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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투를 잘 다루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은중과 상연> 중, 나는 누구였을까

by 이사비나

<연금술사>의 작가 파울로 코엘료는 이렇게 말한다.

"세상에는 오직 4가지 이야기만이 존재한다.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 세 사람의 사랑 이야기, 권력 투쟁, 그리고 여행이다."


*스포를 주의하세요.


<은중과 상연>이 온라인에서 많이 거론되길래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 이 드라마를 다 보고 나니, 파울로 코엘료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이 드라마가 여성 두 명 만을 주연으로 인기를 끌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이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 그리고 그 사이의 상학의 이야기, 권력 투쟁, 마지막 여행까지 담겨있기 때문이다.


이틀 만에 정주행을 해버렸다. 어릴 적 이야기도, 대학생 때 이야기도, 그리고 성인이 되어서의 이야기까지. 그 모든 시간에 나는 은중이기도 했고, 상연이기도 했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어떤 이야기는 내가 은중이고 지영이가 상연이었다. 다른 에피소드에서는 현아가 은중이고 내가 상연이었다.


9살 때였다. 우리 집은 단독 주택으로 1층에는 세를 사는 사람이 있었고, 2층이 우리 집, 3층이 할머니, 할아버지 집이었다. 엄마가 모은 돈으로 허름했던 단층짜리 집을 허물고 3층에 주차장까지 만들어 집을 지었다. 아파트는 아니었지만 드디어 나와 동생에게도 방이 하나씩 주어지고, 피아노와 침대가 각각 생겨서 무척이나 설레고 신이 났었다.


어느 날이었다. 지영이가 우리 집에 놀러 온 뒤로 다음 날부터 나의 인사를 받지 않았다. 며칠이 지나니 지영이와 나와 같이 어울리던 소영이도 내 인사를 받지 않았다. 나중에 다른 친구가 지영이가 나와 조용히 절교한 이유를 알려주었다.


"네가 침대 있다고 유세 떤다고 그랬어. 조금만 뛰어도 뛰지 말라고 하고, 피아노도 치지 말라고 했대."

정말 기억이 나지 않았다. 침대에서 뛰었던 기억도 뛰지 말라고 했던 기억도 잘 나지 않았다. 지영이는 그렇게 나와 침대 때문에 멀어졌다.


은중이는 상연이의 완전함이 부러웠다. "너는 참 좋겠다"라는 스티커로 귀엽게 표현된 은중이의 부러운 마음. 은중이는 자신의 집이 부끄러워 집 근처에도 오지 않도록 데려다주려는 상학을 마다한다. 그러나 상연은 은중이의 다정한 엄마를 부러워했다. 서로가 서로를 좋은 친구로 여기며 성장하지만 은중은 상연의 특출함을 질투했고, 상연이는 어디서든 환대받는 은중이를 질투했다.



나이가 들면 이런 유치한 질투라는 감정은 좀 덜 느낄 줄 알았다. 하지만 본격적인 학업이 시작되며 여중, 여고에서 '질투'라는 감정은 우리들의 메인 감정이었던 것 같다. 중학교 때는 가만히 있어도, 뭘 입어도 예쁜 친구에 대한 동경, 고등학교 때는 걱정 없이 1등급만 받던 친구가 부러웠다.


대학에 가서도 편하게 과외를 하지 않아도 부모님 용돈으로 백화점 쇼핑을 할 수 있는 친구들, 돈 걱정 없이 원하는 나라에 원하는 대학에 유학을 다녀오던 친구들도... 부모님께 나는 왜 마음대로 유학을 갈 수 없는지 속상하다고 투덜대던 기억이 난다. 그때의 나는 또 '상연'이었다.

'모두가 좀 덜 잘났으면 좋겠다.'라는 마음을 먹어봤으니까.


교사가 되어 꿈을 이루었고, 아이를 키우며 엄마가 되었다. 남들이 보면 많은 걸 이룬 사람으로 보이겠지만, 나에겐 아이의 ADHD를 알게 되고 가장 샘이 나던 사람이 있었다. 얌전한 아이를 키우는 부모였다.

'어딜 데리고 다녀도 나처럼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되겠지.'

'학교에 보내면서 학교에서 전화 올까 매일 걱정하며 지내진 않겠지.'

'아이는 집에서 사부작 대며 놀고 있고, 차를 마시며 책을 읽는 엄마겠지.'

'고작 한다는 걱정이 저녁 메뉴 정도겠지.'

나에겐 못된 마음이 자리했었다. 당신도 나처럼 아이 때문에 고민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못된 마음. 하지만 그녀의 아이가 심한 불안증에 시달린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말할 수 없는 죄책감이 들었다.


<은중과 상연>에서 내가 깊이 공감했던 대사가 있다.

"미워하는 게 아니라 싫어하는 거야, 나는.

-싫어하는 건 생각이 안 나서 좋은 거고, 미워하는 건 생각나서 힘든 거야."


누군가를 질투해 본 경험, 누군가의 질투의 대상이 된 경험은 꽤나 편안한 감정은 아니었다. 불쾌했다. 정말 생각하고 싶지 않은데 내 머릿속에 자리를 마련해 친히 앉혀두고 늘 생각하며 같이 걷는, 그런 불쾌한 감정이었다. 그래서 난 질투를 잘 다루는 사람이 가장 부러워졌다.


<은중과 상연>, 나는 누구였을까?

사람들은 상연이 같은 친구는 당장 손절해야 한다고. 나를 갉아먹는다고 말한다. 사실 누구에게나 약간의 은중과 약간의 상연이 함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파괴적이었던 상처 많은 친구 상연을 끝내 받아준 은중처럼, 이왕이면 나 자신이 나를 끝내 받아줄 수 있다면 좋겠다.


질투를 다루는 법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나 질투하는구나' 알아채는 순간, 입 밖으로 이 말을 내뱉는 것.

"우와, 부럽다." 나는 이 말을 내뱉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연습하면 할수록 후련함을 느낀다.


"우와, 정말 대단하네요. 부러워요."

부럽다고 말하는 순간, 질투는 '동경'이 된다. 질투는 그 대상을 미워하게 만들지만, '동경'은 그 사람에게 끝내 '배우고 싶다'는 마음마저 들게 해 주었다.


질투는 '꿈의 지도'라고 한다.

내가 되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을 알려주는 신호.

그렇다면 이제 '부럽다'라고 말해보자.

질투가 동경이 되면,

내 꿈에 더 빨리 닿을 수 있게 되니까.



KakaoTalk_20250921_193711055.jpg <타이탄의 도구들>, 팀 페리스


*사진 출처: 넷플릭스 공식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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