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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사비나 Apr 19. 2023

돈 주고 혼나는 일상, 영어학원을 끊다.

영어학원과 Good Bye, 엄마표 영어의 서막

  세모는 7살부터 파닉스를 시작했다. 영어만큼은 내가 해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1년 동안 파닉스 교재를 천천히, 매일 1장씩 하면서 아이는 성장했다. 파닉스 책 뒤에 있는 플래시 카드를 함께 잘라서 매일 퀴즈를 내듯 게임도 하고, 파닉스 책과 연계된 무료 어플을 다운로드하여서 아이가 연습 삼아 태블릿으로 학습을 하는 것도 자주 했었다. 그렇게 천천히 1년이 지나니 어느새 영어의 음가를 익혔고 단어를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아이의 영어를 시작하기 전에 '잠수네'가 뭔지 너무 궁금해서 읽어본 적이 있었다. 처음 읽어본 책은 '잠수네 프리스쿨 영어공부법'이었다. 그때는 AR이 뭔지, SR이 뭔지 알아듣기도 어려웠고, 일단 방대한 양의 책을 무엇부터 사야 할지도 몰랐었다. 그래서 아이와 일단 파닉스부터 시작을 했고 아이는 나와 행복하게 영어를 배워갔다.


어느 날, 우리 동네에 깔끔한 인테리어에 원어민이 상주하는 큰 영어 학원이 생겼다.


오호?


자녀의 취학을 앞두고 있던 우리 엄마들에겐 솔깃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바로 상담을 예약했다. 세모와 함께 오라고 했다. 이 때는 진단을 받고 약 복용을 미루고 있었던 때였다.

  

  세모는 상담실에 들어가서 바로 블록을 만지고 교구를 만지며 상담이 제대로 되기가 어려웠다. 아는 단어마저도 잘 읽지 않았으며 본인이 여기 왜 앉아서 저런 질문들을 받아야 하는지 의문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세모는 초초급반에 들어가게 됐다.


'1년이나 파닉스를 가르쳤는데 파닉스를 다시 하게 하다니... 세모 친구는 중급반 정도 들어갔다던데... 에잇. 그래도 좋은 학원이라고 하니까...'


그렇게 난 30만 원을 덜컥 현금 이체까지 하고 등록하고 왔다.


  초1이 된 세모는 학교가 끝나면 학교 앞 영어 학원에 가는 스케줄이었다. 내가 생각해도 너무 완벽한 스케줄이었다고 자부했다. '우리 세모가 즐겁게 잘 다니겠지?'라고 생각하면서 아이를 기분 좋게 영어학원에 넣었다.('넣었다'라는 표현이 찰떡이었다. 스스로 가고 싶어 했던 학원도 아니고 내가 원해서 등 떠밀어 쏙 넣었기 때문이다...)


'우리 세모 잘했으려나?'


2시간이 지나고 학원 앞에서 기다리는데 세모가 없다.

"선생님, 세모 어디 있나요?"

"아 원장실로 가보세요."


(원장실)

"안녕하세요? 세모 무슨 일 있나요?"

"어머님, 세모가 장난을 계속 쳐서 영어로 반성문 쓰고 있어요."


8살의 세모는 고개를 푹 숙이고 쓰지도 못하는 영어를 꼬불꼬불하게... 무슨 내용인지도 모른 채 반성문을 쓰고 있었다... 일단 피해를 줬다는 게 너무 죄송해서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세모를 데리고 나와서 반성문을 같이 읽어보고 무작정 혼을 냈다. 그리고 다음엔 더 잘할 수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나의 바람일 뿐이었지만...)


  다음 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세모는 원장실에서 나를 맞이했다.


"세모 엄마, 세모는 개인 지도받나 봐요. 더 잘해서 그런가 봐~"

세모 친구 엄마의 말을 듣고 나니 뒤통수가 찌릿찌릿 당기는 느낌이 들었다.


'아, 우리 세모를 다른 친구들이 계속 보고 있겠구나.'


  세모는 자신의 ADHD 때문인지도 모른 채 신나면 신나서 장난치고, 재미없는 영어를 배우면서 지루하면 장난치는 아이였다. 세모에게 아무리 그날의 반성을 곱씹어가며 당부를 해도 다음 날엔 다시 똑같았다. 그때, 난 이 ADHD가 얼마나 스스로 조절해 낸다는 것이 불가능한지를... 처음으로 좌절감을 느꼈다.


  세모는 이 영어학원에서 30만 원을 주고 영어로 반성문을 쓰는 방법을 배웠고, 영어로 자신이 얼마나 이 수업에 부족한지에 대한 표현들을 배웠으며, 자신도 왜 그러는지 모르는 행동들을 반복해 오면서 좌절감을 느꼈다.


  그런데 우린 알아야 한다. 학원은 학교가 아니라는 것을. 돈을 내고 서비스를 사는 곳이다. 그리고 다른 친구들도 돈을 내고 온다는 것을... 세모의 행동 때문에 다른 친구들이 원하는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것 역시 수용될 수 없는 문제인 것이다. 그 영어학원에서 세모는 적응하지 못했고, 30만 원을 내면서 적응할 때까지 세모 홀로 오롯이 견뎌내는 건 너무나도 잔인한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우린 영어학원을 끊었다. 어쩌면 학원에서 우리가 나가주실 바랐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우리는 영어를 포기할 수 없었다. 분명 학원만이 답은 아닐 것이기에...


학원 가기 싫다는데 내가 하지 뭐!


'잠수네 프리스쿨 영어공부법' 책을 다시 펴서 보기 시작했고, 우리 아이에게 필요한 영어 공부법을 찾기 시작했다.


  ADHD를 갖고 있는 세모와 엄마표 영어를 시작하고 1년 반이 되어가는 지금, 우린 놀랍게도 많은 것을 공유하게 됐다. 내 품에서 배우는 영어는 아이에겐 놀이였고 엄마와의 행복한 시간이 되었다. 이제 세모는 영어로 문장을 말하기도 하고, 영어 책을 읽기도 한다. 나의 노력이 아니고 세모 스스로 해냈던 일들이다. 그렇게 성장했기에 세모는 매일 스스로 영어 학습을 한다. 수학만큼 좋아하는 것이 아니지만 적어도 이젠 자신을 부족하게 만드는 과목이 아니라 자신이 극복해 낼 수 있는 과목이 되었다.


그렇게 우린 엄마표 영어를 시작했다.

우리만의 영어 학습법은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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