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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우 Aug 22. 2024

여권 가방을 놓고 왔다고?

별 게 다 감탄_부부 북미 여행기 #3




드디어 오늘이 왔다. 약 2주간의 휴가는 우리 부부에게 행복한 휴식을 줄 것이다. 새벽 4시 30분 인천 공항버스를 타기 위해 현관문을 나섰다. 평상시 정류장까지 걸어서 10분이지만, 보도블록이 부분적으로 울퉁불퉁 좋지 않아 자동차로 그 구간까지만 캐리어들을 옮기기로 했다.


짐을 모두 길바닥 한쪽에 내려놓은 남편은 다시 차를 몰고 집으로 갔다. 짙은 푸른 빛깔의 새벽은 자동차 불빛이 스며들어 반짝거린다. 인적이 드문 도로변에서 짐을 지키며 스트레칭을 하다가 제자리 뛰기도 하면서 즐거움을 주체 못 하고 몸으로 한껏 뿜어냈다. 어슴푸레한 어둠 속에서 걸어오는 남편의 모습이 보인다.

‘이제부터 진짜 여행 시작이구나!’


대로변의 신호등이 바뀌자마자 파란빛 어둠을 뚫고 힘차게 바퀴를 굴리며 횡단보도를 건넜다. 버스 정류장에 벌써 누군가 와 있었고, 곧 부부 몇 쌍이 우리 뒤에 섰다. 다들 어디로 떠나는지 궁금하다. 같은 날 같은 시간에 공항버스를 기다리는 우연이 신기하다. 표정만 봐도 그들이 얼마나 설레는 마음일지 예상이 된다.




버스가 막 도착했다. 가뿐하게 올라타 자리에  앉았다. 모두가 탔고, 기사님도 운전석에 다시 앉으시려고 한다. 바로 그때, 남편이 갑자기

“어... 가방...하더니,

“먼저 가!

라고 한마디 하며 앞문 쪽으로 급히 뛰어나간다.


잠시 후 란 기사님의 말이 들린다.

“그럼 다음 차로 오시면 되겠어요.”

내 좌석은 출입문과 반대편이라 갑자기 사라진 남편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갑작스러운 이 상황에 뇌작동이 느려지는 것 같다.  혹시 여권 가방?’ 이해하는  한참 걸렸다. 자동차 키를 집에 두고  올 때, 가방은 그대로 조수석에 두고 내렸나 보다. 여행에 들떠 있다가 몇 분 사이에 이게 웬일인가. 마치 봉변당한 것 같다. 버림받을 때 이런 기분일지 모르겠다는 별난 상상까지 한다.


잠시 후, 내 휴대폰이 울린다. 남편이다. 버스 안실은 기내용 캐리어도 잘 챙겨달라고 말한다. 놀란 마음은 계속 진정이 안되었다. 사실 크게 걱정할 건 없는 일이다. 25분 배차 간격 동안 빠르게 다녀올 수 있다. 드디어 다음 버스를 탔다는 전화를 받았다. 조마조마한 긴 시간이었다.

''




쉼 없이 달려야 하는 구간이나 공항에서 알았더라면 어땠을까? 생각만 해도 가슴이 철렁한다. 뒤늦게 기분이 상한다. 걱정거리가 없어졌는데도 여전히 마음은 안 편하다.

'그 때라도 알고 재빠르게 내려서 다행이지...'

라며 마음을 가라앉혀 본다. 가는 동안 함께 요기하려고 준비한 빵을 꺼냈다. 한 입 베어 물다가 속이 안 좋아 도로 가방에 넣었다. 마지막 정류장에서 탄 승객이 내 옆자리를 채웠다.


올림픽 대로를 달리는 버스 창밖으로 고개를 돌리고 풍경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한강변의 스치는 초록 가득한 나무와 수풀을 한참 보는 사이 체했던 마음이 어느새 풀린다. 휴가를 위해 빠듯하게 업무처리를 하느라 여유로운 마음의 준비를 갖지 못한 남편이다. 자동차로 옮기는 방법을 제안한 사람은 나였다. 애초부터 공연히 정신없게 만든 것 같아 후회가 된다.


