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면 한국으로 돌아간다. 마지막 투어를하기위해 뉴욕에 다시 왔다. 지난번에 못 갔던보스턴에 들러 곳곳을 다니고 있는데,사실관심이더 가는 곳이 있다. 해가 져야 더욱 볼만한 두 곳, 타임스퀘어와 뉴욕 야경을 보려고 기다리고 있다.
드디어 해가 저물었다. 버스에서 내려 비교적 좁은 인도를 걷고 다시 돌며 타임스퀘어 방향으로 가는 중이다. 초고층 빌딩들에 가려 어디쯤 있는지, 언제쯤 나타날지 모르는 채로 걸었다. 어느 코너에서 다시 꺾는 순간, 영상에서만 보던 화려한 컬러를 뿜는 광고 전광판들이 눈에들어오기 시작한다. '와! 여기구나.' 한발 내딛을때마다어쩔 줄 모를 정도로 현혹되었다. 사진과 TV에서 종종 봐왔기에 익숙할 거라예상을 해왔다. 하지만 직접 보니 달랐다. 신기한 세상에 온 듯하다.
뉴욕의핫 스팟인 이곳에 군집된현란한 광고 영상들을보는 동안,비현실 같으면서도 현실 최고의 시간이다. 빙글빙글 몸을 돌리며 구경했다.제각각의 특색 있는 동영상을 한 데 모아놓으니 화려함의 극치를 이룬다. 때때로 이런 자극적이라 할 만큼의역동적이고 코믹스러운 영상은내성적인 나에게 에너지를 듬뿍 준다.지금 최상의 만족도로 즐기고 있다. 점점나만존재하는 듯, 다른 이들은 희미하게 보인다.
남편의 존재도 잊을 정도로정신을 놓고 있다가,정신을 차리고 둘러보니 지나가는 사람들, 난간에 걸터앉은 사람들, 다양한 인종들이 곁을 스쳐 지나가며 영상 예술을 즐기고 있다.몸이 부대껴도 불쾌함을인식 못했다.서로의 흥을 이해하고 있나 보다. 누군가를 건드리고, 가는 길을 막아도 기다려 준다. 잠시 방해되는 순간들을 당연시 여기는 것 같다. 다 같은일행이란 착각이 들고 인파가 함께 축제를 하는 듯모두가즐거워 보인다.
이곳이야말로 독특한 흥미 외에는특별한 감동을 줄 거라고 기대를 안 했다. 그저 현대 상업광고의 화려함이 궁금해 세계적으로 '유명한 곳을 나도 이제 보게 되었구나.’라는 기대를 안고 왔을 뿐이다.그러나 동화 속의 거인이 된 듯, 내 키가 빌딩의 높이에 걸맞게 점점 높아지고 있다. 마음까지 부푸는 걸 느낀다.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 왜 나 자신이 대단해 보이는 거지?’
그 이유를 잘 모르겠다. 그냥 그렇게 느낄 뿐이다.왜 이리도 자신감이 올라가는 것인지 신비스럽다. 저 광고판에서 어떤 독특한 힘이 나오는 것일까? 어쨌든 저 빌딩만큼 키가 커졌고, 몸도 가벼워지고 활력을 느낀다. 이곳에서의 특별한 영향을 받은 건지, 아니면 이번여행을 통해 남겨진 결정체인지 알 수 없지만, 현재 분명한 것은 자신감이 되살아난다는 사실이다.
맘속 어딘가에서자꾸만신호를보내온다.
'너,괜찮은 사람이야. 그 정도면 잘 살아왔어. 너의 잠재력은 충분해!'
맞다. 지난한 시절의 위기를 잘 넘긴 것만 해도 잘 산 것이다. 남편과 함께 했던고생이더욱 값지고, 심지어는 자랑스럽다.우둔했던 우리는위기를 함께 넘기는 과정에서 예전보다 훨씬 지혜로운 부부로 거듭났다. 일상 속에서 행복을 어느 누구보다 세심하게 자주느끼는 사람들이 되어간다. 그 행복은 우리 부부의 것이다! 지난 세월이생각날 때마다대견함을 반주삼아얘기하며서로에게고마워할 것이다.함께자주 웃고 멋스럽게나이 들어가고싶다.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숙소로 가기 위해 그곳을 떠났다. 가는 길에 강을 건너니, 저 멀리 눈부신 뉴욕 야경이 다시 한번 우리를놀라게한다. 일행은 버스에서 내리기도 전에나지막한 탄성을터뜨렸다. 조금 전 타임스퀘어에 이어 전율이 또다시 일어난다.이런 광경을 볼 수있다니! 가슴이 두근거린다. 남편과 같은 곳을 같은 시간에 함께 바라보면서 감탄한다는사실이 기쁘다.
감동을 한껏 준 이 도시가 좋아졌다. 고전문학 작품을 읽으며 감명받은 일외에,실생활에서큰활력이 생길 만큼 감동받거나 멍할 정도의 감탄할 만한 일이별로 없었는데,지금원 없이경탄하고 있다. 이번 여행은 목말랐던감탄을 실컷 하며 무작정 놀고 싶어 떠나온 거다.풍경도문학이구나!내면에 변화가 일고,바라는 사람이 되어간다.
언젠가 갔던 스위스부부여행에서 즐길 줄 아는 여유를 배우고 안정된 마음을 찾았다면, 이번 북미여행은 동적으로 우뚝 솟게 해 주었다. 자연이든 인공이든 무슨 상관이랴. 모든 감탄은 사람을 살아가게 하는 산소다. 누가정해 놓은것인아니라,자기만이느끼며 호흡하는일이다.
가장아름다운 것은 바로 감탄하는사람의 모습이다. 작은 것일지라도 감동을 하는 나 자신이 아프도록사랑스럽다. 내 인생 동반자의 시선도 야경에서내내 떠나지 않는다.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남편의깊어진눈이계속반짝거린다.
약 2주간의 북미 여행 일정을 무사히 마쳤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기내에서 창을 내다보며 이륙을 기다리고 있다. 뉴욕에서 시작하여 뉴욕에서 마친 여정 속 여러 장면과잇따른 감정들을다시느껴본다.특히, 남편의인상적인변화들에대해 생각했다.
몇 년 전,여행지 호텔 앞약간 비탈진 길에서 굴러가는 일행의 캐리어를 잡기 위해 급하게 뛰어가느라, 다칠 뻔한남편의 모습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정작 짐주인은 얘기하느라방관하고 있었다.이때,여행 시 타인에 대한 도움에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는 계기가되었다.
이번에 북미 부부 여행 계획을 잡고 나니 그때가 떠올라, 남편과 다시 얘기를 나누었다.여전히배려심이 몸에 밴사람이지만,달라진그만의 '적절한'행동을 보았다. 아침인사를 먼저 건네는 모습은새삼 멋지다. '맞아, 이런사람이었지!' 마치 연애시절알아가던사이처럼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시간이었다.
또, 사진 찍을 때마다남편의포즈가 날이 갈수록 더 자연스럽고 적극적이었다. 자신의 독사진도 찍어달라고 처음으로'먼저' 부탁하더니 나이아가라 폭포 여행 이후, 하트와 브이도 어색하고투박하지만 스스로 만들고싶어 한다.표정도 한결 편안해 보인다. 사진 찍기에 대한 많은 변화가 궁금해서 물었더니, 이렇게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