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의학에서 밝혀진 내 몸, 나의 삶 (11)
미국 필라델피아의 Perelman 의과대학의 Than(J Clin Invest, 2025)은 췌장암을 '암 생물학의 에베레스트'에 비유하며, 왜 이 질병의 치료가 암에 대한 치료적 접근 중에서 가장 정복하기 어려운지 언급한 바 있다. 현대 의학의 발전에도 불고하고 췌장암은 5년 생존율이 13% 미만으로, 가장 예후가 좋지 않은 암종에 속한다. 이번 글에서는 Than과 Sloan Kettering Cancer Center의 Park(JAMA, 2021)과 Amsterdam대학의 Stoop(Lancet, 2025)의 최신 의학지견을 중심으로 췌장암의 현주소와 예방전략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자.
에베레스트산은 K2와 안나푸르나 제1봉, 낭가파르바트와 더불어 세계적으로 오르기 험악한 산에 속한다. 학생시절 외웠던 세계최고의 해발 8,848m 높이에서 오는 극심한 산소부족과 이로 인한 고산병 위험이 첫째 난관인 데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훈련과 산소통 같은 부가적인 장비는 비용과 짐을 증가시킨다. 두 번째 난관은 예측 불허의 극한의 기상 조건으로 강풍과 추위로 동상과 극심한 체력 소모를 야기시키며 신체 손상과 자칫 목숨을 잃게 될 위기에 직면하게 한다. 이 두 가지를 극복한다 해도 세 번째의 난관이 기다리고 있는데 루트 자체가 요구하는 높은 등반 기술과 극복해야 할 위험 요소들이 산재해 있다고 한다. 수시로 움직이고 무너지는 거대한 얼음 덩어리(세락)와 깊은 크레바스(빙하 균열)가 있는 빙하 구간은 산악 전문가들도 긴장하게 만드는 요인들로 작용한다
Than은 험준한 췌장암 산봉우리 정복에는 "암세포의 고유한 분자적 특성, 종양 미세환경(TME), 그리고 임상적 적용상의 난제"라는 극복해야 할 세 과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먼저 췌장암의 90% 이상에서 KRAS라는 암 유전자에 변이가 발견된다. 폐암, 대장암 등에서 발견되는 KRAS G12C 변이는 2021년 최초의 표적 항암제인 소토라십(Sotorasib, 루마크라스)의 승인을 시작으로 아다그라십(Adagrasib) 등의 개발로 이어졌는데 반해 췌장암에서 일어나는 KRAS 변이는 주로 G12D 또는 G12V 유형이며, 이는 G12C 억제제는 cysteine의 공유결합을 이용하는 기전인데반해 췌장암에서 보이는 G12D/V에는 cysteine이 없어서 이와 같은 약물이 결합할 만한 결합 주머니(covalent pocket)의 틈을 제공하지 않아 치료제 개발을 매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로 인해 췌장암의 KRAS를 표적으로 하는 치료제 개발에 오랜 기간 어려움이 있었으나, 최근 항-RAS 활성을 가진 다양한 소분자 억제제들이 전 임상 및 임상 개발 단계에 있어 새로운 치료법이 도입될 것이 기대된다. 첫 번째 관문을 통과하더라도 다음 글에 다룰 예정인 종양 미세환경(Tumor Microenvironment, TME)의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췌장암에서는 KRAS 변이로 인해 암-연관 섬유아세포(Cancer-Associated Fibroblasts, CAF)가 활성화되어 콜라겐과 같은 세포 외 기질을 과도하게 축적시켜 섬유성 장벽을 형성한다. 이 장벽은 항암제가 종양 내부 암세포에 도달하는 것을 방해하고, 동시에 산소와 영양 공급을 제한하여 독특한 면역억제적 미세환경을 조성함으로써 치료 저항성을 높인다. 이러한 이유로 흑색종, 폐암, 신장암 등 일부 종양에서 효과를 입증한 면역관문억제제도 췌장암에서는 아직까지 임상적으로 뚜렷한 이점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대장암이나 유방암에서 효과적인 전략으로 자리 잡은 조기 발견을 위한 암 검진도 췌장암에서는 확립되지 않았다. 혈액검사에서 CA 19-9가 활용될 수 있으나 조기 발견에는 한계가 있고, 진단에서도 단독으로는 권장되지 않아 국가 단위 검진 프로그램으로 도입되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환자는 초기 증상 없이 진행된 단계, 때로는 이미 전이된 상태에서 진단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췌장암의 특성 때문인지, 박형민(J Korean Med Sci. 2022)의 우리나라 간담췌암(HBP cancers)의 발생률 및 사망률 추이를 분석하고 2040년까지 예측한 연구 결과를 보더라도 췌장암은 다른 암들과 달리 중요한 특징을 보인다. 1999년 대비 2017년 췌장암은 인구 10만 명당 5.6에서 7.3으로 증가하였고 연령표준화사망률도 5.5에서 5.6으로 소폭 증가하였으며 2040에는 발생률이 8.2까지 증가 할 것으로 예측되고 사망률도 증가할 것으로 예측되어 앞서 언급하였던 유방암처럼 증가 추세를 꺾을 전략이 필요한 암이다.
