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회사를 안 가니 비로소 함께 식사합니다
휴직계를 내고 아이들과 1년 간의 해외살이를 하러 캐나다에 왔다. 캐나다에 온 지 151일째, 아이들은 어느새 영어로 대화를 하고 둘째는 혼잣말도 잠꼬대도 영어로 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언어 발달은 정말 신기하다. 그저 부러운 아이들. 내 영어는 딱 대학생 수준에 멈춰있다.
캐나다에 오고 나서, 행복 찾기를 시작하며 글을 쓴 지 두 달이 되어간다. 이 브런치북을 연재할 때면 난 왜 행복하지? 이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게 된다. 한국에서도 난 늘 행복했지만, 유독 캐나다에 오고 나서 달라진 행복은 바로 온 가족이 마주 앉아 식사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 있을 때 나는 급히 퇴근하여 반찬 가게에서 아이들이 불평 없이 먹어줄 반찬을 후다닥 골라 뚜껑만 열어 식탁에 둔 적이 많았다. 그렇게 아이 둘을 앉혀 밥에 반찬 얹어 입에 급하게 넣어주던 저녁 시간. 그 시간 남편은 대부분 회사에 있었다.
"오늘 몇 시에 와?"
"글쎼. 아직 좀 더 해야 할 것 같아. 먼저 밥 먹어."
남편은 나름 우리를 배려한다고 먼저 먹으라고 하지만, 아이 둘을 혼자 챙기고 먹일 생각에 늘 피로감이 있었다. 그 순간에는 너무나도 익숙해 피로한 감정이 들었는지도 몰랐다. 다음 날 또 출근하고 아이 둘을 등교, 등원시킬 생각에 마음은 늘 급했고, 저녁 식사는 말 그대로 살기 위해 먹는 하나의 과제 같은 것이었다.
캐나다에 오고 남편도 나도 출근도 퇴근도 없는 일상을 살게 되었다. 아마도 이 사실이 우리 행복의 가장 근원일 것 같다. 부모가 집에 있는 일상은 보이지 않았던 소소한 행복들을 깨닫게 했다. 예를 들어, 다 같이 모여 앉아있는 식탁이랄까.
아이들을 픽업 갈 때 남편과 저녁 메뉴를 상의한다. 함께 마트에 가서 장을 보는 일상. 아이들을 데려오고 남편은 분주하게 요리를 시작한다. 나는 그동안 아이들을 보고, 테이블 세팅을 담당한다. 그렇게 한식 한 번, 양식 한 번 여러 밥상을 차려오며 어느새 아이 둘과 엄마, 아빠가 모여 앉은 그림 같은 식사 자리가 익숙해져 갔다.
식탁엔 각자의 자리도 생겼다. 가운데는 늘 주목받기 좋아하는 둘째 딸이 앉는다. 함께 식사를 하며 물컵을 들고 짠! 도 해보고, 이 고기는 좀 질기네 저번에 구운 고기가 맛있네 하며 아빠의 요리를 평가도 해본다. 엄마와 아빠가 먹는 매운 음식부터 평소 좋아하지 않던 채소들까지 관심을 갖는 아이들. 용기 있게(?) 구운 양파, 콩나물 무침을 먹어보는 아이. 그렇게 아이는 점점 먹을 수 있는 식재료도 많아졌다.
어릴 적, 할머니와 할아버지, 고모, 삼촌과 함께 살며 저녁에 큰 상 두 개를 펼쳐두고 할머니가 만든 반찬이 쫙 깔려있던 매일의 저녁 식사가 기억난다. 지금 생각하면 우리 아이들은 그런 상차림을 매일 경험해 본다는 호사는 누리지 못하겠구나 싶다.
캐나다에 오고 나서 151번의 온 가족이 마주 앉은 저녁 식사를 누렸다.
긴 시간 줄을 서 기다려서 먹는 맛집이 행복이 아니었다.
매일 함께 있지만 서로를 잘 알지 못했던 우리 가족.
151번의 저녁이 있는 하루를 함께 하며 친해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