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것도 인종차별인가?
영국 패션 잡지 '엘르 UK'에서 블랙핑크 멤버 로제를 제외한 사진을 올리면서, 인종차별 논란이 불거졌다. 그리고 또 바이럴 되었던 영상, 찰리 XCX 영국 가수가 등 지고 앉아 로제가 어색하게 대화에 끼지 못하는 장면이 차별 논란에 불을 지폈다.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372664
이번 뉴스를 보면서 그동안 미뤄왔던 불편했던 감정들이 조금씩 올라왔다. 소수 인종으로 북미 지역에 1년 동안 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인종차별이든 아니었든 따져봤자 돌아오는 말은 '그런 것 전혀 아니다. 오해였다.'라는 말일테니 굳이 되지도 않는 영어로 따져볼 생각도 하지 않았기에 불편한 순간들을 묻어두며 지나왔다.
미국에서 행해지는 인종차별 영상을 보면, 굉장히 폭력적이다. 욕설과 폭력 정도 되는 누가 봐도 이건 인종차별주의자구나 알 수밖에 없는. 또한,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 관련 내용이 많다. 역사적으로도 문제가 많아 보호하는 제도가 계속해서 생겼을 정도니.
그러나 아시아인에 대한 인종차별은 코로나 19 이후, 더 심해졌다고 한다. 정말 거리에 나가지도 않았다고. 생각보다 해외에 지내면서 겪었던 인종차별은 정말 이게 인종차별인가 아닌가 싶었던 애매모호한 상황이 더 많았다.
세모가 다니는 학교는 사립학교다. 캐나다의 공립학교는 지역에 따라 인도인이 많거나 인도인이 적고 백인들이 좀 더 많거나 그렇다. 사립학교에는 대부분 백인 아이들이 90%다. 아이들은 인종에 대한 개념이 특별히 강하지 않은지 서로 성격이 잘 맞으면 적극적으로 친구가 되고 또 잘 지내는 편이다.
그러나 몇 달이 지나니 남편도 나도 이상함을 감지하던 때가 있었다.
"Good morning! Hi!" 남편도 나도 인사를 건넨다.
대부분은 눈인사와 굿모닝 하며 아침 인사에 답을 한다.
그런데 어떤 부부가 몇 번이나 지나치고 인사를 해도 마치 우리가 안 보이는 사람처럼 일부러 눈길을 두지 않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나만의 착각이겠지?라는 생각으로 복도에 우리끼리 있을 때 하이! 인사를 하지만 그것마저도 못 들은 척한 게 연속 3번이 되니 GPT 나의 피해의식인지 인종차별인지를 묻기 시작했다. 사실 이럴 땐 난감한 논리에 빠진다.
'내가 그냥 싫은 걸까?'
'아니면 내가 아시아인이라서 차별하는 건가?'
아니면 둘 다?
남편은 내가 잘못 느끼는 거라고 했지만, 어느 순간 그녀의 남편도 우리 남편을 본 체 만 체 하는 걸 느끼면서 남편 역시 '그 부부 좀 이상하다.'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그때 알았다. 그 사람들이 우리 둘 다 싫어할 이유는 단 하나. 그냥 인종이 달라서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것.
인종 차별인가? 헷갈렸지만 미국에 오래 살았던 친구가 확인시켜준 인종 차별이 바로 '식당 좌석 배정'이었다.
북미 지역에서는 웨이터가 자리를 배정해 줄 때까지 입구에 서서 기다린다. 우리가 몇 명인지 말하면 자리를 배정하는 서버가 지정한다.
결혼기념일이라 좋은 레스토랑에 가서 아이들과 식사를 하려고 갔는데 아이들과 우리 부부를 부스 좌석이나 홀에 안정적인 좌석이 아닌, 웨이터들이 음식을 들고 왔다 갔다 하는 부엌문 앞에 배치를 해줬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아이가 의자를 뒤로 살짝 빼기만 해도 턱이 있어 뒤로 넘어질 수 있는 그런 자리가 아닌가.
