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하다'.
매우 빠르고 뛰어나게 느끼거나 분석하며, 작은 자극에도 쉽게 반응하거나 영향을 받는 상태.
어떤 대상에 대한 판단이나 인지 능력이 날카롭고 섬세하며, 신경이나 감수성이 날카롭게 발달했다는 의미로 주로 쓰이며, 사람의 성격뿐만 아니라 어떤 문제의 성격이나 상태를 설명할 때도 사용됨.
나는 예민한 사람이다.
"너는 늘 예민해서 밤에 9시 되면 다 불 끄고 얼른 재워야 했어. 잠 안 자면 더 예민해져서."
엄마가 증명해 준 나의 예민한 기질.
자라면서 나는 내가 예민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일을 시작하고 아이 둘을 키우며, 또 해외에 나와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가는 요즘, 생활 속에서 내 눈이 향하는 곳, 내 마음이 향하는 곳이 꽤나 부드럽지 않음을 깨닫게 됐다.
예민하다는 말은 사실 부정적으로 쓰이기도 하지만, 내 삶에서 예민함은 장점으로 작용한 적도 많았다. 나는 영어학을 전공했다. 쉽게 말하면 영어 언어학이다. 언어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변화하는지, 음가부터 대화까지 분석하는 학문인데, 내가 이 학문을 사랑하게 된 데는 나의 예민함이 한몫했다. 특히 언어학에서 '화용론'을 가장 좋아했다. 단어와 문장의 문자적 의미를 넘어, 말하는 사람, 듣는 사람, 그리고 특정 상황이나 맥락 속에서 단어나 문장이 어떻게 사용되고 해석되는지를 연구하는 분야는 내 적성에 딱이었다. 이 말은 화자가 어떤 의도로 말한 것인지, 이 대화에서 이 단어를 왜 반복했는지, 중간에 한숨은 왜 쉬었는지 대화를 분석하는 일은 언제나 예민한 나에겐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공부가 아닌 일상 속에서 이 예민함은 나를 갉아먹기도 했다. 대화를 하며 그 사람의 표정과 말투, 사용한 단어, 우리의 대화 사이에 놓인 공백들에 나는 늘 빠르게 해석하기 바쁘다.
'저 표정은 뭐지? 나랑 이야기하기 싫은가?'
'아, 외국인인 나랑 이야기하는 게 어색한가 보다.'
'아,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다르네. 그렇게 가까운 사이는 아니구나 우리가.'
'이게 정말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구나.'
예민한 사람은 한 사람과의 대화에서 한 문장만 듣는 게 아니다. 그 사람의 살짝 올라간 입꼬리, 또는 찌푸린 미간, 기울인 고개, 왔다 갔다 하는 시선, 목소리의 톤까지. 원치 않게 온 정보가 내 뇌리에 다다다 박힌다. 정말 이런 느낌으로. 다다다 다다.
해외에서 소수 인종으로, 유연하지 않은 영어 실력으로 타인과 관계를 맺어갈 때면 더욱 예민해진다. 분명 키도 몸짓도 작은 편인데, 어딜 가든 내가 너무 커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에 집중하게 된다. 결코 쉽지 않고, 편하지 않은 감정이다. 그렇게 나를 다시 알아간다.
'나는 예민한 사람이구나.'
예민한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요즘 나 자신에게 자주 묻는 질문이다. 불편한 예민함을 먼저 알아야 했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나의 생각. 사실, 돌아보면 나 역시 특정 사람들을 보며 나만의 의견이 생기기 마련이다. 좋기도 하고 싫기도 한, 또는 무 감정인 그런 크고 작은 의견. 하지만 내가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그들의 삶에 어떤 영향도 주지 않는 것처럼... 나 역시 어떻게 보이든, 그게 무슨 생각이든 그들의 자유고 그건 나에게 어떤 영향력도 없다는 것이다.
그냥... "그러라 그래. 넌 그렇게 생각하렴."이라고 말하며 내 예민함을 거두기로 했다.
그리고 예민함은 꽤나 괜찮은 강점이다. 타인에게 예민해지기도 하지만 나는 나 자신에게도 예민하다. 민감하게 내 마음을 관찰할 줄 안다. 내 감정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알 수 있다는 것은 나를 한층 더 성숙하게 해 준다. 무엇보다 '글'을 쓰는 작가로서, 분명 장점이다. 같은 상황도 같은 마음도 다르게, 100개의 시선으로 예민하게 바라볼 수 있다는 건 글을 쓸 때 언제나 도움이 된다.
'내가 뭐 잘못했나?'
오늘도 이 생각에 마음이 괴로웠다.
'네가 예민한 거야.'라는 말로는 쉽게 가벼워지지 않는 마음이다.
"뭐, 죽을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그만하자.
그만 나를 괴롭혀도 돼.
그 사람은 지금 내 생각 안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