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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자기 Sep 16. 2020

엄마, 나도 엄마가 되고 싶어

2020년 9월 15일 화요일


필라델피아 날씨: 선선함

내 마음의 날씨: 구름 잔뜩




오늘은 완연한 가을 날씨다. 어제까지만 해도 여름에 가까웠는데.


하루 만에 이렇게 날씨가 변하다니.


나의 마음과 몸도 날씨만큼이나 빠르게 변하고 있다.


지난주 인공수정 실패 소식을 듣고 3일이 지난 후 대자연이 터졌다. 오늘 병원에 가서 피검사와 초음파를 봐야 했다. 2차 인공수정 사이클을 위해. 반드시 생리 3일 차에 병원에 가야 하기 때문에 부랴부랴 오늘 아침에 다녀왔다.


처음에는 이 프로세스가 정신없고 뭐가 뭔지 모르겠었는데, 이미 한번 겪어봤다고 이젠 익숙하다.



오늘 병원을 가기 전 아침부터 폴과 또 티격했다. 별것도 아닌 것 같고. 왜 우리는 중요한 일을 앞두고 꼭 이렇게 다투게 되는 것일까.


기분이 나쁜 상태로 로비에 들어갔다. 오늘 나를 맞아주는 리셉셔니스트는 처음 보는 히스패닉 여성이었다. 오피스에 들어가기 전 열체크를 하는데 로라가 아니라 새로운 간호사가 내 이름을 불렀다. 이 간호사의 이름을 기억한다. '티나'. 키가 작고 환한 금발이다. 어? 그런데 오피스에서 피검사를 안 하고 바로 진료실로 들어간다. 뭐지? 했는데, 진료실 침대에서 바로 피를 뽑는 거였다. 내가 당황하자 간호사들이 나를 보고 웃는다. 왜 웃지...? 의아했다.


미국의 Doctor's Office의 일반적인 모양. 로비에서 대기하며 병원 오피스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다.
사진 설명: 아이 사진이 걸려있는 벽 바로 오른쪽에 리셉셔니스트가 있다. 첫 번째 문을 열고 들어가면 간호사들이 피검사 및 키와 체중을 재는 복도 형식의 오피스가 나온다. 그리고 두 번째 문을 열고 들어가면 의사를 만나는 진료실이 나온다. 의료용 침대가 있으며 이곳에서 초음파를 본다. 사진 속 시계가 걸려있는 두 번째 방이 진료실이다. 진료실은 매우 프라이빗한 장소로 복도를 끼고 보통 3~6개 정도가 있다. (오피스 크기에 따라 다름)


진료실 침대에 걸터앉아 있는데 한참 동안이나 아무도 들어오질 않는다. 무료하게 멍을 때리고 있었다. 문이 열리고 두 사람이 들어왔다. 한 명은 젊은 남자 의사 그리고 다른 사람은 익숙한 얼굴의 간호사였다.


나는 이 젊은 남자 의사가 좀 불편하다. 저번에도 한번 보긴 했었는데 당시에도 약간 불편했다. 그래도 그때는 나름 가벼운 농담을 많이 던져줘서 분위기가 좀 누그러졌는데, 오늘 이 사람도 나처럼 별로 기분이 좋아 보이질 않는다. 처음부터 뭔가 좋은 바이브는 아니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때부터 생기기 시작했다. 이 의사가 초음파 검사를 시작하는데 이물감 정도가 아닌 아프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이건 그냥 넘어갔다. 그리고 두 번째 사건이 터졌다. 


의사가 내 오른쪽 난소를 살펴본다. 별 얘기가 없다. 좋아 보이는 것 같다. 이번엔 내 왼쪽 난소를 본다. 그런데 이 의사가 또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내 왼쪽 난소에는 낭포(cyst)가 있다. 그런데도 코멘트가 없다니.


답답함을 느낀 내가 "내 cyst는 좀 어때?"라고 물어보았다. 그런데 남자가 당황한다. cyst를 찾지 못한 눈치다. 내가 다시 "혹시 내 cyst가 사라졌어?" 이렇게 물어봤다. 말을 더듬는다. 옆에서 간호사가 "어, 맞네. 이 환자 cyst 16이 있네"라고 대답해줬다. 그때서야 남자는 다시 초음파를 뒤적거리면서 내 cyst를 찾더니 기계를 통해 사이즈 계산을 한다. 혹시라도 크기가 커졌으면 문제가 될 수도 있기에 계속 체크해줘야 하는 상황이다. 다행히 크기는 그대로라고 한다.


정말 너무너무 화가 났다. 내가 언급을 안 했으면 내 cyst는 알아차리지도 못하고 넘어갔을 것이다. 매우 기분 나쁜 마음을 안고 검사를 다 마치고 병원문을 나섰다.


차 안에서 폴이 기다리고 있다. 차에 타자마자 나는 이 기분 나쁜 경험을 풀어놓았다.


그런데 이게 웬걸? 폴이 그 의사의 편을 드는 것이 아닌가? 아...? 정말 황당했다. 처음엔 내 말을 잘 못 알아듣나 싶어 다시 말해줬다. 그러나 계속해서 그 남자 의사의 '편'을 드는 것이다. 정말 참을 수가 없었다. 와이프의 몸을 제대로 검사하지 않아 문제가 생길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는데, 그 남자의 '편'을 계속 들다니. 대체 왜?


정말 이해할 수가 없었다. 우리는 차 안에서 계속해서 다퉜다. 도대체 왜 이런 상황이 벌어진 거지? 날이 선 말투로 나의 경험을 공유했기 때문인가. 우리의 논쟁은 아침부터 서로에게 상처를 줬다. 결국 폴이 출근을 해야 했기에 이 말다툼은 끝을 맺지 못했다.




집에 와서 홀로 점심을 먹었다. 오후에 검사 결과 전화가 왔다. 호르몬 수치는 정상이었다. 초음파 검사도 매우 양호했다. 또 페마라(Letrozole)를 처방해준다. 그런데 이번엔 15알을 처방해줬다. 저번엔 10알이었는데. 쌍둥이 생기면 어쩌지? 하는 고민이 순간 생긴다. 김칫국인가.


우선 오늘이 지나고 생각해봐야겠다.




호르몬 때문인가 오늘도 감정이 미친 듯 널을 뛴다. 넷플릭스에서 아는 형님을 봤다. 엄마 이야기를 하는 걸 보는데 울어버렸다. 우리 엄마가 생각나서. 엄마 생일이 2주 정도 남아서 그런가 더욱 엄마가 보고 싶다.


해외생활은 이런 것이 너무 힘들다. 엄마가 보고 싶을 때 엄마를 볼 수 없다는 것.


나도 모르게 "엄마."라고 입 밖에 내는 순간. 엉엉 큰소리로 울었다. 오늘 저녁에 바로 엄마랑 영통을 해야겠다.



엄마, 보고 싶어.


엄마는 나에게 항상 말했다. 나를 가졌을 때 그렇게 행복했다고. 정말 세상에서 제일 행복했다고.


나도 그러고 싶다.


엄마, 나도 엄마가 되고 싶은데.


될 수 있을까?






울었다는 내용의 일기를 볼 때마다 왜 이렇게 쥐구멍에 숨고 싶을까. 나는 운다는 그 행위 자체를 굉장히 창피스럽게 여기는 것 같다. 저번에도 말했지만, 그래도 또 말해주고 싶다. 차라리 잘했다. 울길 잘했다고.

< 현재의 내가 과거의 나에게 보내는 한마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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