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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사비나 Mar 24. 2023

ADHD, 학습의 자전거에 올라타라

ADHD 아이의 관성적 학습 루틴 성.. 공.. 기?

  세모의 학습을 논하기에는 세모는 현재 9살로 아주 어린 나이다. 그렇지만 학습에 대한 거부감 없이 매일 주어진 자신의 과업을 스스로 해내는 세모를 보며, 우리가 가고 있는 학습의 길이 적어도 ADHD라는 이유로  포기할 뻔한 이들에게 희망이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세모와의 학습은 5살 무렵 한글 수업을 기점으로 시작되었다. 놀이식 수업이니 딱히 학습이랄 것도 없었고 아이도 한글을 통글자로 익히기 시작하면서 한글에 별 거부감 없이 잘 배웠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세모가 블록과 퍼즐을 참 좋아하더니 어느 순간 세모가 맞추는 퍼즐의 속도와 블록으로 만들어내는 창의적인 작품들이 남편과 나를 감탄하게 만들 정도였다. 정말 또래보다 놀랍게 공간을 지각하는, 인지하는 능력이 남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냥 공간지각능력이 좋다는 이유로 단순히 '수학과 과학을 시켜볼까?' 하는 생각으로 6세에 수학 연산 학습지를 시작했다. 방문 교사가 오면 장난감을 갖고 놀고 싶어 하거나 내가 왜 100까지 써야 하냐며 쓰기가 싫다고 울던 날도 있었다. 그때는 ADHD 진단을 받기 전이기도 했고 나이도 어리다 보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고 꾸준히 학습지를 시켰었다.


사실, 세모의 현재 학습 루틴이 생기기까지 우리 모습은 말 그대로 '아비규환'과도 같은 실랑이와 협박과 외적 보상의 콜라보였다.


아비규환 [阿鼻叫喚]
여러 사람이 참혹한 지경에 빠져 고통받고 울부짖는 상황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학습을 포기할 수 없었던 교사맘인 나와 온몸으로 '내가 왜 이걸 해야 해!'라고 외치던 세모는 매일 저녁 책상에서 참혹한 실랑이를 버텨왔다. 세모에게 학습은 고통이었으며 아이는 매번 울부짖었다. 우린 그런 아비규환의 학습 현장을 6살부터 7살까지 1년 넘는 시간 동안 함께했다.


  7살에 ADHD 진단을 받고 세모가 왜 학습을 힘들어하는지 어떤 부분을 보완해야 하는지 나는 정확히 알게 되었다. 검사 결과지를 밑줄 치며 계속 공부했다. 어떤 지능이 강한지, 어떤 지능이 약해서 이 아이가 학습을 할 때 힘들어하는지 알 수 있었다. 세모의 강점은 유동추론지능과 시공간지능이었다. 이 지능이 높은 친구들은 도형과 수에 민감하다. 그래서 세모가 퍼즐과 블록 놀이에 푹 빠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세모의 약점은 여느 ADHD 아이들과 같이 작업기억과 처리속도가 다른 지능에 비해 매우 낮았다. 이 강점과 약점을 알고서부터는 세모와 나의 학습 루틴은 변화가 많았다.


9살인 지금, 세모는 이제 '왜' 숙제를 해야 하는지 묻지 않는다. 그냥 한다.


1. 세모에게 맞는 적정한 학습량을 찾기


  학습지를 힘들어했던 이유는 처음부터 5장씩 매일 풀게 했던 데 그 원인이 있었다. 그래서 전략을 바꿔 1장씩 학습지를 풀기로 했다. 1장의 연산 문제를 매일 풀고 나면 세모는 자신이 한 장의 수업을 '완료'했다는 성취감이 매우 커졌다. 그러고 나서 자신이 '잘할 수 있다'는 자기 효능감이 커지면 2장에 '도전'을 하게 했다. 아비규환의 현장에선 "세모, 이거 5장은 해야지. 수학 잘하려면 이만큼은 다 하는 거야."라고 밀어붙였었다.


