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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사비나 Jan 29. 2023

저는 매일 아이에게 거짓말을 합니다.

"세모야, 이건 키를 자라게 하는 뇌 영양제야. “

“세모야, 의사 선생님께서 이걸 먹으면 키가 쑥쑥 자란대. 그리고 머릿속 뇌도 쑥쑥 자라서 세모가 더 잘 크게 해 준대. 아무 맛도 안 날 거야. 맛있는 짜요짜요에 뿌려서 줄게~ 매일 아침마다 짜요짜요 먹으니 좋겠다~“

‘웃기지도 않네.
키 크게 해 주는데 뇌는 왜 자라냐
세상에 뇌 영양제가 어딨냐.
니가 낳아놓은 니 고운 자식 8살짜리 밖에 안 된 아가한테 무슨 짓을 하는 거냐.
니 편하자고 약 멕이는 거지.

이건 다 너무 깐깐한 세모 담임 샘 때문이야.
아니, 교사가 무슨 죄? 너도 교사야. 정신 차려.
아니, 이건 창의성 따윈 짓밟아버리는 우리나라 토종 한국인의 답답하고 보수적인 문화 때문이야.
이런 나라에 태어나서 그래.‘

누구든, 어디든 탓할 곳이 필요했다. 그렇지 않으면 매일 내 손으로 건네는 정신과 약이 내 아이의 입으로 들어가는 걸 보는 것이 도무지 납득이 안 되기 때문이다...

  

  학교에서는 교사들이 특정 나이대의 아이들의 표준화된 행동과 발달의 기준을 너무 잘 알 수밖에 없다. 아이들의 행동을 대략 한 달 정도 지켜보면 안다.

‘저 아이는 주의력과 집중력이 낮구나. 저 아이는 결핍이 많구나. 저 아이는 과잉행동이 좀 심하네.‘

그렇다 보니 동료 교사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몇 반, 땡땡땡”이라는 특정 이름들이 자주 입에 오른다. 이 중에 아이가 ADHD일 확률이 아주 높은 경우로 판단될 때가 있다. ADHD 자가진단 체크리스트에서 2/3는 체크되는 그런 아이 말이다. 이런 경우, 보통 교사는 검사조차 권유하기를 꺼리게 되어 아이는 도움을 받지 못하고 한 해 한 해 그냥 진급을 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학부모님께서 어떻게 받아들이실지 모르기 때문이다. 나 역시 ADHD 아이를 키우지만 선뜻 검사를 권유하기는 어렵다. 부모로서 모르는 게 약이지 않을까...라는 마음도 들 때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계속 교사에게 이름을 불리는 아이를 바라볼 때면 생각한다.

‘너를 위한 도움을 줘야 하는데 선생님도 그 답을 모르겠어 이젠.. 내 아이도 약을 먹이는 게 이렇게 가슴 아픈데 어떻게 남에 아이한테 검사받아 약이라도 먹어달란 얘길 해...’


  세모의 8살 4월, 세모는 메디키넷 5ml를 복용하기 시작했다. 3월 말 담임선생님과의 상담에서 피드백이 아주 안 좋았기 때문이다. 자주 아이를 불러내시는 것 같았다.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교사는 아이가 교실이라는 사회에 잘 적응하길 바라고 교실에는 잘 해내는 아이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세모야, 잠깐 이리 와볼래?”라며 아이의 이름을 자주 부르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교사에게 아이가 조금 산만할 수 있지만 아직 초딩 1학년이니까 기다려달라고 하기엔 선생님께서 너무 세모를 자주 불러 우리 아이의 이름을 다른 아이들이 너무 빨리 알아버리는 게 두려웠다. 그래서 상담 전화를 끊자마자 근처 대학병원에 초진 예약을 하게 되었다. 7세에 ADHD 진단을 받았지만 우리는 희망을 가지고 양육방식을 바꾸면 나아질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우리 아이가 버겁다고 한다. 교사도 사람인지라 특정 아이가 계속 튀면 그 아이를 자꾸 부르게 된다. 보통은 칭찬을 위함이 아니라 지적과 통제를 위해서다.

  

  그런데 ADHD 아이들의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 아이들은 주의력과 집중력이 부족하니 “자신의 마음, 자신의 슬픔, 자신의 억울함”까지도 눈치채지 못한다. 혼나도 뒤돌면 헤헤헤... 다음 날에도 담임샘이 좋다고 신나서 학교를 간다. 그런 세모에게 고마웠지만 세모만 모르고 담임교사와 주변 친구들은 다 아는 것이다. 세모는 그 반에서 유독 자꾸 이름이 불린 다는 것을... 그러다 보면 아이들은 담임교사의 관심을 끌기 위해 세모 같은 아이들을 이용하기도 한다. 가끔은 터무니없는 일들로 그 아이들의 흠을 찾아낸다.


