 아이들은 다 알고 있다.

"기태야, 순간 거짓말이 하고 싶어도 일단 솔직하게 말해야 해. 다음엔 솔직하게 말할 거라고 믿어. 넌 할 수 있어."

“선생님! 이번엔 그래도 솔직하게 말해봤어요. 그건 잘 한 거죠?”


부모로서, 교사로서
ADHD 아이의 충동성을
조절하게 도와주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옆에서 따라다니며 모든 행동과 말을
제어할 수도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죠.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
단 하나는 바로 "기다려주는 것"이었습니다. 아이의 조절 능력은 천천히 자라고 있기에
그 속도만큼 천천히 바라봐주는 것.
결국 스스로 해내야 하는 마음은
아이들 안에 있기에
또 한 번, 그리고 그다음에도
기회를 주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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