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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사비나 Apr 05. 2023

ADHD 아이의 수학 영재반 입성기

조심스럽게, 또 아주 재미있게 수학과 함께하기

  세모의 수학 재능은 ADHD를 알기 전부터 남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물론 '영재'는 절대 아니다. 세모는 4살부터 숫자를 빨리 읽고 양에 민감했으며, 수를 세고 더하는 것이 '취미'였던 아이였다. 이런 취미 때문에 그 뒤에 가려진 ADHD를 발견해 내고 진단받기까지 조금은 힘들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런 취미는 어떻게 보면 뭔가에 꽂혀버리는 ADHD의 성향으로 볼 수도 있겠다.


  세모의 ADHD 진단 전부터 현재 9살까지의 수학 학습 과정을 보면 힘든 나날들이 초반에 많았다. 방문 선생님이 오면 구석에 숨기도 했고 학습지를 하고 싶지 않다고 왜 해야 하냐고 울부짖었던 적도 있었다. 그럼에도 내가 세모에게 수학 학습을 계속 시켰던 이유는 이 아이의 강점이 수학적인 사고력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세모는 자신이 잘한다고 생각하는 그 수준이 되면 그 일이 무엇이든 흥미를 가지고 지속적으로 잘 해낸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바로 자기 효능감이다. 그리고 이 강점이 세모가 ADHD를 갖고 있기 때문에 가지게 될 열등감의 자리를 줄여주고 자존감의 자리를 키워나가길 바라는 마음에서 초반의 힘든 과정을 꾸역꾸역 이어나갔다.


  그 과정에서 세모는 ADHD 진단을 받았고 약물 복용을 시작하며 자신의 강점을 더 강화해 갔고,

수학이 자존감이 되길 원하는 마음으로 세모와 직접 가본, 본인이 재밌을 것 같다고, 다니고 싶다고 했던 사고력 수학학원에 초1부터 다니게 되었다.


그러던 세모에게 6개월 후,

영재반 입급 시험 제의가 왔었고, 그렇게 세모는

수학 학원의 영재반에 들어가게 되었다.

(참고로, 초등학생의 영재반은 '영재'라서 들어가는 것이 아니며, 누군가에게는 그렇다 할 대단한 성과도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ADHD 아이에게는 꽤 그럴듯한 성과였다.)



ADHD가 학습에 영향을 줄 수는 있지만,
 '재능'을 발휘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

 ADHD 아이들의 수학 학습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흥미", 바로 즐거움을 잃지 않는 것이다. ADHD 아이들은 자신이 흥미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 선택적 집중을 한다. 그 특성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수학이 지겹고, 재미없는 과제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흥미를 유발할 수 있을까?


바로 다양한 방법으로 배우는 것이다. ADHD가 있는 아이들은 한 가지 방법으로 접근하면 뇌신경회로가 예민하고 다양한 아이들이기 때문에 적절한 방법을 찾기 어려워 학습에 효과적이지 않을 수 있다.

일단, 초등학교 저학년의 수학 학습에서 중요한 것들을 알아야 한다. '연산'과 '사고력', 그리고 '독서'이다. 연산은 수학 선생님들께서 강조하시듯 수학에서 도구와도 같은 것이다. 잘 갈아놓은 칼이 잘 드는 법이다. 연산이야말로 잘 갈고닦아 놓을수록 수학적 문제를 해결할 때 편하게 그 칼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사고력은 수학 같지 않지만 수학적 사고력을 키워주는 문제들이다. ADHD 아이들은 호기심이 많고 발산적 사고를 잘하는 아주 창의력이 강점인 아이들이다. 이 아이들에게 사고력 문제를 주면 다양하고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여기서 수학에 대한 흥미도가 매우 올라간다. 그리고 ADHD 아이들에게 힘든 서술형 문제를 언젠가는 맞닥드려야 할 때 결국 이 아이들이 놓지 않은 독서로부터 얻은 문해력이 화룡점정으로 그 힘을 발휘해 낼 것이다.

