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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사비나 Jan 25. 2023

ADHD 아이의 엄마로 살면서 얻은 것

콜 포비아- 언제쯤 전화가 두렵지 않을 수 있을까?

(전화벨 소리...)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세모 어머님 되시죠?”
“네 선생님. 안녕하세요? 무슨 일이실까요?”
“네 어머님. 오늘 세모가요... “...

“네 선생님. 너무 죄송합니다. 세모가 대체 왜 그럴까요? 집에서 엄하게 얘기해도 잘 안 되네요.. 가정에서 더 지도하겠습니다. “
(통화 종료..)

”세모!!!! 너 이리 와 봐. “


  교사로 살면서 매년 내게 선배 선생님들께서 하시는 말씀이 있다.

“학생이 문제 행동이 보이면 부모님들께 바로바로 전화해야 해. 나중에 큰 일 터지고 전화하잖아? 그럼 왜 진작에 전화 안 했냐고 하더라고. 부모님들한테는 미리미리 알려드려~”

이 말이 깊이 와닿았기에, 그리고 부모님이 아는 자녀의 모습은 보통 학교에서 학생이 보이는 모습과는 다른 경우가 많기도 하기에 나의 학생들이 문제 행동이 있을 때마다 나는 바로 그날 수화기를 들어 어머님들께 전화를 드렸었다.


“어머님~ 안녕하세요? (보통 도레미파솔 중 솔 톤이다.) 오각이 담임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오각이가 오늘 동글이한테 펜을 던져서 동글이가 머리를 맞았는데 피가 좀 났어요.. “

“어머님 안녕하세요? 오각이가 수업 시간에 너무 떠들어서 다른 친구들한테 방해가 되어서요. 집에서는 어떤 모습인가요? “


아이를 낳기 전에는 학부모님의 마음을 잘 알지 못했다. 나를 위해서, 그리고 학생의 발전을 위해서 이렇게 시시콜콜 알려드려야 한다는 마음으로 수화기를 들어 호기롭게 어머님 번호를 눌렀다. 그 아이가 집에서 어떤 지도를, 아니 호통을 듣게 될지는 별로... 나의 관심사는 아니었다. 실제로 교사들이 가정에 알리는 마음은 부모님께서 가정에서 좀 더 잘 지도해 주시기를, 아이가 부모님과의 애착이 더 형성되어 있으니 부모님의 지도를 잘 받고 학교에서 변화가 있기를 기대하는 마음이 제일 크다. 하지만 한 부모님께서 전화 좀 그만해달라고 말씀하셨을 때, 내 마음이 쿵 내려앉았었다.

왜지? 학교생활이 안 궁금하신 걸까?


   세모가 5살 때부터였다. 유독 선생님의 전화가 잦았다. 이때부터 든 나의 생각은 이런 변화를 거쳤다.

첫 번째 전화 - 선생님께서 힘드시겠다..

두 번째 전화 - 우리 아이가 대체 왜 이러는 걸까? 혼을 더 내보자.

세 번째 전화 - 선생님이 너무 예민하신 거 아닐까?

네 번째 전화 - 선생님이 우리 아이를 싫어하시는 것 같은데... 찾아가서 얘기해봐야겠다.

나도 별 수 없이 엄마였다. 잘 기르고 싶고 어딜 가든... 특히 선생님께는 칭찬만 받았으면 했다. 왜냐하면 선생님께 합격점을 받는다는 것은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다는,  주류의 성향을 가진 아이라는 것을 인정을 받는 것이고, 한국 사회에 아주 잘 적응하여 튀지 않고 추후 학교 생활까지도 잘 해낼 아이라는 것을 보장해 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모는 5살에 자주 자리에서 이탈했고, 친구와 니 거 내 거 하며 자주 트러블이 생겼었다. 나는 아이가 에너지가 많고 어리니까 내년엔 괜찮겠지 하고 내 자신을 달래며 1년을 보냈다.

 6살, 7살 때에는 다소 젊고 에너지도 넘치는 선생님을 만나 아이가 비교적 즐겁게 유치원 생활을 했는데 이때에도 자주 전화가 왔었었다. 통화할 때마다 선생님들께서는 나의 좌절감의 울음도 기다려주시고 아이가 내년엔 괜찮을 거라는 위로도 항상 덧붙여주셨다.


