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운동 유목기 3

폴댄스 편 : 야하다는 이미지와 싸우기

by 김정민

플라잉 요가 원데이 클래스를 함께 들었던 친구 R과는 또다른 운동 유목을 함께했는데 이 역시도 당시 유행이 시작되었던 폴댄스였다. (매년 S/S와 F/W 신상이 공개되듯이 운동계에도 어디서 계속 신상품을 내놓는 걸까? 잘 아시는 분이 있다면 제보 바랍니다)


홍대와 상수 인근에 살고 있었던 30대 초반의 직장 여성 두 사람은 홍대역 부근의 어느 오피스텔을 개조해서 운영하던 폴댄스 학원을 찾게 되었는데, 거주용 오피스텔의 거실에 10개 남짓한 봉이 천장부터 바닥까지 박혀 있던 그 공간의 느낌은 참 묘했다. 건물 내 같은 층에는 타로점 보는 곳과 피부관리실 그리고 일반 거주자가 섞여 있었는데 똑같은 구조의 방들이 이렇게나 다른 용도로 쓰인다는 것이 신기했다.


폴댄스 선생님은 매우 탄탄한 몸매에 태닝한 듯 건강한 피부색과 복근을 갖고 있었는데, 불과 3개월 전에 출산을 했다는 말에 모든 수강생이 기함했다. 애 낳은 몸매 맞아? 수근수근. 선생님은 폴댄스가 그만큼 몸매 관리에 효과가 좋다고 강조하면서 수업을 시작했다. (선생님 같은 분들 때문에 출산 후에 살이 빨리 안빠진다고 좌절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나쁜 사람 ㅠ)


한시간 짜리 수업 중에서 절반은 스트레칭과 복근 운동으로 기본기를 다지고 나머지 절반은 봉을 타는 거였다. 폴댄스는 기본적으로 허벅지 사이에 봉을 끼우고 코어 근육으로 버티면서 빙글빙글 도는 것인데, 코어 힘으로 내 체중을 공중에 띄우는 게 기본이다보니 정말정말정말정말 힘들었다.

허벅지를 끼우고 돌다 보면 마찰력 때문에 쓸려서 아프고 피부에 화상을 입은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뜨거워지기도 했다. 선생님은 계속 쓸리다 보면 허벅지 살이 빠지고 탄탄해져서 더이상 안아프다고 하셨지만 그때의 나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내가 왜 돈을 내고 고문을 받고 있을까 라는 생각만 가득했고, 폴댄스 가는 요일이 되면 아침부터 식은땀을 흘렸으며, 친구를 꼬드겨서 홍대역에서 만난 다음 수업을 빼먹고 치맥이나 먹고 싶었다.

오늘 회사에서 너무 힘들었는데 폴댄스 안가면 안돼?

컨디션이 안좋아서 오늘은 운동 못할 거 같아

생리통이 심해서 이런 날 폴 타면 안되지 않을까?

나 이마에 열 있지 않니?

기타 등등...


복싱이나 탭댄스는 타격감으로 스트레스가 풀렸고, 요가는 명상으로 긴장을 풀어주었지만 폴댄스는 나에게 스트레스를 더해줄 뿐 풀어주는 게 없었다. 그래서 운동 유목 생활 중 최단기간에 이 만남은 끝이 나고 말았는데, 그만두게 된 계기가 하나 더 있었다.


내가 폴댄스를 배운다는 얘기에 그거 좀 이상한 거 아니냐 라는 식으로 반응한 선배 오빠의 말 때문이었다. 선배는 폴댄스 하면 미국 영화나 드라마에 많이 나오는 스트립 클럽이 떠올랐고 (CSI 라스베가스에 살해당한 피해자가 클럽 직원인 경우가 많고 오프닝에 폴댄스가 인서트로 심심찮게 등장했다) 그래서 폴댄스 자체에도 '야하다' 라는 이미지가 있다고 했다.

처음에는 그런가? 했지만 곱씹어 생각할수록 폴댄스 라는 운동이 이 말을 들으면 억울할 것 같다. 봉을 타고 춤을 춘다고 해서 그게 꼭 누구한테 보여주려는 춤이거나 야한 춤이어야 한다는 것은 편견 아닐까? 폴댄스 영상을 찾아보면 느리고 관능적인 음악에 맞춰서 춤을 추는 게 많이 있긴 한데, 그게 자기 만족을 위한 게 아니란 법 있나. 애초에 유래는 서커스 등에서 폴을 이용한 동작이 춤이 된 거라고 하던데, 잘못한 게 있다면 여성의 팬티에 돈을 꽂아주던 미국 중년 아재들과 그들을 이용해서 장사를 하려던 마피아 조직 탓 아닌지.


이렇게 조근조근 반박을 해주었더라면 좋았겠지만 당시 나는 어버버 하다가 대화는 끝나고 말았던 것 같다. 그리고 안그래도 아파서 하기 싫었는데 부정적 이미지까지 겹치니 그게 오히려 그만둘 핑계가 된 셈이었다.

플라잉 요가를 할 때도 허벅지에 천을 감고 조이는 게 힘들었는데 폴댄스에서는 봉을 끼우고 돌라고 하다니, 나도 내 허벅지에게 잘못이 참 많았다. 그렇게 허벅지에게 용서를 구하며 우리는 학원을 그만뒀다.


거듭되는 운동 유목의 과정에서 사람들이 갖고 있는 여러 선입견이나 고정관념들을 접하게 된다. 나는 그냥 야근을 하고 술을 마셔도 괜찮을 정도로 체력을 늘리고 싶고, 친구랑 같이 운동을 배우면서 재미있고 싶었을 뿐인데 세상은 왜 우리 몸에 대한 갖은 잣대를 들이대고 핍박을 하는 걸까.


종목 그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 문제는 우리의 시선일 뿐이다.

운동 취향도 존중해 주세요,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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