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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무 Aug 23. 2020

참 잘했어요

 미국 Harbor UCLA 병원의 Casaburi박사 연구실에서 임상연구 연수의로 근무하던 시절이었다. 엊그제 같은데 벌써 20여 년이 흘렀다. 만성 폐쇄성 폐질환 환자들에 대한 재활프로그램 관련된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6분간 걷는 거리를 측정함으로써 만성 폐쇄성 폐질환자의 전신적 기능을 측정하여야 해서, 연구실 복도를 이용하여 일정 거리마다 표식을 해놓아야 하였다. 어려운 일도 아니고 그 연구팀에서 제일 어리고 제일 늦게 합류했던 내가 하겠다고 하고, 자로 재서 일정 구간마다 표식을 바닥에 앉아서 하고 있는데, 잠시 들렸던 Casaburi박사가 내가 한 일을 보더니 엑설런트 하다며 웃으며 칭찬을 하였다. 나는 속으로 아니 이런 사소한 일에 대해 엑설런트 하다고 다 큰 어른에게 호들갑을 떨며 칭찬하다니 좀 심한 것 아니냐고 생각했다. 그런데 일상생활에서 이들의 삶을 들여다보니, 이들은 아주 흔하게 일상생활 가운데 서로 ‘excellent, outstanding, good’ 이런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었다. 점차 깨닫게 된 것은 이 사람들은 정상적인 사람이 정상적인 일을 했으면 그것에 대해 '참 잘했어'라고 말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 세계여행 프로그램 방송을 본 적이 있다. 유럽의 어떤 나라를 방문한 프로그램이었는데, 촬영진이 어느 전시장을 지나다가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어 호기심에 가보았는데 작품전이 열리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어린아이들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분위기는 마치 유명 화가의 작품이 전시된 것 같은 분위기였고, 모인 사람들이 작품 앞에서 경탄하며 진지하게 작품들을 감상하고 있었다. 그 작품의 가족들이 주였다. 그 장면이 기이하게 느껴졌던지, 촬영진이 그들과 인터뷰하며 한동안 그 장면을 영상에 담았다. 그들에게도 정상적인 아이가 그 나이에 걸맞게 정상적인 어떤 활동을 한 것이 대견하고 참으로 칭찬할 만한 일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모습이 우리에겐 그렇게 낯설었다. 


 한 번은 인스타그램에 러시아에 있는 미술 선생님이 제자들의 작품을 올린 적이 있었다. 그들의 작품과, 때론 그 작품을 그린 어린이들 사진이 같이 올라오곤 했는데, 내 눈에는 보통 아이들보다 약간 잘 그린 그림들이었다. 그런데 각 그림의 특징과 특성을 관찰해 보니 어떤 아이는 색채가 좋았고, 어떤 아이는 전체적인 그림의 구조가 눈길을 끌었고, 어떤 아이는 그림에 인물들이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들이 좋았다. 감상하려고 하니 무언가 좋아 보이는 것들이 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래서 각 작품마다 느낀 특성을 써주면서 참 좋다고 해주었다. 그랬더니 그 인스타 그래머가 고맙다고 답글을 달았다. 루마니아 출신의 교사였는데 지금은 러시아에서 활동하고 있는 듯하였다. 그러면서 자신은 자라면서 한 번도 칭찬을 받아본 적이 없다고 하였다. 한국에서도 웬만해서는 자라는 동안 칭찬받질 못한다고 맞장구를 치고 격려하며, 최근 내게 있어서 잘했다는 정의를 ‘정상적인 사람이 정상적인 일을 했으면 참 잘한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우리는 우리 다음 세대들에게 이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다고 말해 주었다. 


 우리는 상위 1% 혹은 0.1%에 들어야 잘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모든 과목 100점을 받아야 참 잘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러다 보니 한두 과목 점수가 좀 잘 못 나오면 닦달하는 부모도 있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아이들은 전교 일등을 하여도 편치가 않다. 다음에 전교 1등 자리를 놓치면 좌절하게 되고, 심지어 극단적 행동을 취한 경우도 있다. 대다수의 아이들이 1%에 못 드는 것은 매우 당연하므로 대다수가 불행할 수밖에 없는 문화적, 사회적 흐름 가운데 우리 아이들은 놓여 있다. 이러한 무한 경쟁의 구도 속에 잘하는 아이들도 불행한 것이다. 모두가 불행한 사회를 만들어가는 것은 그들의 어른들이고, 거기에 상위권 학생들만 귀여워하시는 것처럼 보이는 선생님들도 일조를 하시고, 입시 지도 학원 선생님들은 프로페셔널하고 냉정하게 도마질을 해댄다. 