그러나 나는 교사이기에 교사가 전화했을 때 그 의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세모 때문에 학급이, 그리고 교사인 제가 많이 힘든 상황입니다. 가정에서 지도 좀 부탁드립니다.‘


  교사라는 아이덴티티도 나의 여러 모습 중 하나이지만 무엇보다도 난 세모의 엄마였기에... 아이가 내 기준보다 못하다는 말들을 들어야 했던 수많은 전화통화들이 나에게 “넌 엄마로서 낙제야. 네가 양육을 어떻게 하길래 애가 유치원에서 그런 식이니.”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아무리 집에서 혼을 내고, 제발 유치원에서 선생님 말씀 좀 잘 들어달라고 애원을 해도... 아이는 개선되지 ‘못‘ 했다. 이때만 해도 아이가 어렸기에 나만 참으면, 나만 인내하면 아이는 마법처럼 형님이 되어 의젓해질 거라는 절박한 희망으로 버텨내보려 했었다. 이 아이가 ADHD였기 때문이란 것을... 저 가슴 한편에 아주 작은 의심으로... 알고 있었던 것 같긴 하지만 말이다.


이 전화들을 받으며 내가 얻은 것은  ”콜 포비아(Call Phobia)“이다. 보통은 비대면을 선호하면서 생긴 공포증이라고 하지만 나는 그 출처가 다르다. 바로 위와 같은 과정을 겪다 보면 ADHD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은 이 공포증이 생길 수 밖에 없다. 심지어 나는 같은 교사면서도 교사의 전화가 무서워질 지경이었다. 전화 한 통에 옐로 카드를 받는 교사 엄마였다. 세모를 유치원에 보냈을 때 전화 진동이 울리는 순간엔 심장이 발끝까지 떨어진다. 쿵! 특히 지역번호가 뜨면 유치원인 걸 알기에 심장마비가 올 듯 심장이 아프고 식은땀도 난다.


‘뭐지? 이번엔 또 무슨 일일까?‘


  세모의 ADHD 진단 후, 난 복직을 했다. 이후에 난 세모의 ADHD 진단 전과는 전혀 다른 교사가 되었다. 학부모에게 전화를 하지 않게 되었다? 아니다. 오히려 전화를 능동적으로 한다. 그들을 위한 굿 뉴스를 위해 전화한다.


우리 반의 말썽꾸러기들에게도 반짝이는 부분들이 분명히 있다. 우리 반의 땡글이는 매 시간에 수업을 안 듣고 만화책을 본다. 예전 같았으면 바로 전화해서 수업을 안 듣는 건 해당 시간 선생님들을 무시하는 것과 같다라고 전달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젠 다르다. “어머님, 땡글이가 중학생이잖아요. 학교에 제시간에 등교하고 결석도 안 하고 얼마나 대단합니까? 이 시기에는 학교에 건강하게 나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겁니다. “라고 자신 있게 말씀드린다.


정말로 그렇다. 우리 중딩이들 중, ADHD 아이들보다 더 심각한 아이들은 우울증이 있는 아이들이다. 학교에 오지 않는 아이들이다. 아픈 아이들이다. 그들의 깊은 마음을 이해하기도 어려울뿐더러 스스로 고립시킨 아이들은 정말 사춘기와 맞물려 모두가 어둡고 길고 긴 터널에 정체되어 있다. 그래서 난 이 중딩이들이 학교에 건강하게 제시간에 등교해 주는 것만으로도 너무 대견하다.


그래서 나는 우리 꾸러기들의 반짝임을 열심히 찾아내 부모님도 못 보시는 그 희귀한 반짝임 들을 모아 굿 뉴스로 전달해 드린다. 꾸러기들의 학부모님들께서 나처럼... 교사와의 통화에서 “당신 자식은 학교에서 낙제야. 세트로 당신까지도 낙제야.”라는 말을 듣는 양, 자책하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이런 굿 뉴스들이 쌓여서 우리가 전화벨을 듣고 심장이 내려앉는 그 트라우마적인 경험을 덜 하게 되길 바란다. 나의 꾸러기들을 향한 애정 어린 시선을 부모님들께서도 자녀들에게 보내주길 바란다.


가장 편안함을 느껴야 할 아이들의 집에서
호통이 아닌 따뜻한 소통이 오가길 바란다.


그리고 ADHD 아이를 키우는 엄마, 아빠들이 조금은 전화벨 소리에 무뎌지기를 바라본다...


교사는 아이를 1년 데리고 가지만
당신들은 평생을 함께 하는 것을 기억하길,

전화를 끊고,
뒤돌아서 아이에게
모진 말들을 쏟아내지 말기를,
- 당신의 아이는
이미 학교에서 고군분투하고 있기에...

그리고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나와 동료 교사들의 마음이
수화기를 넘어갈 때
덜 왜곡되기를 소망한다.



*사진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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