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또 가고 싶은 요즘
캐나다에 살면서 미국이라는 나라가 이웃 나라가 되었다. 가까운 나라니까 그래도 미국 여행 한번쯤은 가야지 하는 마음으로 뉴욕행 티켓을 끊었다. 아이들이 자유의 여신상이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나 타임스퀘어에 감흥이 있을까 싶었지만, 그래도 뉴욕에 한 번도 못 가본 남편을 위해 가기로 마음먹었다.
남편이 뉴욕에 가면 꼭 가야 하는 곳이 있다고 했다.
"어디? 자유의 여신상?"
"아니,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거기에 뭐가 있는데?"
"그 영화 몰라?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에서 맥 라이언이랑 톰 행크스가 마지막에 드디어 만나는 장면! 거기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잖아!"
내 생일마저 까먹기도 하는 낭만 없는 남자가 이런 클래식 로맨스 영화의 장소에 꼭 가보자니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언제 다시 와보겠나 싶었다.
"그래 가자!"
그런데 86층에 올라가는 관광 티켓이 어른 둘에 10만 원, 아이 둘에 8만 원 정도... 총합 18만 원을 내야 했다는 사실을 다소 놀라웠다. 우뚝 서 있는 저 높은 곳에 엘리베이터로 올려주는데 그 돈을 내야 하다니.
아이들은 이 빌딩 이름이 뭔지도 모른 채 그냥 따라 나와 엄청 높은 곳에 올라간다는 것으로 이미 신이 나 있었다. 전혀 톰 행크스를 닮지 않은 한국인 남자와 애 둘의 에너지에 지칠 대로 지친 맥 라이언이 아니라 Lion 사자 머리로, 감지 못한 헤어 스타일을 한 여자는 86층을 올라갔다.
86층에 올라가니 사람들이 왜 높은 곳에서 도시를 조망하는지 알 것 같았다. 86층에서 내려다본 뉴욕은 깨끗한 레고 피스들로 쌓아 올린 것처럼 깔끔하고 근사했다. 오밀조밀 모여있는 촘촘한 빌딩들은 마치 일정하지 않지만 불규칙해서 더 멋있었다.
사실 뉴욕에 아이 둘을 데리고 여행을 오면서 찌린내가 나는 메트로와 길거리에 여기저기 버려져 있는 쓰레기들에 도시에 대한 환상이 깨졌었다. 14년 만에 다시 찾은 뉴욕이지만 변함없이 더러운 거리였다. 여기저기서 불쾌한 냄새가 났고, 밤거리는 여전히 위험해 보였다. 지나가기만 해도 웃어주던 캐나다인들은 어디 가고 차가운 도시에서 바쁘게 어디론가 향하는 사람들은 서로 시선조차 나누지 않았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의 86층에서 내려다본 뉴욕은 길거리 휴지 조각조차 보이지 않았다. 어딘가 가까이하고 싶지 않았던 걸음걸이가 이상하던 이들도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마저 보이지 않는 광경을 보며, 내 고민들마저 보이지 않았다. 내가 버겁다고 생각했던 일상들도, 끝날 것 같지 않은 아이에 대한 고민들마저 저렇게 작은 거구나. 내 짐이 꽤나 무겁고 크다고 생각했는데 보이지도 않을 만큼 작은 것인 것만 같았다.
86층으로 가져간 내 마음의 짐들도 그냥 던져 버려도 티도 안 날 것 같은 높이에 정말 마음이 가벼워지는 착각마저 들었다.
멀리서 보면 작아 보이는구나.
시간이 지나 돌아보면 작아 보이겠지.
지금 하는 걱정들도, 미래에 대한 불안함도 할머니가 된 내가 바라보면 작아 보이겠지.
'그때 무슨 걱정을 그렇게 했어. 지나고 나니 아무것도 아니야. 그러니까 자꾸 갖고 다니지 마. 버리고 가볍게 앞만 보고 걸어가.'
지금도 아이들과 내 미래에 대한 고민이 가득해질 때면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 가고 싶다. 아주 아주 작아 보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