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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사비나 Mar 13. 2023

방해꾼 남편도 아빠였다.

ADHD 아이와 아빠의 관계

  ADHD 아이를 키우며 항상 혼자와의 싸움이라 생각하는 나날들이 많았다. 진단받기 전에는 말썽꾸러기 아이의 엄마라는 타이틀로 세모의 친구 엄마들로부터 따가운 시선을 온몸으로 받아내야 했으며, 진단받고 나서는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선생님의 날 선 평가를 내 가슴속에 꾹꾹 눌러 담아뒀어야 했다. 이 과정에서 나는 철저히 혼자라 생각했다.


‘엄마’가 뭐길래. 참내.

여자라서 약하다 하더니,

또 여자니까 모성이 넘쳐 엄마는 강하다며?

그래서 엄마는 약한 거야 강한 거야?


그런데 나는 엄마가 되고 보니 오롯이 혼자 해내야 할 일이 많다는 것이 버거웠고... 모성이 넘치지도 않아서 아이한테 모성 없는 엄마인 것이 내내 미안해지기도 했다.


세모가 힘들다는 담임 선생님의 전화를 받고 나는 아이에게 폭발하듯 화를 내고 남편에게 나머지 화와 설움을 쏟아내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남편은 내게 마치 제삼자인 양 위로를 하며 진정시켰다.

“세모는 어리잖아. 무슨 ADHD야. 저렇게 블록에 집중도 잘하는데. “

이젠 너무 힘들다고, 병원을 한번 가보는 게 어떨까 말하면 아이와 하루에 보내는 시간이 고작 2-3시간인 남편은 긍정적인, 희망적인 얘기만 늘어놓았다. 결국 아이 손을 잡고 병원을 가고 진단을 받아낸 일도 다 내 몫이었다.


그런데 남편은 자기의 자식이 ADHD라는 사실에 처참해지는 기분을 느끼면서도 그 진단명에 대해 공부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았다. 아이가 잘 해내지 못할 때마다 화를 내거나 협박조로 아이가 ADHD라는 진단명이 핑계가 되지 않아야 한다는 이유로 더 엄하게 가르쳤다. 아니, 통제했다.


이런 과정에서 나는 내내 지쳤다. 적어도 내 아이, 내 ADHD 아이를 잘 키우려고 애쓰는 나의 플랜을 망치지는 말아야 하는 것 아닌가? 1년 동안 약을 복용하지 않고 ADHD에 공부하고 애써오며 남편에게 내가 공부해 온 것들을 요약해서 말해주었다. 하지만 그는 실천하지 못했다. 세모가 정신없이 뛰어다니고 해야 하는 숙제를 하지 않을 때 남편은 숫자를 세거나 아이에게 밥 먹을 자격이 없다고 하는 등 자극적인 말들로 아이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곤 했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던 때가 있었다.

‘세모는 내 아이야. 아빠라는 이유로 나의 양육을 방해해? 당신이 나와 세모의 플랜을 망치게 두지 않을 거야.‘

그래서 남편에게 선전포고하듯 말했다.

“당신이 이런 식으로 계속 세모를 받아들이지 못하면 난 약을 먹일 거야. 집에서마저 세모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해주지 않고 부정적인 피드백을 쏟아붓는 격이니 어쩔 수 없어. 약 먹이지 말란 건 당신 의견을 참고했던 건데 이런 식이면... 당신 때문이라도 나는 약을 먹일 거야.”


  남편이 세모를 바르게 대하지 못할 때마다 나는 보호본능에 더 괴로웠다. 아이를 아빠라는 방해꾼으로부터 잘 지켜내지 못한다는 그 마음으로...


  세모는 약을 먹기 시작했고 부작용부터 효과까지 남편에게 시시콜콜 보고했다. 그리고 반년이 지나고 남편에게 병원진료 의무를 넘겼다. 정신과 앞에서 아이와 대기하는 그 마음, 의사 선생님 앞에서 ADHD 아이의 보호자로 앉아있는 그 마음, 아이가 그 과정을 어떻게 이겨내고 있는지 그 과정을 함께하는 그 마음까지 직접 느끼길 바랐다.

  

  놀랍게도 남편은 아이의 ADHD를 서서히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이제는 이 특성을 이해하고 아이를 위해 시간을 내고 인내하며 기다려주기도 한다. 그의 양육 태도를 바꾸기 위해서 내가 애써야 했던 것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아이를 재우고 곁에서 치열하게 그가 잘못했던 것들을 가슴 아프게 지적해야 했던 수많은 밤들, 아이 앞에서 급하게 개입하여 아빠로서의 권위에 도전해야 했던 날들... 그날들이 모여 여기까지 온 게 아닌가 싶다.


그리고 내가 아내로서 실수한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일단 아빠라는 자리는 물리적으로 나와 아이가 보낸 시간보다 뱃속에서 내가 품었기에 9개월 뒤쳐지고, 태어나서도 육아휴직 기간 3년 동안 내가 오롯이 키웠기에 아이와 아빠가 교류한 시간이 절대적으로 적어 경력으로 따지자면 참 나보다는 저경력자라는 것이다. 그러기에 나는 세모의 양육에 있어 항상 선임이고 그는 항상 나보다는 부족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니 내 맘에 절대 찰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서투른 양육 방식이 그가 아이를 덜 사랑한다는 것이 아님을 알지 못했다. 아빠도 아이를 무척이나 잘 키우고 싶다는 것을 그의 서투른 양육 방식으로 판단하면 안 됐다. 그도 좋은 아빠가 되고 싶다. 그도 아이를 무척이나 사랑한다. 그와 아이의 시간을 존중해 주지 못했다. 기다려주지 못했다.


나만 해낸다고, 나만 키운다고 생각했던 나날들 속에서 남편은 계속 부족한 아빠라는 마음으로 아빠가 되어갔고 육아효능감은 점점 떨어져 갔다. 그의 속도를 존중해 주지 못했다.


아이 때문에 눈물짓던 날들에도 세모 때문에 지쳤던 날들에도 내 눈물을 닦아주고, 어깨를 기꺼이 내어주며 쉬게 해 준 그의 노력들이 빛나던 그런 날들이 있었다는 것을 감사히 여기지 못했다.


그는 세모의 아빠이자,

나의 남편이다.

나의 쉼터다.

내가 세모를 잘 키워내고

언젠가 그 언젠가 조금은 더 여유가 생긴다면

나도 남편에게 쉼터가 되어주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만년 방해꾼일 것 같던
당신도 아빠라는 것을
잊지 않겠습니다.
아이와 당신과의 시간,
그리고 속도를 존중하겠습니다.
당신은 나의 영원한, 유일한
협력자,
그리고 쉼터입니다.
우린 함께 이 아이를 너무 사랑하기에
우리는 분명 잘 키워낼 수 있을 것입니다.


*사진 출처- onarc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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