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사비나 Jan 22. 2023

ADHD인 게 잘못인가요?

그들 vs. 우리들- 날카롭고 추운 당신의 시선

”사비나야, 들었어? 우리 어린이집 나온 육각이 말이야. 초1 되니까 수업 중에 이상한 소리 낸다고 하더라. ADHD 딱 그거 같아. 완전 민폐야~“
“초1이 다 끝나가는데 한글을 못 쓴다고? ADHD 아냐?”
“어머, 쟤 봐봐. 반항하고 우는 거 보니 딱 봐도 ADHD네. “
“화난다고 사람 다 때리나? ADHD네.”


ADHD가 뭐길래...

  세모의 친구 엄마들과 관계를 맺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은 아니다. 친절한 엄마가 같은 반 친구들을 초대할 때면 세모만 뺄 수 없으니 우리 모자도 초대해 주는 경우가 있었다. 이미 가기 전부터 마음은 두근두근, 아님 심장이 벌렁벌렁 했었다. 놀이의 시작은 항상 기분 좋게 시작된다. 그러다 텐션이 높아진 세모가 혼자 위험한 곳에 올라가 있거나 정신없이 어디론가 달려가고 있기 때문에, 나머지 아이들이 사부작사부작 만들기를 하고 싶어도 세모 때문에 순식간에 그 집은 난장판이 되거나 엄마들이 앉아서 편하게 뭔가를 먹거나 마실 수가 없는 분위기가 되어버렸다. 나도 알고는 있다. 규칙 따위 손쉽게 부숴버리듯 어기는 아이 때문에 그들이 입는 피해를. 그리고 충동성이 높은 세모는 생각이 필터링을 거치지 못하고 바로 행동으로 나가기 때문에 어린이집 시절에는 다른 친구들과 트러블이 갑자기 생기기도 했고, 다른 엄마들의 시선이 주목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 순간 엄마들의 시선은 내 아들에 꽂혔지만 세모는 나의 거울이라 그 시선은 반사되어 바로 나에게 비수처럼 꽂혔다. 얼마나 따가운지 맨 살에 날카로운 나뭇가지로 찌르는 것 같았다. 그런 일이 반복되다 보면 학기말에는 세모는 초대되는 횟수가 점점 줄어들었고, 나 역시 그들의 마음을 백번이고 이해했기에 이 외로운 고립에 언제쯤 익숙해질까 시간이 해결해 주기를 기다렸다.


  어느새 정상인처럼 비치는 세상 얌전한 아이들과 엄마들은 ‘그들’이 되고, 어딜 가든 톡톡 튀는 세모와, 그런 세모를 내가 마치 방목하듯 키워서 그렇다는 평가와 함께 세트로 묶여 비정상인처럼 보이는 ‘우리들’은 대치 상태로 서 있는 모양새가 되어버렸다. 이런 일들이 쌓이고 쌓이면서 내 안에는 분노와 미움과 원망도 함께 쌓여갔다.


  나는 교사이기도 했고 아이를 절대 방목형 양육 방식으로 키운 적이 없다. 내가 권위를 갖고 규칙을 세우고 아이를 FM 방식으로 키우는데도 변화하지 않는 세모를 보며 좌절의 연속이었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아이의 행동이 개선되지 않는 이유를 아이가 ADHD 진단을 받고 나서야 이해했다. 초등학교 첫 한 달을 보내고 정기 상담을 했을 때, 아이가 자꾸 과하게 말을 해서 수업이 끊기는 일이 잦다는 얘기를 들었다. 7살까지는 어리니까 아이의 속도를 기다려주겠다는 마음으로 약물 복용을 하지 않았으나, 학급에서 피해를 준다는 말에 바로 약을 처방받아 메디키넷 5ml 복용을 시작했다. 아이는 적응 기간 동안 부작용으로 힘들어했고, 그 모습을 보며 뒤돌아 우는 날도 많았다. 10ml 증량까지 겨우 해내며 아이의 톡톡 튀고 발랄한 색을 싹 지우고 학교에 꾸역꾸역 보냈다...


약 처방을 받은 첫 진료 때, 의사 선생님께서 질문하셨다.

“엄마가 어릴 때 정신없이 방방 뛰었나요? 아빠인가요? “

“음... 어릴 때 제가 그랬던 것 같은데요..?”

“그럼 엄마 쪽 유전인가 보네요.”

“이게 유전되나요?”

