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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얼마나 많은 미움을 받아왔을까

타인에 대한 미움

by 이사비나

'뭐야, 왜 저따위로 운전을 하는 거야.'

'왜 인사를 안 받지? 무례하네?'

'아이가 저렇게 행동하는데 왜 수다만 떨고 있지?'


하루에도 나는 몇 번이나 마음속으로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을 미워한다. 길을 건너는데 코 앞에서 급 정차를 하는 사람, 1차선에서 거북이 속도로 줄반장을 하는 사람, 인종차별인지 나를 보고도 인사를 받지 않는 캐나다인, 놀이터에서 아이가 피해를 주는데도 수다만 떠는 엄마까지. 툴툴 대며 잠깐 미워하며 스쳐 지나간 사람들이 있다.


모르는 사람만 그런 것도 아니다. 당장 옆에 있는 배우자, 부모님, 나의 아이들까지도 뜻 대로 해주지 않을 때면 살짝 미울 때가 있다. 이제 누워서 좀 쉬려고 하는데 "여보, 이리 와봐." 불러서 못 이기는 척 가면 남편의 잔소리가 시작된다.

"이거 좀 치워두지 그랬어."

'좀 나중에 하면 안 되나?' 하나하나 다 지적하는 느낌이 들어 살짝 짜증이 났었다. 아이들이 아파 가정보육을 하면서 피곤해지다 보니 남편이 하는 행동과 말들이 귀찮아졌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느릿느릿 준비하는 아이, 이름 모를 사람들의 운전 스타일, 스타벅스의 긴 대기줄까지 의도치 않게 내 마음속에는 미움들이 자란다.


나는 얼마나 미움을 받아왔을까?


세모가 친구에게 어리숙한 실수를 할 때면 아이 친구 엄마들의 불편한 표정을 느꼈다. 아이를 탓할 수는 없으니 아이를 관리하지 못한 '나'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다. 내가 의도한 것도 아니고, 아이 역시 모르고 한 일들이 많았겠지만.


직장에서도 의도치 않은 일들로 미움을 산 적도 있다. 학기말 1주일 정도 해외 연수를 갈 일이 있었다. 교장 선생님께서 허락을 해주셨지만 가장 바쁜 시기에 개인적인 욕심으로 학교를 결근한다는 이유로 부장선생님들께서 한 마디씩 건넨 적도 있었다.


캐나다에서 처음 운전을 하면서 새로운 교통 시스템에 적응을 하느라 버벅댈 때가 있었다. 의도치 않게 실수해서 우회전을 하다 뒤에 오는 차에 피해를 준 적이 있었다. 나에게 엄청 큰 소리로 경적을 울렸었다.


지금 생각하면 나 역시 늘 실수를 하고, 누군가에게 피해를 준 적도 참 많았다. 도서관에서 책을 읽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교수님과의 상담 시간을 통으로 날린 적도 있었다. 마감 기한을 잊고, 조별과제에서 과제를 늦게 준비한 적도 있었으며, 매표소에서 어떤 줄이 진짜 줄였는지 몰라 아무 데나 서 있다가 알고 보니 내가 새치기를 한 것을 뒤늦게 알게 되기도 했다.


'정말 몰랐다.'라는 변명을 하기도 어려운 사이일 땐 더욱 미움받기 쉬웠다. 해명할 기회조차 없는 사이니까.



그러니까 그냥, 다른 사람들의 행동과 말에 크고 작은 미움이 내 마음에 자리할 때면 의식적으로 그들을 대신해 해명해 주기로 했다.

느릿느릿 가는 1차선의 차를 보며, '초보 운전인가 보다.' 생각한다.

놀이터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아이를 방치하는 엄마를 보면, '못 볼 수도 있지. 오랜만에 만난 사람이라 계속 이야기하고 싶은가 보다.' 생각한다.

내 인사를 안 받아주는 캐나다인을 보며, '그냥 나랑 거리 두고 싶은가 보다.' 하고 거리를 존중해 주기로 했다.


그래서 더욱, 가까운 가족이 미울 때면, 그동안 나의 실수들을 넘어가준 마음을 기억하기로 했다. 남편이 짜증이 나서 이런저런 것들로 잔소리를 할 때도 말이다. '이번엔 당신이 많이 피곤한가 보네.' 나도 피곤할 땐 남편에게 의도치 않게 짜증 내는 톤으로 말하곤 하니까.



자꾸 남이 미울 때면, 기억해 보자.

우리는 얼마나 미움받아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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