영국의 Exeter대학의 Moore는 이러한 췌장암의 특성을 극복하고 치료 결과를 개선시키기 위해 위험 요인들을 파악하고 췌장암 감시체계를 개선하고 더 나은 위험 예측 모델을 모색하기 원하여 그동안 췌장암의 위험요인에 대해 연구되어 온 연구들을 총 망라하여 위험인자에 대해 그 위험이 얼마나 강한지 그리고 그 인자의 인과성에 대해 얼마나 근거를 신뢰할 수 있는지에 대해 종합적으로 분석하였다. 연구 결과 총 168편의 연구들의 2,255,495명 이상의 환자들이 최종 분석에 포함되었고 각 위험인자들에 대해 365건의 메타 분석이 이루어졌으며 췌장암의 위험을 높이는 38가지 위험인자, 위험을 낮추는 11가지 위험인자를 찾아내었다. 자세한 내용을 보기 원하시는 분은 그의 문헌을 읽어 보시기를 권하며 여기에서는 비교적 근거를 신뢰할 수 있는 위험인자 중 특히 개선시키거나 주의해서 도움이 될 수 있는 인자들 중심으로 소개하도록 하겠다.
다음 그림은 Moore연구의 연구 결과에서 인과관계의 관련성에서 신뢰성에서 비교적 높게 평가된 위험인자들에 대해 재구성한 것이다. 원저자들의 허락을 받고 재구성한 것은 아닌 점을 감안하고 참고 수준으로 봐주면 좋겠다. 효과크기(effect size)가 1 이상일수록 췌장암의 위험의 강도가 커지고, 1 이하의 경우는 오히려 보호효과가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짙은 초록색은 그 근거의 수준이 높은 것이고 옅은 초록색은 그보다는 못하지만 상당히 인과성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근거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 논문에서 최종 정리되어 제시된 데이터로 위의 조건에 해당되는 항목에 대해 다시 숲그림형태로 그려보았다.
이상을 요약해 보면 상당한 근거가 있고 그래도 변화를 줄 수 있는 위험인자로 생각되는 것은 췌장염, 당뇨 특히 새롭게 당뇨병이 발병한 경우, 흡연, 대사증후군, BMI증가를 꼽을 수 있으며, 이에 반해 알레르기 질환과 건초열 즉 알레르기성 비염 같은 경우 췌장암의 위험을 줄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알레르기 질환에서 췌장암의 위험을 줄여주는 것은 흥미로운 관찰인데 이는 종양 침윤 호산구(Tumor-associated eosinophils, TAE)는 세포독성 과립을 분비하여 암세포를 직접 손상시킬 수 있고 케모카인과 사이토카인(CCL5, TNF-α, IFN-γ 등)을 분비해 T 세포, NK 세포 등 다른 면역세포를 종양 미세환경으로 끌어들이고 활성화시켜 면역 감시(immune surveillance) 기능을 강화함으로 그럴 수 있다는 추측을 할 수 있다. 이제 위험 요인들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흡연
흡연은 상대위험도 (RR) 값이 1.8 (95% CI 1.7–1.9%)로 비흡연자에 비해 80% 정도 췌장암에 걸릴 위험이 높다. Stoop(Lancet, 2025)에 따르면 모든 췌장암 사망의 연령표준화 분율상 21%가 흡연에 의한 것이다. 담배 속에는 60여 가지의 발암 물질이 있고 이중 니트로사민(Nitrosamines) 계열의 물질(예: NNK)이 특히 중요한데, 이들은 혈류를 통해 췌장에 직접 도달한다. 발암 물질과 니코틴은 흡연자의 췌장액에서 비흡연자보다 최대 7배까지 높은 농도로 발견된다고 한다. 이 발암 물질들은 췌장세포나 암전구세포에 작용하여 세포 증식을 자극하고 세포의 자연사를 억제한다. 흡연은 또한 암세포를 둘러싼 주변 조직(미세 환경)을 변화시켜 암의 성장을 강력하게 돕는다. 이 환경 변화의 결과 콜라겐 등 세포 외 기질(ECM) 단백질을 과도하게 만들어 내어 종양미세환경(TME)을 형성하는데 도움을 준다. 이렇게 되면 화학 요법 및 방사선 치료에 대한 저항성을 높이며, 다른 곳으로의 전이가 촉진된다.