ADHD는 80%는 유전으로 인해 발현돼요. 아이도 어쩔 수 없는 겁니다. 의지로 조절되는 부분이 아니에요. 그러나 결국은 이 아이도 성장합니다. 또래와 성장이 맞춰질 동안 약물은 나무에 부목을 대는 것처럼 성장이 또래와 맞춰질 때까지 도움을 준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그렇다. 유전이란다. 아이도 어쩔 수 없이 이런 뇌신경회로의 모양으로 태어난 거였다. 아이가 행동을 조절해야 하는 것을 알아도 아이의 뇌가 시키는 것이다. ‘지금 해! 참지 말고 지금 해!’ 그 충동성과 과잉 행동을 엄마, 아빠가 엄하게 교육시키지 않아서 나타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그들', 당신들은 얌전한 아이를 키우는 것이 본인들이 잘 양육해서 그렇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아이가 그런 성향으로 태어난 이유도 있는 것이다.


  나는 미디어가 참 밉다. ADHD 진단율은 5~10% 정도 된다. 그 의미는 한 학급에 30명이면 집중이 힘들거나 담임 선생님을 힘들게 하는 아이들 3명이 ADHD일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실제로 학교에서 보면 조용하지만 주의력, 집중력이 낮아 학습이 어려워 눈만 뜨고 있는 아이들부터 쉴 새 없이 수업 중에 말을 하는 아이들이 학급마다 3~4명 정도는 있다. 진단을 받지 않은 아이들이 꽤 많아 약물을 복용하고 있지 않기에 수업 중에 몸만 앉아 있고 생각은 다른 곳에 있는 아이들도 많다. 그런데 정작 폭력적이어서 남을 때리고 분노를 표출하는 아이들은 손에 꼽는다. 실제로 나는 최근 3년 동안에는 폭력적인 아이들을 단 한 명도 만난 적이 없다.


  ADHD는 진단명이 하나로 명명되어 있어 마치 ADHD 진단을 받은 사람들이 모두 똑같은 양상을 보이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ADHD 아이들이 10명이 있다면, 10명 모두 다른 증상으로 발현되고, 10명 모두 뇌신경회로가 모양이 다르다. 그런데 미디어에서는 아주 자극적이고 매운맛으로 보여줄 수 있는 ADHD 아이들을 섭외하고 보여준다. 그 프로그램 뒤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부모님의 눈물겨운 솔루션의 노력들도 나오지만, 시청자들이 주목하는 건 아주 자극적인 모습의 ADHD 아이들의 언행이다. 그들은 그런 장면들을 보면서 가슴을 쓸어내리더라. ‘내 아이는 ADHD가 아니어서 다행이구나.’ 라며...


  하지만 학교에서 보는 ADHD 성향이 나타나는 아이들은 매우 다양하다. 수업 시작종이 치고 교과서를 펴라고 했을 때 쉬는 시간에 하던 일을 주욱 이어서 하는 아이들, 1~7교시까지의 교과서를 책상에 정신없이 올려두고 수업을 듣는 아이들, 내가 설명을 열심히 하고 5분 전에 말했던 것을 물었을 때 대답하지 못하는 아이, 본인도 모르게 큰 소리로 욕설부터 내뱉는 아이, 친구들이 대화를 나누는 중에 갑자기 끼어들어 자기 얘기부터 마구 던지는 아이... 이렇게 ADHD 증상은 아주 다양하다. 그들의 아이들이 얌전하다고 해서 '나의 아이는 ADHD가 아니다.'라고 쉽게 단언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들'은 ADHD 진단을 받은 사람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하나의 진단명으로 묶이기엔 우리 아이들은 아주 다양한 모습으로 성장하고 있다. 그리고 ADHD라는 진단명은 이 아이의 정체성이 아니다. 아이를 도와주기 위해 진단을 받은 것뿐이다. 우리 사회가 이 아이들을 수용하고 배려해 주기까지 기다릴 수 없기에 우리 가족과 전문의들은 아이를 도와주기 위해 무던히 하루하루 노력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날카롭고 차가운 그들의 시선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언젠가 그들도 우리의 고군분투하는 하루하루의 노력들을 이해해 주는, 기다려줄 수 있는 그날이 온다면 참 좋겠다. 이 아이들을 ADHD라는 이름으로 정의하기에는 너무나도 반짝이고 재미있고 각각의 우주를 짓고 살아가는 소중한 생명들이기 때문이다.


*사진출처- 마음건강길




이전 05화 ADHD 아이의 엄마로 살면서 얻은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