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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사비나 Jan 19. 2023

아이와 함께, 결국 정신건강의학과

내 아이를 손잡고 데려간 그곳

젖먹이 시절부터 힘들었다. 모유를 열심히 먹여보고 싶어 물리면 30초, 1분 컷. 그러다 소리라도 나면 뒤를 휙 돌아볼 줄 아는 아이. 결국 나는 찔끔찔끔 먹는 아이가 키도 작고 말라가는 걸 보며 100일 만에 단유를 했다. 완분을 하며 아이는 조금씩 적응해 나갔다. 마냥 해맑은 아이의 영유아 시절... 남자아이라서 발차기도 힘이 센 거겠지? 남자 아이라 빨리 걷는 거겠지? 나도 모르게 '남아'니까 라는 생각에 그 힘찬 에너지를 긍정적인 관점으로 바라보려고 했다.


어린이집 시절은 더 힘들었다. 전화벨이 울리면 '어머님, 세모가요. 동글이를 툭 치고 밀었어요.' '어머님, 세모가 밥을 먹을 때 너무 일어서서 돌아다녀요.' '어머님, 활동 시간에 자꾸 앞에 나서서 수업에 방해가 되어요.'라는 말들을 들어야 했다. 1년에 3번씩은 들었던 것 같다. 학교에서 일하는 '교사'라는 직업을 가진 나는 아이가 미웠다. 엄마가 교사인데 왜 저런 말 그래도 방방 뛰는 아이가 태어났을까. '교사' 자녀는 다르다고 생각할 텐데, 창피했다. 고작 4살, 5살인 아이를 붙잡고 열심히 다그쳤다. 설명을 해도 안 나아지니 더 강하게 다그치고 아이 아빠는 더 무섭게 혼을 냈다. 6살, 7살에도 남편과 나는 '죄송합니다.'를 입에 달고 살며 아이는 호랑이 부모와 지적만 받는 사회생활을 하며 그렇게 그냥 시간이 흘렀다.


그런데 결국 올 것이 온 것이다. 초등학교 취학 통지서. 그때부터 등꼴이 오싹해졌다. 학교의 분위기를 너무 잘 아는 나는 덜컥 아이가 걱정이 되었다. 학교 선생님께 계속 전화 오면 어쩌지? 이 생각을 제일 많이 했고 학교폭력이라도 저지르면 어쩌지?라는 생각까지 이르렀다. 그러다 교사로서 늘 들어온 그 단어를, 애써 외면해 온 그 단어를 무의식 속에 계속 눌러뒀던 그 단어를 이젠 마주해야 하지 않나 싶었다. ADHD. 금쪽같은 내 새끼가 바로 우리 아들인 것만 같아 이제는 병원을 가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마침 둘째가 어려 휴직 중이었고, 아이가 초등학교 가기 전에 약을 먹게 된다면 맞는 약을 찾는 과정도 면밀히 관찰해야 할 거고, 큰 병원 대기 시간도 길기 때문에 휴직 중인 지금이 아주 적기였다.


다짜고짜 친정 근처 대학병원 정신건강의학과에 예약했다. adhd 전문인 인기 교수님들 예약은 이미 2년도 기다려야 한다기에, 소아정신과가 아닌 정신건강의학과에 무작정 예약을 했다. 이 예약도 8개월 뒤에나 진료가 가능하다고 했는데 마침 취소 자리가 나 아이와 함께 7살 4월에 초진을 보게 되었다. 아직도 기억이 난다. 옆 자리에서 열심히 음성 틱을 하던 아이, 그 옆에 이젠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것처럼 앉아있는 굳센 엄마의 모습, 우울함의 옷을 잔뜩 겹쳐 입은 듯한 10대 아이, 그 옆에 말라간 또 다른 엄마. 나와 세모는 어떤 모자로 보일까. 아이 손을 잡고 걸어 들어간 정신건강의학과 복도에서 나는 느꼈다. 내가 어떤 모임에 가입했는지 말이다. 그 당시 심정은 지옥길에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지옥에서 아이가 뜨겁지 않기를 바라며 내가 온통 다 짊어지고 맨발로 지옥길을 걸어내는, 내 아이는 아무것도 모르길 바라는 그런 마음이었다.


예진이 끝나고 교수님을 만났다. 목에 스카프를 두르시고 나긋나긋한 목소리의 아주 점잖으신 여교수님이셨다. 아이와 간단한 대화를 나누셨다. "세모는 무슨 어린이집에 다녀?"

"00 어린이집이요."

"세모는 친한 친구들 있어?"

"네. 동글이랑 친해요. 근데 제가 장난쳐서 맨날 뭐라고 해요."

"장난을 멈추면 되지 않을까?"

"아는데 잘 안 돼요."


그런 거였다. 아는데 '조절', '통제'가 스스로 안 되는 것이다. '7살이 그럴 수 있지~'라고 생각하기엔 또래들은 어느새 참 의젓해져 가더라. 엄마면서 교사인 나는 알았다. 우리 아이는 보통과는 다르다는 것을. 선생님께서 주의력 검사(CAT)와 인지능력검사(웹시), 뇌파 검사를 하자고 하셨다. 아이와 병원을 나오며 택시를 타고 오는데 아이가 기사님께 바르게 인사하고 나와 도란도란 얘기하며 가는데 참 얌전했다. 이 모습을 보며 adhd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작은 희망을 가져보기도 했다. 몇 분 정도 얌전한 아이를 보면 이런 애가 무슨 adhd겠어. 어리니까 그렇겠지라고 생각하며 돌덩이가 내려앉았던 내 마음에 희망이 차서 돌덩이가 살짝 들어 올려지는 느낌처럼 안도감으로 며칠을 살다가 또 어린이집 선생님께 전화받으면 희망이 빠져나가고 돌덩이가 다시 얹어지는 그런 경험을 몇 번이고 반복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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