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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우 Sep 05. 2024

뭐가 달라? 별게 다 감탄이야

별 게 다 감탄_부부 북미 여행기 #5




햇살이 이따금 내비치는 흐린 날씨를 올려보며 뉴욕 시내 공중에서 걷고 있다. 높은 빌딩들 사이에 놓인 긴 <하인라인 파크>를 산책 중이다. 한국은 새벽 3시라고 생각하니 웃음이 나왔다. ‘시차 적응에 이만한 게 없다.’는 생각에 지금 낮이라고 스스로 세뇌시키며 잠을 깨우고 다. 그러나 점점 퀭한 눈이 되어간다.


걷다가 찍은 사진을 보니 긴 비행 여정의 피곤함을 도저히 숨길 수 없다. 사진 속 남편은 웃는 건지 찡그린 건지 알 수 없는 표정이다. 언뜻 짜증도 보인다. ‘졸림과 피곤함이 여행의 좋은 기분을 이기도록 놔둘 수는 없지!’라고 생각하며 걸었다. 비 예보와 달리 해가 저렇게 가끔 비추는 게 어딘가. 얼굴이 일그러져도 좋다. 산책로의 출구가 이제 보인다. 이 길을 충분히 즐기지는 못했어도 줄지어 놓인 벤치는 언제든지 쉴 수 있다는 안정감을 주어 피곤함을 덜어줬다.




<스타벅스 리저브 로스터리 뉴욕점>을 찾아갔다. 엉뚱한 방향으로 가려는 남편을 시간이 얼마 없어 팔짱을 끼고 끌었다. 들어가자마자, 굿즈 판매대로 직진해 아이들 선물부터 챙겼다. 깔끔해 보이는 머그잔 두 개와 우리 집 장식용에 좋을 컵 세트로 정했다. 이 지점에만 있는 것들이라 기념으로 샀다. 자, 이젠 커피를 음미할 차례구나!


이곳도 닉네임을 부르는 것이 재밌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1잔을 주문하고 발음하기 쉬운 내 이름을 알려 주었다. 곧 로스팅하여 줄 것이다. 직원이 들고 있는 커피가 우리 것 같아 확인하니 맞다. 눈치 빠르게 픽업했지만, '내 이름을 못 들은 것은 좀 아쉽네...'


난 동작이 어떨 땐 너무 빠르다. 물론 이런 면이 있어서 빠른 선택으로 원하는 걸 취한 경우도 많다. 나이가 들어가니 ‘놓쳐도 그만’이라는 느긋함을 좀 키우고 싶다. 원래 행동이 느릿한 편인데, 내게 어떤 의무가 주어지면 갑자기 동작이 빨라지고 쉬지 않는 경향이 있다.




 예전에 집으로 친정어머니를 모셔와 간병했을 당시, 당신 딸이지만 이렇게 자주 벌떡 일어나는 동작을 40년 동안 본 적이 없었다며 놀라신 적이 있다. 책임감에 긴장감이 더해진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집안 분위기 탓에 긴장할 일이 끊이지 않아, 미리 대비해야 한다본능은, 성장하며 차츰 조그만 일에도 긴장을 잘하는 사람으로 변해갔다.


이번엔 여행을 하며 느긋함을  키우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을 해 볼 작정이다. 살아보니 때때로 선택의 필요성을 잊고 있는 편이 나을 때도 있다. 어정쩡한 태도를 싫어하는 ‘나’를 갈수록 풀어주어, 선택지 중간에 잠시 멈춰 있어도 별일 없을 텐데 말이다. 이제부터는 중간 그 어디쯤에서 태평스럽게 살고 싶다.




"특이하네! 얼른 마셔 봐. 신기해.”

유난 떨며 남편에게 커피잔을 건넸다.

"오우, 진짜 좀 뭔가 다르네."


'분명히 아이스 아메리카노인데, 딱 첫 느낌이 걸쭉했어. 근데 쓰진 않더라고. 농축된 것 같으면서 맑아.'라고  딸아이에게 톡을 했다.

“어떻게 그게 걸쭉해요?”

라고 반응한다. 이 맛과 느낌을 내 문장력으로 표현하기에 역부족인가. 그 후 설명은 포기했다.

'글쎄, 그 맛을 이 엄마 아빠가 봤다니까...'


언제 또 올지 모르는 이곳에서 마신 인상 깊은 아이스커피 맛, 한 모금 한 모금의 독특함을 오래 간직하고 싶다. 커피 맛이 다양하다는 건 알지만, 전혀 예상치 못한 맛이다. 맛의 경험은 의외로 오래 남는다. 경험이야말로 진실하. 누구나 마시지만 내가 느낀 나만의 맛!  작은 감탄은 이번 여행의 기대감에 불을 붙였다.


가본 자와 가보지 않은 자, 맛을 아는 자와 모르는 자. 사람들은 뭐든 조금이라도 더 알기 위해, 다른 세계에 속해보려고 떠나는 것이 아닐까? 하나를 알면 하나를 더 알고 싶어 진다. 불확실한 세계이기에 예측이 잘 안 되는 것이 인생이란 , 여행길에서 배우기도 한다.




<리틀 아일랜드> 도착해 오르막을 걸으며 사진을 연방 찍었다. 기대되는 다른 장소투어 할 예정이지만, 역시 여행의 기분은 초반에 가장 신나는 모양이다. 많이 앞서 가던 남편이 어느 자리에 서서 나를 부르더니 뭐라고 말한다. 본인 사진을 찍으라고 하는 것 같다. 다시 물었다.

"뭐라고?"

"이 배경으로 나 독사진 찍어달라고."  


약간 놀랐다. 먼저 사진 찍어달라고 한 건 처음인 것 같다. 그동안 멋있게 찍어주려고 이리저리 세워야 했고, 내가 시키는 대로 포즈를 취했다. 먼저 찍어달라고 하기는커녕 어쩔 수 없어 적당히 서있는 듯 보였다. 그래서 그 말을 금방 못 알아들었던 거다. 조금 더 걸어가더니 또 부탁한다. 그러고 보니 남편이 '진짜 주인공'적은 없었던 것 같다. 왠지 그동안 나만 화보 찍듯이 행세한 건 아닌가 싶다.


뭔가 잘못한 기분이 들기 시작한다. 생각해 보면 아이들 어릴 때부터 캠코더를 들고 다닌 사람도 남편이었다. 찍는 선호하는, '늘 그런 사람'이라고 당연히 여긴 것이 미안해진다.

"설마 이 중에 한 장은 걸리겠지?"

하며 어떨 때는 내 가방까지 열성적으로 찍어준 사진들이 생각난다. 결과적으로 나보다 구도를 잘 잡는 실력을 가지게 되었다. 이거라도 만족스러운 보상으로 여겨주길...


 대부분 나이 들어가는 자신의 얼굴을 보는 걸 꺼려한다. 사진 속의 자신은 더 그렇다. 심지어 찍은 걸 후회하기도 한다. 사진도 마음의 여유가 있을 때라야 찍고 싶고, 나이 듦을 받아들일 때 그 속의 자신을 보며 '나'를 마주할 수 있나 보다. 이번 여행에서 남편의 부탁을 연이어 들으며 궁금했다. '이제는 왜 그러고 싶을까?' 지금부터 자신을 '자신 있게' 사랑하고 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남편의 변화는 곧 나의 변화가 되기도 한다. 인생의 동반자이기에 그러하다. 그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 살피고 싶다. 그리고 지켜주고 싶다.


<하이라인 파크> 산책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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