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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사비나 Jan 19. 2023

아주 무겁고 외로운 비밀

동굴 속에 사는 모든 ADHD 아이들의 부모님들에게

오늘은 편지글로 남기고 싶다.

adhd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와 아빠들에게 보내는, 그리고 나에게 보내는 위로의 편지다.


안녕하세요? 똑똑똑. 아니 쿵쿵쿵!

adhd 아이 세모를 키우는 엄마이자 학교 선생님 사비나입니다! 거기 아무도 없나요? 각자의 동굴에서 아이의 비밀을 심장 가장 깊은 곳에 꼬깃꼬깃 넣어두고 아프지 않게 잘 지내고 계신가요?

제 얘기 좀 들어주시겠어요? 저는요. 의사 선생님이 우리 아이 adhd라고 포스트잇에 적어준 그 순간을 그림처럼 기억해요. 그 포스트잇을 보는 순간 아이의 뒷모습을 보고 눈물이 났어요. 낳는 순간부터 내 자랑이었던 아기가 내 인생의 수치스러운 하나의 아이콘처럼 변하는 순간이었거든요.

저도 미디어에서 본 adhd 아이들을 기억해요. 폭력적이고 눈빛이 무섭고 일단 공부는 포기해야 하는 그런 아이의 모습이요. 교사로서 솔직히 adhd 아이들 우리 반에 있으면 그저 모두가 힘들겠구나 생각하고 올해 무사히 보내길 기도하며 지낸 적도 있고요. 그런데 그런 adhd가 우리 아이래요. 이건 제 인생 가장 큰 낙제점 같고 나름 임용고시 통과해서 뿌듯한 일만 있었던 제게 제일 큰 비밀이자 부끄러운 일이었어요. 우리 아이 공부 잘 시켜서 특목고 보내고 명문대 보내야지 생각했던 세속적인 꿈도 아무 소용 없어졌구나. 제 인생은 그저 이 아이 때문에... 어쩌면 내가 죽을 때까지 좋을 일은 없겠구나.라는 생각이 극단으로 치닫더라고요.

그런데 제가 더 힘들고 아팠던 건, 어디에도 이 사실을 말할 수 없다는 외로움과 답답함이었어요. 의사 선생님은 약먹이라 할 뿐 내 사람이 아니잖아요. 친정 부모님께도 말하기 어려웠어요. 우리 아이 잘 키우는 거 보여드리고 싶었거든요. 무엇보다... 친한 친구들, 아이 친구 엄마들에게는 앞에만 서면 저는 참 작아졌어요. 교사인데 아이를 잘 키워내지 못할 것이라는, 나만의 기준에 못 미치는 데서 오는 자책감, 자괴감이 컸거든요. 그리고 아이가 친구 엄마들에게 스스럼없이 말 걸고 친구들에게는 엉뚱한 소리를 하고 그럴 때면 그 자리를 얼른 피하고 싶었어요. 그러다 보니 점점 더 아이를 데리고 타인들 앞에 서야 하는 일 자체를 피하게 되더라고요. 그렇게 전 저만의 동굴의 돌들을 쌓아 올렸어요. 우리 가족끼리만 있으면 내가 느낄 수치감, 자책감, 자괴감은 없을 거야. 하면서요.

 


그런데요. 이 동굴이 아주 깜깜해서 내 목소리만 듣게 되는 아주 나쁜 부작용이 있어요. 이 동굴 안에는 사실 제가 꽁꽁 숨겨둔 나의 아이, 세모가 있었거든요? 알고 계셨나요? 당신의 동굴에 있는 아이를요... 제가 이 아이를 보기 시작한 건 사실 제 상담치료가 6개월 지나고 나서부터였어요.

'세모야, 미안해. 너를 숨겨야 하는 존재로 여기고 너의 빛을 나는 꽁꽁 숨기고 봐주지 못해서 미안해.'

이 아이의 마음의 소리를 들으면요. 제 생각만 했던, 나랑 다른 사람들만 생각했던 제 자신을 돌아봅니다. 이 아이가 보이기까지는 사실 고통을 온전히 느끼고 치유의 시간이 필요했어요.

근데 온라인 카페에 들어가면 느껴요. 각자의 동굴을 짓고 살고 있는 엄마들을요. 저도 그 동굴에 가보고 싶어요.


당신의 마음은 얼마나 고통스러웠나요? 당신은 어떤 걸 숨기고 살고 있나요? 우리 같이 솔직해져 보면 안 될까요? 제 동굴에도 들어와 보실래요? 아주 예쁜 세모라는 아이가 있는데 함께 이 동굴 밖으로 나가도록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있잖아요.. 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 함께 해요, 우리.


동굴 안에서 빛을 보지 못하고 벌거벗은 느낌으로 살지 말고요. 우리 아이들 아주 예쁘게 빛나는 부분을 더 빛나도록 싹싹 닦아줘서 동굴 밖에서 만나요. 꼭이요.


                                                                                                             - 세모 엄마, 사비나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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