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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우 Sep 26. 2024

내 안의 쓰레기들이 다...

별 게 다 감탄_부부 북미 여행기 #8




다음 날, 나이아가라 혼블로크루즈 탑승을 하려고 대기 중이다. 어제 불안정했던 복장의 경험을 살려 여유로운 감상을 위해 준비물을 더 꼼꼼하게 살폈다. 여행의 즐거움을 만끽하려면 단단한 준비물과 마음을 내려놓는 여유로움의 조화가 필요함을 알았다.


기왕이면 해당 투어에 알맞은 대비를 잘할수록 즐기는 것에 한결 집중을 하게 된다. 그러나 대부분 처음 경험하는 거라 완벽한 준비를 미처 못할 수 있다. 그렇더라도 안전사고와 직결되지 않는 한 충분히 즐길 수 있다. 부족한 상황을 오히려 받아들이고, 불편함을 감수한다는 생각보다 '그러면 그런대로...'라며 느긋한 여유를 가지면 재미를 느끼게 된다. 마음먹기에 따라 다르다는 걸 젯보트 타기 체험으로 크게 느꼈다.


어제의 경험으로 달은 이 조화로움의 중요성은 내 일상에도 꼭 필요한 부분이다. 계획된 하루를 성공하기 위해 아침을 활기차게 열어도 잠깐 다른 일인해 실패한 하루를 자주 맛보았다. 예기치 않은 일로 문자나 전화통화로 누군가와 몇 시간을 소통하느라 정신을 빼앗기거나 기분이 가라앉기도 한다. 할 일을 놓치면 언짢아지기 쉽다. 늦게라도 다시 일에 몰두할 수 있는 여유로움과 남은 시간 사용의 유연함을 키울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늘 한다.


준비된 하루지만, 나 혼자가 아닌 다른 사람들어울려 사는 세상이므로 흐트러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더군다나 매일 완벽계획을 세우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다. 어제와 오늘 못다 한 일은 '내일 반드시 하리라.'는 생각만 해도 이룰 가능성은 높다. 조금 늦은 것 말고는 없다. '지금' 얽매이지 말고 '내일도 있다.'라며 '계획적으로 미루어' 보니 불안감이 없어져 꽤 좋은 결과를 갖기도 했다. 노는 것이든 일이든 감정 조절 능력이 필요해 보인다.




우리가 탄 크루즈는 거대한 물보라를 일으키는 나이아가라 폭포를 향해 출발했다. 점점 다가갈수록 북을 쿵쿵거리며 쳐대는 듯한 거대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배는 서서히 다가가더니 폭포 아래에 섰다. 저 안으로 빨려 들어갈 듯한 느낌이 다. 몸이 휘청거려 난간을 더 세게 붙잡았다. 이곳에 오기 전만 해도 큰 소리로 “야호!” 하며 소리를 질러 보려고 했었다. 탑승 후 내내 동영상까지 찍느라 스마트폰을 놓지 않는 남편이 떨어질까 걱정돼 팔을 꼭 잡아주었다. 표정을 보니 폭포에 홀린 듯하다.


병풍처럼 나를 둘러싼 어마어마한 폭포의 기세에 눌려, 질러보려던 소리는커녕 숨도 겨우 쉬고 있다. 시간이 점점 멈춰 없어지기라도 할 것 같다. 그 웅대하고 장엄함에 눈물이 나오려고 한다. 대자연 앞에서 일시정지 된 상태, 아무 생각이 없다. 아주 작은 미물이 되어 감히 감탄도 잊었다. 어떤 세상으로 들어가 나만 존재하는 것 같다. 생각이 아예 끊긴 것인가. 무슨 생각이라도 어떤 말이라도 해보려는데 잘 안 나온다. 그냥 멍하니 바라보았다. ! 지금 이곳은 현실 세계가 아니다. 두렵지만 떠나기 싫다.  하나만큼은 또렷이 남는다. 지금 이 순간 남편과 함께라서 행복하다는 것!


나이아가라 폭포 앞에서


어떤 아기의 악 쓰며 우는 소리가 들린다. 가까운 거리인데도 멀리서 들리는 것만 같다. 아기가 걱정이 되었다. 얼마나 놀랐을까! 자지러지는 듯한 울음은 폭포 소리에 곧바로 묻히고 퍼진다. 그 아기는 이 거대한 자연의 울음 앞에서 자신의 울음으로는 도저히 감당이 안된다는 걸 본능적으로 결국 알게 됐을까?


되돌아갈 때 난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마주했던 그 장면만 죽을 때까지 간직하고 . 조금 전 보았던 것들이 모두 거짓말 같다. 멋진 자연 풍경은 때때로 봐왔지만, 이토록 탄성조차 막히는 경험은 처음이다. 놀라움과 무심함, 침묵, 멍한 눈물, 고립감행복감 등 이런 복잡한 체험은 처음이다.




크루즈에서 하선한 후, 버스 타는 곳까지 남편과 별말 없이 나란히 걸어갔다.

갑자기 남편이 말한다.  

 “속이 후련하네!

이런 표현을 처음 듣는다. 그래서 놀랍다.

"지금 속이 후련하다고?"

“응. 내 안의 쓰레기가 다 쓸려간 것 같아. 후련해.”

"......"


난 그 ‘쓰레기’가 어떤 것인지  알 것 같다. 인내심이 강한 만큼, 감정은 그동안 화석처럼 굳어갔던 것이리라. 사업의 위기로 인한 여파는 생각보다 길었다. 긴 시간 자신보다 가족들의 어려움을 덜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썼던가. 아내가 짊어진 상처와 고생이 안타까워 본인은 죽을 때까지 희생하겠다는 각오로 살아갈 거라고 말했었다.


자신은 모든 것을 감내하며 억울하고 힘들다는 감정 따위를 표현해서는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아래로 쓸어내린 것들... 그것들은 쓰레기가 되어다. 결국 가장이라는 이유로 애써 강한 척하며 자신의 상처를 방치해 온 사람. ‘속이 후련하다’는 그 말은 오래도록 쓰리다. 


말없이 함께 걷던 나는 겨우 입을 뗐다.

“그랬구나... 정 다행이야...


나이아가라에서 남편은 자신을 치유했고, 나는 그를 더 깊이 공감고, 우리의 인생스토리가 더 소중해졌고, 우리만이 통하는 지혜위트노후를 누구보다 더 행복하게 살 자신감을 얻었다. 함께 의지하고 고생하며 단단해진 사랑과 공감으로 오늘은 더 인생 동반자의 존재가 더 하게 여겨진다. '아팠다고 표현해 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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