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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nguevara Apr 11. 2021

마지막

새로운 시작을 바라며

 길다고 하면 길 수 있고 짧다고 하면 짧을 수 있는 약 80일간의 터키 여행이 끝났다. 한국으로 귀국하는 날 비행기를 놓쳐 터키 친구네 집에서 보냈다. 터키 친구의 가족은 나를 환영해 줬다. 택시비도 없는 날 터키 친구의 아버지는 택시비를 내주기 위해 집 앞에서 기다리시고 계셨고 너무 고마웠다. 모두가 무슬림인 터키 친구의 가족은 손님은 신이 보내신 사자라고 생각한다며 가장 편한 자리와 가장 편한 잠자리를 내줬다. 터키 음식이 입맛에 맞지 않을까 봐 누구나 맛있어하는 치킨너겟, 감자튀김 같은 인스턴트 음식을 한가득 준비해 주셨고 생각보다 터키 음식을 너무 잘 먹는 날 보며 터키 친구의 어머니는 흐뭇해하셨다. 터키 친구의 언니는 나에게 이런저런 말도 걸고 장난도 치며 집에서 불편하게 지내지 않기를 바랐고 터키 친구의 오빠는 자기 운영하는 온라인 쇼핑몰의 모델이 되어달라고 해서 사진도 찍었다. 그리고 내가 다시 떠나는 날 터키 친구의 가족은 세상 가장 따뜻한 '인샬라'를 들려줬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14 시간의 경유 비행 동안 많은 생각을 했다. 터키로 떠났던 이유와 처음 이스탄불에 도착했을 때부터 터키 친구 가족의 '인샬라'까지. 결론부터 말하자면 좋았다. 멋진 건축물을 보고 아름다운 풍경을 보는 것도 좋았지만 사람들이 좋았다. 친절하게 대해준 택시기사님도, 길을 찾는 나에게 한국인이냐며 먼저 말을 걸어준 차이를 먹던 아저씨도, 한국의 아이돌과 드라마를 좋아한다며 같이 사진 찍자던 꼬마 아이도, 혼자 맥주를 마시던 나에게 좋은 여행이 되라며 말해줬던 여행자도, 노래를 함께 부르며 머리 위로 손을 흔들던 커플과 한국을 좋아하는 나의 터키 친구들 모두가 좋았다. 하지만 매일 매 순간이 좋지는 않았다. 인종차별적인 대우도 받았고 때로는 비싼 바가지를 쓰기도 했다. 터키어를 못한다며 손사래 치던 사람들도 있었고 길을 묻는 나에게 검지 손가락을 좌우로 저으며 말 걸지 말라는 사람도 있었다. 생각보다 멋지지 않은 곳도 있었고 언젠가 다른 나라를 여행할 때 본 듯한 모습에 실망했을 때도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터키로 돌아오겠다는 다짐을 했다. 약 80일의 시간 동안 쌓이고 쌓인 크고 작은 좋은 시간들이 내가 터키를 좋아하는 이유가 됐다. 


 지중해와 에게해를 따라가는 리키 안 욜루를 걷는 것, 터키 동부를 여행하는 것, 랜트카를 빌려서 흑해를 여행하는 것. 

하고 싶은 것들이 줄지어 생각났다. 꼭 해야겠다는 다짐과 함께. 이번 여행을 통해 잃은 것도 많다. 있는 돈 없는 돈 탈탈 털어서 떠났던 나는 이제 완벽한 거지가 됐고, 이런저런 이유로 몇몇 친구들과도 멀어졌다. 매일 무거운 배낭을 메고 걸어서 허리도 아팠고 물집 잡히고 굳은살 베긴 발은 엄지발톱이 없어졌다. 버려야 할 것을 버릴 수 있는 마음과 지켜야 할 것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한국에 돌아간다. 아쉬움에 혹은 욕심에 버려야 할 것을 꽁꽁 싸매고 품고 살면서 나 자신을 힘들게 했던 시간들도 반성했다.


 돌아가야 할 이유가 분명해진 터키. 벌써 나의 터키 여행은 지난 이야기가 됐지만 우울하지 않다. 지금 나는 돌아가기 위해 새로운 직장과 작은 아르바이트를 하며 투잡을 뛴다. 새로운 출발을 기다리며.


나는 개인적으로 목표 없이 흘러가는 대로 사는 산송장이 되기 싫다.


언젠가 돌아올 그날을 기다리며 퇴근길에 항상 김동률의 출발을 듣는다. 모두가 각자의 방법으로 행복한 삶을 살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터키 여행기를 마친다. 


[길었던 일요일 근무를 마치고 윤 게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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