그런 실수를 만약 친구가 했다면, 미안해하지 않도록 '시간이 있으니 조심히 와.'라고 말해주었을 거다. 만약에 그런 실수를 내가 했다면, 어땠을까? 아마 평상시 남편이라면, “출발 전에 빨리 알아서 얼마나 다행이야?” 라며 오히려 재빨리 알게 된 것을 '칭찬'하며 안심을 시켜줬을지도 모른다. 맞다. 이건 한심한 실수가 아닌 칭찬할 일이다.


버스는 인천공항 출국장에서 멈췄다. 다른 난관이  생겼다. 인도에서 많이 떨어진 곳에 버스를 세운 거다. 힘겹게 굴러가는 화물용 캐리어 두 개와 기내용 캐리어, 내 무거운 보조 가방을 한꺼번에 맞닥트렸다. 차례대로 차분히 옮기고 있는데 기사님이 마지막 남은 짐 주인을 열심히 찾고 계신다. 마음을 내려놓은 무게만큼 몸까지 느려진 속도로 힘 빠진 대답을 하며 그쪽으로 걸어갔다.




공항 로비에서 쌓아놓은 캐리어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차로 짧은 거리를 굳이 이동하는 바람에 남편을 허둥되게 만든 것 같다. 내 제안이 좋은 줄 알았는데, 그냥 집 출발할 때부터 짐들을 끌고 가자는 남편의 의견이 더 나은 방법이었다. 캐리어 바퀴 보호와 시간절약생각했지 급히 오갈 사람의 입장을 고려하지 못했다. 이런 생각도 든다. '이제 남편도 나이를 먹어가는구나. 동년배보다 민첩했던 청년 같은 순발력은 어쩔 수 없이 예전 같지 않구나.'


동시에 원망스러운 감정은 왜 드는 것일까? 한껏 올라간 유쾌한 기분이 갑작스럽게 깨져서일까? 나는 여행 중일 때보다 준비와 집을 나와 가는 동안 가장 설레고 행복하다. 모처럼 함께 가는 여행의 그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가, 한순간에 뚝 끊어진 기분의 간극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두 사람의 여행도 각자의 인생인지라  함께 있더라도 같은 상황을 서로 다르게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을.




'사고치신' 주인공께서 급히 공항청사로 들어오고 있다. 미안한 표정으로 말한다.

"나 왔어."

"......"

이렇게 반가울 줄이야. 박수는 마음으로 쳤다.


항공사 체크인 데스크를 향해 함께 경쾌하게 걸어갔다. 놀라울 정도로 붐비는 여행객들 때문에 우리의 간격이 점점 벌어진다. 잘 오고 있는지 남편이 뒤를 돌 때마다, 나는 먼 산을 바라보듯 시선을 딴 데 걷고 있다. 마음이 한껏 부풀어 있는 새벽부터 낙하산 없이 추락한 내 심장이여! 놀란만큼 살짝씩 약 올리며 흥겨운 마음으로 열심히 뒤따라갔다.


우리 부부는 살면서 뜻하지 않게 궤도를 벗어나본 적이 있기에, 좋건 나쁘건 크건 아주 작건 뭔가 서로 어긋나는 느낌을 받을 때면 본능적으로 서로 잡아당기는 힘을 발휘할 줄 안다. 인생의 위기를 지나며 함께 걸어온 한 걸음 한 걸음이 더디지만 얼마나 기쁜지 서로 잘 안다. 어렵게 휴가를 낸 이 시간의 가치가 얼마큼 큰지는  잘 안다. 그리고 이 정도의 '사건'이 얼마나 장난 같은 사소한 일인지,  개가 넘어도 별일 없이 삶은 고요하다는 건 알고도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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