음주
과음하는 사람은 췌장암의 위험이 올라기기도 하거니와 췌장염의 위험을 높이기도 하여 직간접적으로 췌장암 발생과 연관이 있어 피하는 것이 좋다. 유방암의 예방에서 언급한 것처럼 안전한 음주는 없음으로 아예 금주하는 습관을 세워야 한다.
췌장염
췌장염이 있는 경우는 상대위험도가 7-10까지도 올라가 매우 강한 위험인자로 작용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충북대 박선미 등(Sci Rep. 2023 Nov 2;13(1):18930)의 연구 결과를 보면 급성 췌장염 단발성으로 앓은 경우는 췌장암의 위험이 약 1.32배 증가하여 일반인보다 위험도가 약간 높은 수준이나 만성 췌장염에 급성 췌장염 경험이 겹칠 경우는 약 5.74배 증가하여 만성 염증 상태에 급성 염증이 반복적으로 겹치는 경우가 가장 위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문헌의 연구에서 음주 자체와 췌장암 간의 독립적인 인과성은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았지만 췌장염 환자 그룹(특히 재발성 급성 췌장염(RAP) 및 급성 췌장염을 동반한 만성 췌장염(CP with AP))은 일반 대조군에 비해 일주일에 2회 이상 술을 마시는 비율이 췌장염 동반 만성 췌장염 그룹에서 24.1%로, 대조군의 13.8%로 음주 비율이 훨씬 높았다.
당뇨병
당뇨병이 있는 경우는 상대위험도가 1·5 (95% CI 1.4–1.6) 특히 3~4년 이하로 최근 당뇨가 발생한 경우가 더 연관되는 것으로 보인다. HbA1c 수치와 공복 시 혈당수치가 높은 경우 췌장암의 위험이 올라간다.
대사증후군
대사증후군이 있는 경우도 상대위험도 1.3(95% CI 1.2–1.5%)으로 위험이 올라가며 대사 증후군이 개선되면 위험은 감소하게 된다. 대사증후군의 원인이 될 수 있는 고열량, 고지방 식사 습관을 피하고 체중 증가에 관해서도 주의하여야 한다.
유전적 요소 및 가족력
유전적 요인은 확실하지는 않지만 췌장암 환자의 21–36%에서 의심이 된다고 한다. 직계 가족(부모, 형제자매, 자녀) 중에 췌장암 환자가 두 명 이상 발생한 가족성 췌장암인 경우는 나머지 가족 구성원들에게 췌장암 발생의 아주 강력한 위험 요인이다. 특히 이중 약 10%에서 암 발생과 관련된 특정 유전자 돌연변이가 발견되는 데 이런 경우는 단순히 가족력만 있는 사람보다 훨씬 더 높은 췌장암 발생 위험을 가진다.
지금까지 인과성이 어느 정도 밝혀진 위험인자들을 회피하고 건강한 생활 습관을 유지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최선의 예방 전략이다. 금연, 금주, 건강한 식습관 유지 및 혈당 관리에 힘쓰는 생활습관을 세우도록 하자. 증상이 없는 일반 인구를 대상으로 한 췌장암 검진은 현재로서는 추천되지 않는다.
가족성 췌장암 가족력이 있는 경우나 드물지만 Li-Fraumeni 증후군(p53 돌연변이), Lynch 증후군, BRCA1/BRCA2 돌연변이 등 다른 유전성 암 증후군에서 내시경 초음파 검사와 복부 MRCP를 동반촬영하는 MRI 검사를 포함하는 췌장암 감시가 고려될 수 있다. 만성 췌장염 환자나 최근 진단된 당뇨병 환자에서 특별한 이유 없이 당뇨병 진단 전후로 체중이 5% 이상 또는 4.5kg 이상 감소한 경우, 체질량 지수가 낮거나 비만이 아닌 사람이 갑자기 당뇨병이 발생한 경우, 기존에 앓던 당뇨병이 갑자기 조절되지 않고 심하게 악화된 경우, 당뇨병과 함께 만성 췌장염이나 재발성 급성 췌장염 병력이 있는 경우, 고령 50세 이상에서 당뇨병이 새로 진단된 경우 등의 추가적인 위험이 있는 경우 의료진과 상의하에 췌장암 발생에 대해 주의할 필요가 있다.
전 한국보건의료연구원원장이시며 대한민국한림원원장을 역임하신 임태환교수님께서 세심하게 감수해주셔서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