하지만 아이의 ADHD 특성을 정밀히 알고 나서는 "세모야, 업그레이드 한번 도전해 볼래?"라고 세모에게 학습결정권을 주었다. ADHD의 충동성이 강점이 되기도 하는 부분이 이 아이들에겐 '도전 정신'이 많다는 것이다. 그것을 이용하면 이 아이들은 자신의 업그레이드를 매우 뿌듯해한다. 그렇게 지금은 매일 3장을 풀어내고 있으며, 초2에 두 자릿수 곱하기 두 자릿수 연산을 하게 되었다. 학습지 선생님께서 오신 지 벌써 4년 차가 되어간다. 약효가 없는 저녁 7시에 방문 선생님이 오셔도 세모는 책상에 앉아 선생님과 연산 문제지를 3장, 4장, 5장을 풀어낸다.


2. 하던 것을 멈추는 연습


  ADHD 아이들을 교육시키는 것 중 힘든 부분이 하던 것을 멈추고 책상에 앉는 일이었다. 이 연습은 사실 아직도 어렵다. 약효가 있을 때는 '몇 시에 뭐 하자~'라고 말하면 기억하고 책상에 앉아서 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약효가 없을 때, 5시 이후에 집에서 학습을 시작하기 때문에 세모는 집에 오면 일단 만들기도 해야 하고, 동생과도 놀아야 하고, 피아노도 한번 쳐야 하고 학습에 대한 계획을 기억해서 바로 해내기가 매우 어렵다. 지금도 어려운 부분이다. 그래도 하던 것을 멈추고 다음 과업을 수행해야 하는 '주의력 전환'을 계속해서 연습시키기 위해서 노는 시간도 '타이머'를 활용했다.


"세모야, 수학 연산 3장, 국어 3장, 영어 책 읽기 해야 해. 언제 시작할 거야?"
"응, 엄마. 나 지금 피아노 치고 싶어."
"그럼 몇 분 칠 거야? 타이머 15분 맞출게. 울리면 자리에 앉아야 해."
"알았어." (사실, 15분도 짧다고 징징댈 때도 많다.)


세모에게 타이머는 효과적이었다. 어릴 때부터 연습시킨 덕분에 타이머가 울리면 보던 만화도 끌 수 있게 됐고, 타이머가 울리면 다음 과업으로 전환을 잘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도 역시 실랑이가 많았다. 타이머 전환을 지키지 못하면 다음 날엔 만화를 아예 금지시키는 등 제약을 두면서 타이머 전환 연습에 몸이 반응하도록 연습을 꾸준히 시켰다.


3. 외적보상을 이용하기


  '아! 공부 너~무 재밌어!'라는 마음으로 하는 것이 내적 보상인데 세모는 수학을 잘한다는 효능감이 높아지면서 내적 동기가 커져 밤까지 수학 문제를 풀거나 연산 식을 끄적이면서 노는 게 취미가 되었다. 하지만, 영어나 책 읽기 등 본인이 하고 싶지 않아도 해야 할 과업을 계획하고 해내는 것에 대해 성취감을 느끼게 하기 위해, ADHD 아이는 눈에 보이는 외적보상이 아주 효과가 좋다. 매일 국어, 영어, 수학, 독서 이 4가지 숙제를 마치면 스티커를 붙여주었다.


우리는 매달 초에 외적 보상으로 무엇을 받을 것인지 2~3만 원 내에서 선물을 정한다. (세모는 보통 포켓몬카드를 원한다. ㅎㅎ) 하루라도 빼먹는 날에는 선물을 주지 않았다. 이게 정착되기까지는 많은 실랑이를 견뎌내야 했다. 하지만 그 외적 보상이 세모의 품에 들어가는 순간, 아이는 깨달았다. 자신이 매일 '하기 싫어도 참고 해냈던 경험'이 주는 즐거움과 성취감을 말이다. 이번 달 말에도 세모는 포켓몬카드를 받을 예정이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해냈기 때문이다.


