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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면 대화는 더 어려워진다

by 이사비나

"그렇게 꼭 해야 하나요?"

"그때 걔가 말한 거 들어보니까 네가 그렇게 행동한 게 별로였었나봐."

관리자가 시키는 걸 하기 싫을 때, 친구에게 다른 친구의 생각을 전할 때, 내 마음속에 드는 생각들을 편하게 말하던 시절이 있었다. 누군가는 철없다고 말했을 그런 발언들.


10대 때에는 말을 충동적으로 여기저기 옮기고 친구에 대한 평가를 면전에 대고 팩폭을 날리기도 했었다. 나는 내가 편한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 친구의 표정이 썩 좋지 않았지만, 그래도 문자 한 통에 다시 또 만날 사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나이가 들면 누구와도 편하게 이야기하고 친구들은 더 많아질 줄 알았다. 누군가에겐 아직 어린 나이지만, 20대가 들으면 괴리감이 느껴지는 30대 후반의 나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직장에서 경력도 많아졌다. 시간의 흐름만큼 나는 아는 사람들이 많아졌지만, 점점 사람들과는 더욱 멀어지는 걸 느낀다.


어른이 된다는 건 누구나 꼭 친구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었다. 언제든 연락해서 밥을 먹자고, 커피를 마시자고 하던 사이는 점점 줄어들고 각자의 삶이 있다는 것을 알아가는 것. 그리고 그 사람들의 삶 속에 꼭 내가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가는 과정이었다.


이런 관계의 거리감을 깨닫고 나면 대화는 더욱 어려워진다.

거리가 있는 만큼 각자의 삶의 색은 더 또렷해진다. 나와 그의 색이 다를 때가 문제다. 내가 하는 말들이 그들의 삶의 색에 덧대어질 때 어떻게 비칠지 모를 노릇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남편을 참아주는 와이프가 이해가 안 돼."

그녀는 '그런 와이프'일 수 있다.

"그렇게 엄마가 아이한테 쓰는 시간도 아까워하면 안 되지."

그녀는 우울증 약으로 겨우 버티며 아이 밥 한 끼 차리는 것도 버거운 '엄마'일 수 있다.


가끔 모임에 나가면 아직 대화가 쉬워 보이는 어른들을 만난다.

"그 집은 매일 조부모한테 맡기니까 아이가 불안해 보이더라."

"부모가 좀 더 엄하게 가르쳐야지. ADHD는 부모 양육 문제 아냐?"

나는 바쁜 맞벌이 부모라 조부모 밑에서 자랐다. 그리고 나는 누구보다 잘 가르칠 수 있다고 자부하는 공립 교사지만, ADHD 아이를 낳은 엄마다.


어느 순간, 말을 덜 하게 된다. 그러다 그냥 '듣기'를 열심히 하기로 한다. 대화가 너무 어려워졌다. 생각보다 말하기는 쉽고, 듣기는 참 어렵다. 열심히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집에 들어오면 에너지를 얻기보다 에너지가 쏙 뺏겨 침대에 바로 털썩 눕게 된다.


그래도 다행인 건, 내가 실수하지 않았다는 것. 이렇게 또 한 번 자랐다는 것이다.

'아 그거 말했어야 했는데'

보다는 '아 그거 말하지 말걸' 이런 후회가 더 괴롭다는 걸 이해한다.


듣기도 언젠가 익숙해지고 재밌어지기까지 하는 경지에 오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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