 

<다양한 방법들이란?>


1. 구체물을 이용한다.

  ADHD 아이들은 작업 기억이 낮아 말로 설명하는 것에 대해 주의 집중력도 낮고, 잘 기억해내지 못한다. 하지만 구체물로 수를 직접 느끼고 놀아봤던 경험은 수에 대한 감각을 몸소 익히고 체감하게 하여 좀 더 기억에 오래 남게 해 준다.


연산의 기본은 덧셈, 뺄셈이다.

덧셈이 곧 곱셈이고, 뺄셈이 곧 나눗셈이기에 덧셈, 뺄셈을 하는 데 도움이 됐던 것은 수막대이다.

특히 멀티큐브로 된 연결 수막대는 아이가 점점 쌓아 올리면서 수를 시각화해서 양적으로 느끼기에 매우 좋았다.

http://www.11st.co.kr/products/2055394820

그리고 공간 감각은 맥포머스와 쌓기 나무가 효과적이었다. 공간 감각은 평면도로 문제집에서 보면 아무리 설명해도 알기 어려웠다. 끊임없이 뭔가를 만들어내고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보면서 공간 감각이 좋아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출처: 맥포머스 공식 홈페이지

http://itempage3.auction.co.kr/DetailView.aspx?itemno=A585637392


또 하나, 분수를 시각화하며 체감하는 분수 교구도 있다. 세모는 나눗셈을 배우지 않았어도 이 구체물을 갖고 놀면서 2/3가 4/6과 같은 것을 알게 되었고, 분모가 다른 분수를 더하는 것을 여러 번 연습하면서 스스로 깨우쳤다.(물론, 완벽히 아는 것은 아니다.)

https://toyscience.co.kr/product/%EC%9B%90%ED%98%95-%EB%B6%84%EC%88%98%EA%B5%90%EA%B5%AC/2846/


2. BBC 공식 채널에서 만든 Number Blocks 영상은 강추.

  Number Blocks는 숫자들의 캐릭터별로 특성을 보여주며, 캐릭터들이 놀면서 곱셈과 나눗셈의 개념을 시각화하여 보여주며, 약수의 개념도 쉽게 이해하도록 알려준다. 물론, ADHD 아이들에게 영상은 중독의 위험이 있다. 아직 타이머가 울리면 영상을 끄는 연습이 되지 않은 아이들에게는 비추천한다.


세모는 Number Blocks를 매일 아침 유치원 등교하기 전에 30분씩 보고 등원하였었다. 엄마표 영어를 해왔기 때문에 흘려듣기로 Number Blocks를 자주 보여줬었다.

https://www.youtube.com/@Numberblocks


3. 수학 동화책을 읽어준다.

  수학을 단순 문제로만 접근하면 그 안에 촘촘히 연관된 개념의 연관성을 아이가 느끼기가 쉽지 않았다. 수학적 개념을 동화의 이야기로 배우면 아이들은 수학이 재밌게 느껴지고, 이야기로 듣기 때문에 개념을 좀 더 쉽게 이해한다. 세모가 좋아했던 수학 동화들은 두 질이 있었다. 바로 그레이트북스의 '내 친구 수학공룡'과 '개념씨 수학나무'였다. 초등학생이 된 요즘은 수학 학원에서 배운 측정법에 대해 책을 골라 읽기도 하고, '1보다 작은 수가 있을까?'라는 궁금증이 생겨 분수와 소수 책을 읽어보기도 했다.


  다양한 방법으로 흥미를 유지시켜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금기시해야 하는 것도 있다. 우리 ADHD 아이들은 굉장히 쉽게 산만해지고, 배워도 또 까먹고, 자꾸만 틀린다.


<ADHD 아이와의 수학 공부에서 금기시할 것들>


1. 타이머는 동의가 필요하다.