4. '매일 학습'의 관성을 유지하기


  세모의 학습이 안정을 찾은 지금, 여러 가지 힘든 아비규환의 현장을 겪어내면서 느낀 점은 ADHD 아이들은 학습 루틴에서 변화가 있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ADHD의 친구들이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에 '불안'이 있다. '불안감'이 높은 사람들에게 변화는 스트레스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어느 정도의 통제는 안정감을 준다. 학습에서 안정감을 느끼기 위해서는 변화무쌍한 학습 스케줄보다는 꾸준히 같은 루틴을 띄는 것이 아이가 안정감을 느끼고 변화에 대한 스트레스가 없이 학습에 임할 수 있게 한다.


예를 들어, 세모가 해야 하는 학습량이 100이라면 월, 화요일에 50, 50씩 하고 수, 목, 금, 토, 일요일에 자유를 주는 것보다 20씩 월, 화, 수, 목, 금요일에 나눠서 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세모가 방학 때 할머니댁에 가서 자유로운 시간을 보내다가 다시 집에 와서 학습 루틴을 시작하려고 하면 늘 하던 숙제고 양이 적어도 너~무 괴로워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3일이 지나면 몸이 그 루틴을 잊고 새로운 루틴에 적응해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를 다시 학습 루틴으로 데려오기 위해 나의 에너지, 그의 에너지가 불필요하게 다시 소비되었다.


 특별히 ADHD 아이에게는 학습이 자전거 타기와도 같다. 첫 페달을 밟을 때 힘을 주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페달을 밟는지도 모른 채 신나게 달려간다. 그렇지만 브레이크를 걸고 멈췄다가 다시 달리려면 다시 또 힘을 들여 페달을 몇 번 밟아주어야 하는 것처럼 학습도 그렇다.


힘든 실랑이와 협박과 보상의 굴레를 겪어내고 나면 어느정도 학습의 궤도에 들어서 루틴이 되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일단 아이가 첫 학습의 패달을 열심히 밟은 후, 신나게 달리는 학습이란 자전거에 올라탔다면, 그리고 중간에 내리지만 않는다면, 오르막길도 쉽게 올라가며 가끔 만나는 내리막길의 짜릿함마저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세모의 학습은 자전거 타기처럼 매일매일 이루어지고 있다. 매일 하는 게 힘들어 보인다면 양을 줄여야 하는 문제이지 학습을 멈춰야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린 이제 여행을 갈 때에도 숙제를 가지고 간다. 당연히 매일 하던 것이기 때문에 세모는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이미 학습이라는 자전거에서 편하게 달리고 있기 때문에 달리 큰 에너지가 쓰이지 않기 때문이다.


5. 학습의 마무리는 항상 아름다워야 한다.


  습관을 유지하는 데 있어 중요했던 것은 아이가 오늘의 할 일을 마치고 기분 좋은 피드백을 받는 것이었다. 엄마의 허그나 달콤한 간식이나 엄마를 독차지하는 시간 등 아이와의 학습 후 마무리는 항상 아름다워야 한다. 숙제 검사는 아이가 뭘 모르고, 틀렸는지를 점검하는 시간이 아니다. ADHD 아이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자신이 시작한 일을 잘 마무리했다는 작은 성공경험이다. 그 작은 성공 경험이 매일 쌓이다 보면 학습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는다. 불안해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세모의 학습에 대한 태도, 공부에 대한 정서를 귀하게 여기며 칭찬한다.


세모야, 오늘 처음 시작할 때
지겹고 집중 안 되고 힘들어 보였는데,
그걸 이겨내고 이렇게 해야 할 일을 다 했어!
이건 엄청 대단한 거야.
엄마도 못할 때가 많거든.
네가 이젠 곱하기까지 하는 걸 봐.
매일매일 하니까 여기까지 왔어.
정말 칭찬해. 너무 대단해.
내일도 '우리' 잘해보자!



*사진 출처- pngt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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