“선생님! 세모가 선생님이 가위랑 풀 먼저 정리하라고 했는데 색종이를 먼저 정리해요! “

(무엇을 정리하든 사실 크게 중요하진 않다는 걸 알면서도...)

“선생님, 세모가 저한테 기분 나쁘게 말해요.”

(퉁명스럽게 말하게 만든 원인은 너에게 있잖니...)


그럼 선생님은 세모를 훈육하게 되고, 신고자들은 선생님의 관심을 끄는 데 성공한다. 얼마나 신박한 방법인지... 이런 일들의 연속이라는 것을 감사하게도 세모의 담임 선생님께서는 나에게 모두 알려주셨다. 비수처럼 아픈 말들이지만 나는 알아야 했다. 초등학교 1학년은 학교라는 사회생활의 시작이기에 세모가 지금 행동이 수정되지 않으면 다음 해에도 세모라는 이름은 아주 산만하고 피해를 주는 소위 V.I.P 학생으로 낙인찍힐 수 있기 때문이다. (교사들은 진급할 때 특이점이 있는 학생들의 정보들은 서로 공유를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메디키넷을 소량 복용하기 시작하면서 첫날엔 효과도 부작용도 티가 하나도 안 났다. 그러다 둘째 날부터는 밥을 거의 안 먹었고... 두통을 호소했다. 셋째 날에는 배가 아파서 울기에 무릎에 눕혀 ‘엄마 손이 약손’ 노래를 부르며 한참을 문질러 주었다. 그다음 날부터는 수면 장애가 와서 밤 9시면 자던 아이가 10시, 11시까지 뒹굴며 괴로워했다...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걸까.’


그럼에도 세모는 감사하게도 부작용이 일주일 정도 있다가 사라졌다. 식욕은 여전히 부진하다... 의사 선생님께서 10ml로 증량하자고 하셔서 세모는 초등 1학년 동안 메디키넷 10ml를 복용했다. 적응 기간을 거쳐 세모는 성장했다. 약효는 적당히, 어쩔 땐 과하게 작용했다. 학교에서 가져오는 학습지와 교과서 안을 보면 글씨도 예뻐졌고, 한 번도 선생님의 전화를 받지 않았으며, 친한 친구들도 많아지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아이가 자신의 모습에 만족했다는 것이다.

“엄마, 동글이는 선생님이 계속 불러. 오늘 수업 시작 했는데 혼자만 종이접기를 계속하고 멈추지 않아서 혼났어.”

예전엔 이런 눈치조차 없었다. 남이 뭘 하든~ 뭔 상관~ 그런데 이젠 자기 자신이 덜 혼나고, 때론 칭찬도 받으면서 자존감이 아주 올라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난 약물 복용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메디키넷의 약효가 있는 시간에 아이가 예민하고 우울해질 때도 있다. 점심시간이 전부인 초등학생이 그 시간이 약효 피크 시간이 되면 한 없이 축 처져 오늘은 내가 세상에서 가장 우울한 사람이라는 것처럼 앉아 있는 날이 꽤 많았다. 그런 모습들을 보며  ‘내가 무슨 짓을 하는 거지?’ 하는 생각은 여전히 지울 수가 없다. 뒤 돌아 울게 될 때에도 ‘니가 니 편하자고 니가 니 손으로 약 주면서 울긴 왜 우냐고’ 나 자신을 갉아먹는 자책 속에 빠졌었다. 그러니 이런 과정을 겪으면 절대 내 학생들과 학부모들에게 “땡글이는 약물치료를 받으면 너무 좋을 것 같아요 어머님. “이라고 말할 수 없겠더라... 그럼에도 난 부작용과 약효와의 저울질에서 약효가 더 중요하다는 판단을 했다. 내 마음은 불편했지만 아이의 마음은 참 편해진 부분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학교 생활에서의 자신의 모습, 친구들과의 편안한 대화 속에서 말이다... 부디 내 판단이 너에게 독이 아닌 득이었길 매일 기도한다.


저는 우리 아이에게 매일 거짓말을 합니다.
제가 피노키오라면 제 코는 지구 몇 바퀴를 돌 정도로 길어지겠지요?
저는 아이에게 언젠간 용서받을 수 있을까요?...
약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당신들의 마음을 안아드립니다.
당신들에게, 그리고 나에게 지금 제일 필요한
희망과 믿음을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우리가 있기에
오늘도 자기 자신을 더 사랑하게 됐을 거예요.

그러기에 우리의 거짓말들은 언젠가 꼭 용서받을 수 있을 거예요.



*사진 출처- 약학정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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