  ADHD 아이들은 충분히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 만약 재촉하는 상황이 생긴다면 집중해야 할 때 집중하지 못하고 시간에 쫓겨 아무 숫자나 쓸 확률이 높다. 그러나 세모는 타이머가 효과적이었다. 오히려 빠르게 풀어내고 싶어 연산의 속도를 올리기 위해 본인이 타이머를 쓰길 원했다. 그러다가 또 연산 레벨이 올라가면 시간에 구애를 받기 싫어했다. 그러므로, 타이머는 아이의 동의가 꼭 필요하다.


2. 문제를 읽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알려준다.

  ADHD 아이들은 문해력이 상대적으로 낮다. 처리속도가 느리고 작업기억이 좋지 않아 문장을 읽다가 다음 문장이 새로운 정보로 들어오면 또 잊어버리기 마련이다. 그래서 문제를 읽을 때 어디에 동그라미를 칠지, 어떤 부분을 답으로 요구하는지(개수를 묻는지, 합을 묻는지 등)를 밑줄 치는 방법들을 구체적으로 알려주면 좋다.


3. 쓰기는 절대 강요하지 않는다.

  ADHD 아이는 쓰기를 특히나 힘들어한다. 부모가 다른 나라 글자를 한번 써보면 알 수 있다. 쓰기가 얼마나 힘든 과업인지. 'ㄱ'을 써도 꺾을 때, 그리고 어느 정도 위치에 잘 배치해야 하는지 고려하면서 써야 바른 글씨가 되는데 우리 아이들은 충동적으로 써야 자기 성이 풀리기 때문에 쓰기는 참 쉽지 않다. 그러므로, 서술형은 엄마나 아빠가 까짓것 써 줘 보자. 어릴 때는 구두로 학습지를 풀게 하기도 했다.

“1+1은?” “2!”

아이가 문제 해결법을 모르는 게 아니다. 그것으로 학습은 이미 충분히 일어났다.


4. 오답에 집중하지 말자.

  항상 100점을 맞는 기분 좋음, 그 므흣한 느낌을 수학 문제를 풀 때 아이가 가져가야 한다. 오답에 집중하지 않고 얼마나 맞았는지 격려해 주고, 100점을 맞도록 천천히 풀어보는 연습을 하도록 지지해 준다. 세모는 특히나 틀린 문제에 '/' 표기로 그어버리는 것을 말그대로 극혐 한다. 그래서 난 '세모'나 '하트'로 표시해 준다. 그들의 순수함을 존중해 주자.



참고로, 이 글은 자랑하고 싶어 쓰는 글이 아니다.

세모가 영재반을 그만두겠다고 하면

언제든 발 뺄 준비를 하고 사는 엄마다.

다만, 우리 ADHD 아이들에게

하나쯤은

'나는 이걸 잘해. 이것만은 내가 제일 자신 있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세모에겐 그것이 '수학'이었을 뿐이고,

다른 ADHD 아이들은

또 다른 반짝임을 갖고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아이들의 강점을 발견하고

그걸 아주 제대로,

끝장 보듯 잘 해내는

그 '과정'을 겪어보게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 아이들은 그 기억으로 살아낼 것이고,

그렇게 커져가는 자존감이

ADHD를 갖고 살아가는 데

찾아오는 작고 무거운 열등감들의 자리를

밀어내리라 믿는다.


열등감이 늘 나쁜 것만은 아니다. 나는 못생겼다고 부족하다는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 책을 많이 읽었고 공부도 더 열심히 했다. 남에게 내 부족한 점을 들키지 않기 위해 뭘하든 더 완벽하게 하려고 노력했다. 나는 학회에서 발표를 해야하거나 원고 쓸 일이 생기면 내가 읽을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읽는다...(중략) 그렇게 많은 것을 읽고 공부한 덕에 나는 지금의 위치에 오를 수 있었다...(중략) 열등감이 있다면 그것을 어떻게든 숨기려고만 하지 말고 다른 장점을 키워 열등감을 점점 더 작아지게 만드는 것이 좋다.
- 김혜남,<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中



*사진 출처- Totallyad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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