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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우 Sep 12. 2024

뉴욕, 바로 너로구나

별 게 다 감탄_부부 북미 여행기 #6




뉴욕의 상징, <자유의 여신상>에 가까이 가는 유람선 좌석에 다행히 자리를 잡았다. 우리보다 늦게 탄 유람객들은 난간으로 안내되었다. 탁 트여 시원스러웠던 시야는 서있는 그들의 등으로 거의 가려져 답답하다. 풍경감상을 위해 마음먹고 자리에서 일어나 앞 쪽 난간 약간의 빈틈으로 옮겼다. 사실 조금 망설였다. '이미 내 자리가 정해졌는데, 저들 사이로 끼어도 될까?' 그러나 결심하고 일어났다. ‘내 여행이기에 내 선택은 자유다!’



그곳은 주로 젊은이들이 기대어 있다. 난간의 틈새 공간에 한 손을 넣어 꼭 잡고 옆으로 서서 경치를 감상했다. 저 멀리 횃불 든 여신상이 보이기 시작한다. 투어 전에는 흔하게 사진으로 봐와서 별 관심이 없었는데, 실물을 막상 보니 멋진 광경이었다. 멀리서 아주 조그맣게 보여도 아우라가 있다. 서있던 자리의 틈이 어느새 넓어져 ‘내 자리’가 만들어졌다.




한국 출발 전부터 기대한 <모마 현대미술관>과 뉴욕 전경이 내려다보이는 <원 월드 전망대>에 갈 예정이다. 가는 길에 뉴욕 증권거래소의 상징인 커다란 ‘황소동상’의 뿔에 대롱대롱 매달리며 인증 사진을 찍었다. '우리 돈 좀 많이 벌게 해 줘.'라며 소원도 빌었다.


<원 월드 전망대>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후, 훤히 내려다볼 수 있는 통창쪽으로 다가갈 때부터 저절로 탄성이 나왔다. 뉴욕 마천루의 끄트머리부터 서서히 전체를 내려다보니 웅장함이 느껴졌다. ‘단순히 인공 건물의 빌딩숲 같지 않구나.’ 직접 보니 이 도시가 화려한 또 하나의 조형 예술품 같다. 군집한 다양한 높이의 건물들은 음표가 연상된다. 멀리 보이는 강물과 어우러지니 악보를 그린 듯다.


눈을 어디 둬야 할지 모를 정도로 넓고 화려하며 리드미컬하여 지루함이 없이 어느 곳을 둘러봐도 재밌다. 흘러가는 시간이 아쉬워 이리저리 바삐 걸음을 옮기며 보고 또 보았다.

"이제 우리 내려가야 해."

남편의  말이 서운하기까지 하다.  


교사의 설명을 질서 있게 듣고 있는 견학 온 청소년들 사이를 지나가야 했다. 얼른 비켜주며 지나갈 통로를 만드는 아이들이 참 이쁘다. 어릴 때부터 아이들의 인격을 존중해 주는 어른들에게 배운 대로 본받은 것이리라. 어른, 아니 ‘사람'에게 보인 작은 배려는 동양의 ‘예의’ 그 이상으로 느껴진다. 아이들이 당신의 공간이기도 합니다.’라고 말하는 것 같다. 뉴욕은 다양한 민족과 인종이 모인 곳이라 그런지, 마주칠 때의 시선도 아주 자연스럽다. 나 자신이 이방인이라는 사실을 잊게 했다.




<모마 현대미술관>에는 우리가 알만한 많은 화가들의 작품들이 이곳에 있다고 한다. 가장 좋아하는 화가, 모네의 작품을 찾았다. 대형 회화 작품인 <수련> 연작은 멀리서 보일 때 꿈인 듯했다. 내가 실제 작품을 보다니! 해외여행 중 미술관 투어는 처음이다. 미술 관련 도서에서 보아온 알만한 작품들이 눈에 띌 때마다 가슴이 뛰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미술 감상을 늘 정면에 서서 지긋이 진지하게 바라보기만 해왔구나.' 그러나 앉아서도 보고 걸어가면서도 돌아보는, 내 일상의 한 부분으로 스며들게 하고 싶다. 주변의 모든 것에 작은 감동을 삶을 만들며 나이 들어가고 싶다. 주름 가득한 노인이 되어도 감성을 잃지 않고 싶은 소망이 생겼다. 이번 여행은 하찮은 것에도 웃고 떠들고 감탄하는 능력키우는 중이니 '감성부자'인 나의 미래가 기대된다.


<수련>, 클로드 모네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을 겨우 찾아냈다. 생각보다 화폭이 작다. 그러나 눈에 확 들어온다. 헤어진 누군가와 재회하듯 천천히 가까이 다. 도서 <아트 인문학 여행 X파리>_김태진  따르면, 이 그림은 고갱과 다툰 후 귀를 자른 사건으로 병원에 감금된 상태에서 야외 작업이 허락된 시간에 그렸다고 한다. 회오리 모양의 붓터치는 볼 때마다 특이하다. 구름 같기도 하고 바람 같기도 하다. 감상하며 고흐의 마음을 헤아려 보았다.


이제 어느 쪽으로 갈까 두리번거리다 멈칫하게 한 그림이 있다. <우체부 조셉 롤랭의 초상화>다. 역시 반 고흐의 작품이다. 사진에서는 결코 느끼지 못한 눈동자의 따스함을 보았다. 따뜻함에도 강도가 있는 것일까? 푸근하고 선한 눈빛으로 분명히 나를 보고 있다! 온화한데 강렬하다. 선함을 숨길 수 없다. 눈 부분을 간직하고 싶어 클로즈업해서 한 번 더 찍었지만 역시 그림을 직접 보느니만 못하다.


고흐가 자신에게 편지를 배달해 주던 그를 얼마나 좋아했을지 상상이 되고, 그의 인간미를 표현하려고 정성을 얼마나 기울였을지 짐작할 수 있다. 어쩌면 맑은 영혼의 소유자, 빈센트 자신의 선함일지도 모른다. 앞으로  작품을 '고흐의 또 다른 자화상’이라 여기기로 했다.  




나도 누군가에게 저런 눈빛준 적이 을까? 가족이 내 사랑을 느낄 수 있을 만큼 눈빛마저 따뜻한 표현을 한 적이 있나? 특히 사랑하는 아이들에게는 어떠했나? 어릴 때 엄격하고 냉정하게 대했던 일이 떠오른다. 밀린 학습지를 기어코 풀게 해 친구의 생일 파티에 늦게 가게 되어 아이의 행복감을 무너뜨린 일이 다. 친구의 생일 선물을 들고 뛰어가던 그때의 어린 뒷모습은 간간이 생각날 때마다 나를 괴롭힌다. 엄마에게서 느낀 화난 눈빛이 얼마나 차가웠을까?


다리가 아파  본 그림들을 뒤로하고 미술관나섰다. 내 머릿속에는 고흐의 우체부만이 유독 맴돈다. 인상 깊었던 작품들도 많았지만, 이 그림을 가장 오래 기억하며 따뜻한 위로가 되기도, 때로는 마음을 아프게 할지 모르겠다. 그렇기에 나는 '인간의 미'를 완성해 나가리라.


별이 빛나는 밤(왼쪽), 우체부 조셉 롤랭의 초상화(오른쪽)


어스름해질 무렵, 우리를 태운 버스는 숙소가 있는 뉴저지주를 향해 달리고 있다. 차창으로 뉴욕의 퇴근길모습을 구경했다. 어제에 이어 번째 오가는 길이라 그런지 벌써 익숙하다. 뉴욕이 초면인 나, 조금씩 환대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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