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나이아가라 혼블로워 크루즈 탑승을 하려고 대기 중이다. 어제 불안정했던 복장의 경험을 살려 여유로운 감상을 위해 준비물을 더 꼼꼼하게 살폈다. 여행의 즐거움을 만끽하려면단단한 준비물과 마음을 내려놓는 여유로움의 조화가 필요함을 알았다.
기왕이면 해당 투어에 알맞은 대비를 잘할수록즐기는 것에 한결집중을 하게 된다. 그러나대부분 처음 경험하는 거라 완벽한 준비를 미처 못할 수 있다. 그렇더라도 안전사고와 직결되지 않는 한 충분히 즐길 수 있다. 부족한 상황을 오히려받아들이고,불편함을 감수한다는 생각보다 '그러면 그런대로...'라며느긋한 여유를 가지면 재미를 느끼게 된다. 마음먹기에 따라 다르다는 걸 젯보트 타기 체험으로 크게 느꼈다.
어제의 경험으로 깨달은 이 조화로움의 중요성은 내 일상에도 꼭 필요한 부분이다. 계획된 하루를 성공하기 위해 아침을 활기차게 열어도 잠깐 다른 일로 인해실패한 하루를 자주 맛보았다. 예기치 않은 일로 문자나 전화통화로 누군가와 몇 시간을 소통하느라정신을 빼앗기거나 기분이 가라앉기도 한다.할 일을 놓치면언짢아지기쉽다. 뒤늦게라도 다시 일에 몰두할 수 있는 여유로움과 남은시간 사용의 유연함을키울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늘 한다.
준비된 하루지만, 나 혼자가 아닌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세상이므로 흐트러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더군다나 매일완벽한 계획을 세우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다. 어제와 오늘 못다 한 일은 '내일 반드시 하리라.'는 생각만 해도 이룰 가능성은 높다. 조금 늦은 것 말고는 없다. '지금'에 얽매이지 말고 '내일도 있다.'라며 '계획적으로미루어'보니 불안감이 없어져 꽤 좋은 결과를 갖기도 했다. 노는 것이든 일이든 감정 조절 능력이 필요해 보인다.
우리가 탄 크루즈는 거대한 물보라를 일으키는 나이아가라 폭포를 향해 출발했다. 점점다가갈수록 북을 쿵쿵거리며 쳐대는 듯한 거대한 물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배는서서히다가가더니 폭포 아래에 섰다. 저 안으로 빨려 들어갈 듯한 느낌이 든다. 몸이휘청거려난간을 더 세게 붙잡았다. 이곳에 오기 전만 해도 큰 소리로 “야호!” 하며 소리를 질러 보려고 했었다. 탑승 후 내내 동영상까지 찍느라 스마트폰을 놓지 않는 남편이 떨어질까 걱정돼 팔을 꼭 잡아주었다. 표정을 보니 폭포에 홀린 듯하다.
병풍처럼 나를 둘러싼 어마어마한 폭포의 기세에 눌려, 질러보려던 소리는커녕 숨도 겨우 쉬고 있다. 시간이 점점 멈춰 없어지기라도 할 것 같다. 그 웅대하고 장엄함에 눈물이 나오려고 한다. 대자연 앞에서 일시정지 된 상태, 아무 생각이 없다. 아주 작은 미물이 되어 감히 감탄도 잊었다. 어떤 세상으로 들어가나만 존재하는 것 같다. 생각이 아예 끊긴 것인가. 무슨 생각이라도 어떤 말이라도 해보려는데 잘 안 나온다. 그냥 멍하니 바라보았다. 아! 지금 이곳은 현실 세계가 아니다.두렵지만 떠나기 싫다. 이것하나만큼은또렷이 남는다.지금 이 순간 남편과 함께라서행복하다는것!
나이아가라 폭포 앞에서
어떤 아기의 악 쓰며 우는 소리가 들린다. 가까운 거리인데도 멀리서 들리는 것만 같다. 아기가 걱정이 되었다. 얼마나 놀랐을까! 자지러지는 듯한 울음은 폭포 소리에 곧바로 묻히고 퍼진다. 그 아기는 이 거대한 자연의 울음 앞에서 자신의 울음으로는 도저히 감당이 안된다는 걸 본능적으로 결국 알게 됐을까?
되돌아갈 때 난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마주했던 그 장면만 죽을 때까지 간직하고 싶다. 조금 전 보았던 것들이 모두 거짓말 같다. 멋진 자연 풍경은 때때로 봐왔지만, 이토록 탄성조차 막히는 경험은 처음이다. 놀라움과 무심함, 침묵, 멍한 눈물, 고립감과 행복감 등 이런 복잡한 체험은 처음이다.
크루즈에서 하선한 후, 버스 타는 곳까지 남편과별말 없이나란히 걸어갔다.
갑자기 남편이 말한다.
“속이 다 후련하네!”
이런 표현을 처음 듣는다. 그래서 놀랍다.
"지금 속이 후련하다고?"
“응. 내 안의 쓰레기가 다 쓸려간 것 같아.후련해.”
"......"
난 그 ‘쓰레기’가 어떤 것인지 잘알 것 같다. 인내심이 강한 만큼, 감정은 그동안 화석처럼 굳어갔던 것이리라. 사업의 위기로 인한 여파는 생각보다 길었다. 긴 시간 자신보다 가족들의 어려움을 덜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썼던가. 아내가 짊어진 상처와 고생이 안타까워 본인은 죽을 때까지 희생하겠다는 각오로 살아갈 거라고 말했었다.
자신은 모든 것을 감내하며억울하고 힘들다는 감정 따위를표현해서는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아래로 쓸어내린 것들... 그것들은 쓰레기가되어갔다. 결국 가장이라는 이유로 애써 강한 척하며 자신의 상처를 방치해 온 사람. ‘속이 후련하다’는 그 말은 오래도록쓰리다.
말없이 함께 걷던 나는 겨우 입을 뗐다.
“그랬구나... 정말 다행이야...”
나이아가라에서 남편은 자신을 치유했고, 나는 그를 더 깊이 공감했고, 우리의인생스토리가 더 소중해졌고, 우리만이 통하는 지혜와 위트로 노후를 누구보다 더 행복하게 살 자신감을 얻었다. 함께 의지하고 고생하며 단단해진 사랑과 공감으로오늘은 더 내 인생동반자의 존재가 더 귀하게 여겨진다. '아팠다고 표현해 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