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 8일 목요일
필라델피아 날씨: 매우 맑고 청량한 가을 날씨
내 마음의 날씨: 궁금함과 불안함의 안개가 잔뜩
시간이 너무 안 간다.
임신 테스트 피검사는 내일.
인공수정을 한지 열흘이 지났다. 2주의 시간이 이렇게 길게 느껴질 줄이야. 아직도 목요일 밖에 안됐다니.
평소에는 시간이 빨리빨리 잘도 가더니. 정말 오버 안 하고 지난 열흘이 100일 정도로 느껴졌다. 근데 아직도 21시간을 더 기다려야 한다니!
블로그를 보니 어떤 사람들은 피검사 2, 3일 전에 임신 테스트기를 쓰는 경우도 있었다. 임테기로 미리 결과가 나오는 경우도 있다고. 그런데 나는 하고 싶지 않았다.
내 무의식 속 어딘가에서 이런 생각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 미칠듯한 궁금증을 억누르며 지금 임테기를 안하는 이유.
만약, 혹시.
임신이 아니라면.
그 아픔을 미리 알고 싶지 않다. 혹시 진짜 임신이어도 임테기를 쓰는 타이밍상 한 줄이 뜰 수도 있지 않을까? 내가 왜 그 상실감을 일부러 겪어야 하는가. 그냥 참고 기다리자. 어차피 내일 피검사로 확실하게 다 나올 테니까.
그런데 너무 시간이 안 간다.
시간이 정말 너무너무 안 간다.
어제는 엄마 생일이었다.
우리 엄마 생일은 음력으로 축하하기에 날짜 계산이 헷갈릴 법도 하지만 항상 추석 딱 1주일 뒤라서 기억하는 게 별로 어렵지는 않다.
하지만 해외에 나와서 사니 추석을 종종 까먹는다. 나는 한국에 있을 때 추석을 좋아했다. 가을 날씨도 좋고, 보름달도 예쁘고, 좋아하는 사촌들도 만나고. 우리는 추석 당일날 이모네 집에 모여 다같이 만두를 만들곤 했다. 그리고 연휴 마지막 날에는 친구들을 만나기도 하고. 괜히 기분 좋은 날들. 그게 추석 연휴였다.
요즘 호르몬 때문에 기분이 이상해서 그런가? 향수병이 더욱 짙어졌다.
추석이라서, 엄마 생일이라서, 가을이라서. 이런저런 핑계를 찾지만 이놈에 향수병은 꾸준히, 주기적으로 찾아온다. 뭔가 기분이 꿀꿀하고 다운됐었는데 어제 오랜만에 시부모님들과 한국음식을 먹었다. 집 근처에 짬뽕집이 생겨서 찾아갔다. 그리웠던 한국의 맛. 수정과도 먹었다.
어제까진 괜찮았는데, 오늘 뭔가 버튼이 눌리고 트리거처럼 폭발했다. 이 미친 호르몬!
아, 갑자기 또 눈물이 줄줄 나온다. 감정을 스스로 조절하지 못하겠다. 슬픔과 분노가 차오른다. 옆에 있는 사람에게 괜히 시비를 건다. Paul과 또 싸웠다. 미친 사람들처럼 서로 소리를 지르고.
매일매일 드라마를 찍는다. 나 자신이 싸이코같이 느껴져서 더 화가 난다. 이런 감정의 롤러코스터 그만 타고 싶은데. 지겹다 정말. 평화롭게 살고 싶은데.
싸우는 도중 나 스스로에게 더 화가 났던 것은 불안함이라는 감정이 점점 더 커져서 그랬던 것 같다. 미래의 내가 이 향수병이 더욱 짙어져 아이에게 악영향을 주면 어쩌지?라는 불안감. 우리의 아이가 나 때문에 불행해지면 어쩌지?라는 공포감.
미래를 알 수 없는 그 불확실성. 앞으로 불행한 삶을 살게 되면 어쩌지?라는 질문이 매분 매초 퐁퐁 솟아올라 나를 괴롭힌다. 불행한 아이를 만들고 싶지 않다. 무섭고 두렵다.
어쨌든 결론은 얼른 내일이 됐으면 좋겠다. 이 궁금증의 덩어리가 해소되면 뭔가 이 불안한 실타래가 어느 정도 풀리겠지. 내일은 결판이 날 테니까.
빨리 내일이 왔으면 좋겠다.
아니,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임신이 아닐지도 모르니까. 그럼 슬플테니까. 괴로울테니까.
아니, 내일이 왔으면 좋겠다. 임신일지도 모르니까.
완결을 보고 싶다.
향수병을 해결하는 과정은 평생의 숙제. 고생이다 정말. 토닥토닥. 이날도 고생했다.
< 현재의 내가 과거의 나에게 보내는 한마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