우리는 그게 인종차별이라 생각하지도 않았다. 미국에 오래 살았던 한인 친구들이 식당 좌석 배정을 일부러 구석진 데 안 보이게 주거나 키친 가까이 비선호 자리에 준다는 것이 일종의 인종차별이라는 것! 그럴 땐 무조건 당당히, 원하는 자리를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팁까지 알려주었다.
최근에도 아이와 함께 간 레스토랑에서 말도 안 되는 키친 앞 테이블을 잘 쓰지 않아 끈적끈적한 곳에 좌석을 배정해 주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앉을 수 있는 메인 좌석들이 많았다.
"여기 말고 저쪽 근처로 배정해 주세요." 당당히 요구했다.
이런 소소한 인종차별은 이제 익숙해져서 그냥 당당히 요구하는 것으로 해결해가고 있다.
그런데 정말 기분이 매우 이상했던 건 아이의 생일파티였다.
남자 친구들을 모두 초대한 아이의 생일파티.
한 백인 엄마가 오더니 나에게 손 소독제를 쥐어준다.
"X가 밥 먹기 전에 손 소독 꼭 하게 해 줘요.^^"
누구도 그런 요구를 하지 않았기에... 게다가 초등 3학년 아이라면 직접 손을 씻으러 갈 수도 있기에... 아직도 우리를 코로나 바이러스 취급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잠깐 스쳐갔다.
하지만 아이의 생일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아 웃으며 꼭 알려주겠다고 했었다. 그것이 인종차별이든 아니든, 분명 다른 아이들 생일 파티에 보내면서 그런 걸 부탁하진 않았을 엄마라는 생각을 하면 우리들에 대한 묘한 다른 인식이 있었을 거라 생각이 들었다.
이 백인 커뮤니티에서 아이가 학교에 다니는 것은 부모로서는 참 쉽지 않았다.
우리는 모두를 초대했지만 우리 아이랑 아무리 친해도 우리 아이만 빼고 생일 파티를 초대하는 부모들도 있다. 이게 그들만의 암묵적인 벽이다.
캐나다의 인종차별은 이런 식이라고 한다.
앞에선 웃고, 뒤에서는 투명인간 취급을 한다는 것.
누군가는 그게 더 기분이 나쁘다고 하지만, 어쩌면 적어도 앞에서는 친절한 척해주긴 하니 덜 껄끄러운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소수 인종으로 해외에 살면서 나는 한국에 있는 다문화 가정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나마 이민자의 나라인 캐나다는 제도적으로 문화적으로 이민자에 대한 지식이 다르고 인식도 좀 더 열려있다. 하지만 교사로서 다문화 아이들을 만나며 느끼는 건 여전히 아이들은 잘 섞이지만 부모 간에 교류는 매우 적다는 것이다. 우리 반 다문화 학생의 부모님을 나는 상담에서도 만나지 못했다. 한국어가 서툴고 영어도 서툰 어머님의 경우, 그냥 상담 신청을 안 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어쩌면 인종에 대한 개인이 갖고 있는 인식과 감정은 본능적인 걸까?
하지만 인간은 본능 그 이상의 이성으로 제도를 만들고 좀 더 현명한 방법으로 문화를 만들어간다. 그러니 인종에 대한 다른 감정은 본능일 수도 있어도 그에 따른 태도는 인간의 이성이 다룰 수 있는 선택이라는 것이다.
캐나다에서 교묘한 인종차별을 당하기도 하지만, 이런 소수의 사람들보다 이방인이란 이유로 우리를 위해 기꺼이 환대하고 친절을 베푸는 캐나다인들을 더 많이 만났다. 그들 역시 아시아인에 대한 어떠한 인식이나 견해가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구가 되기로 선택하고 열린 마음으로 인사와 미소를 건넨다는 것을 안다.
이젠 고민하지 않기로 했다.
"지금 인종 차별 당한 건가?"라고 생각하기보단
필요한 걸 당당히 요구하기로.
"내 피해의식인가?"라고 생각하기보단
그게 차별이든 아니든 그 사람의 문제로 돌리기로 했다.
사실,
'우리'를 알고 싶지 않은 건 너의 손해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