 그런데 좀 생각해보자, 일반적인 사람이 일상적인 일을 제대로 수행하였으면 잘한 것 아닌가? 누구나 평범하게 할 일을 잘한다면 우리 사회는 풍요로워지는 것이 아닐까?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사랑하고 아이들이 인격적으로 개선되는 것을 즐거워하시면 참 잘하고 계신 것 아닌가? 의사 선생님들이 자신 앞에 온 환자 한 사람 한 사람의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그 환자에게 최상의 선택을 해서 치료해주고 있다면 우리 사회는 건강한 것 아닌가? 이차 이득에 관심이 없고 누구나 일차 이득에 충실하다면 우리 사회는 참으로 행복한 사회가 될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지인 중에 계약직으로 기초학력 담당교사로 일하고 계신 분이 있다. 학교마다 그 선생님을 부르는 호칭이 다 다른 것 같은데 쑥쑥 교실 선생님, 능력 교실 선생님, 무한도전 선생님과 같은 별칭으로 부르는 모양이다. 초등학교에서 각 학급에서 학업 성취도가 떨어지거나 전체 수업에 지장을 주는 아이들을 맡아 개별적으로 또는 소그룹으로 교육하는 선생님이라고 한다. 이 분이 처음 맡은 아이들은 주로 성적이 매우 불량한 아이들이었다. 그런데 이분은 아이들을 보면 너무 사랑스럽다는 것이다. 이분이 아이들을 돌 본 후 일 년이 지나면 놀랍게도 아이들의 상태가 개선되고 성적이 상위권으로 진입하여 아이들을 보낸 선생님들과 교장, 교감 선생님들이 모두 놀라셨다는 것이었다. 이 이야기는 다른 경로로 교육계 장학사와 교장을 지내시고 계신 선생님들을 통해서도 동일한 말을 들었으니 사실로 확증되었다. 심지어 3년 내내 아이들을 보냈던 어떤 교사는 아이들이 자신이 가르칠 때 도저히 안되었던 아이를 보내었더니 개선되는 모습을 보고 자신의 교습 방법에 무슨 문제가 있는가 하고 대학원을 다니기로 결심하기도 하였다. 


 그분에게 비결을 물어보았다. 이 분은 아이들을 대했을 때 어떤 선입관도 갖지 않고, 현상태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사회의 어떤 기준도 적용하지 않고, 앞으로는 나아질 일만 남아 있다는 확신과 믿음을 갖는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이들이 그 시기에 당연한 학습 수준에 도달하였을 지라도 할 수 있는 것 칭찬을 해주게 된다고 하였다. 당연히 알아야 한다고 하는 것들을 알게 된 것에도 아이들은 그 어디서도 들은 적이 없는 칭찬과 격려를 받게 된 셈이다. 예를 들면 2학년 아이가 덧셈 뺄셈을, 3학년 아이가 구구단을 하게 되면 이 선생님의 진심 어린 큰 칭찬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난 연말, 다른 선생님들의 눈에는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늦게 되는 아이들은 있어도 안 되는 아이들은 없다는 것이 수년간 이러한 아이들을 지도한 이 선생님의 결론이라고 한다. 


 처음에 이선생님께 아이들이 인도되면, 수업이나 공부 이야기를 하지 않고, 먼저 마음을 받아주고 알아주려고 하는데, 예를 들어 감정카드를 이용하여 아이들의 마음 상태를 이해해준다.  아이들은 자신들의 마음만 알아주었을 뿐인데, 부정적이고 어두운 마음은 사라지고, 아이들의 긴장감이 눈 녹듯 사라져 버린다는 것이다. 그분의 결론은 모든 아이들의 마음속에 스스로 정답을 가지고 있는데, 무언가에 잠시 막혀 있었던 것뿐이고 그것을 만져주면 아이들이 놀랍게 변화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어린아이들이 나에게 오는 것을 허락하고 막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천국이 이와 같은 사람들의 것이기 때문입니다.”라고 하시고 (마태복음 19:14)


 오늘 우리 주변에 아이들에게, 직장 동료들에게, 심지어 상급자에게, 부모님께, 아내에게, 그리고 남편에게 한번 이야기해보자. "그것 당신이 하셨어요? 참 잘하셨어요." 입으로만 하지 말고 맘 속 깊이 그것을 감상하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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