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디에이고 Zoo를 산책하고, 라호야의 선셋을 감상하다.
절대 오지 않기를 바랐던 여행의 끝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제 우리는 일정의 마지막 호텔에 체크인할 준비를 하고 있다. 이 호텔에서 짐을 싸고 나면 집에 가서야 풀게 되겠구나... 아직 샌디에이고 관광을 시작조차 안 했는데, 벌써 마음이 우울해지려고 한다.
그냥 이렇게 끝없이 여행만 하며 살면 어떨까?
부질없는 생각을 해본다....
마지막 호텔로 잡아두었던 곳은 미션 밸리의 새로 생긴 레지던스 호텔이었다.
아무래도 일반 호텔에 비해 주방시설이 갖춰진 레지던스 호텔은 가격도 좀 비싸지고, 룸 사이즈도 커진다.
여행 중 식사를 만들어 먹는 일정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간 한 번도 레지던스에서 지낸 적은 없었는데, 이곳을 잡은 이유는 우리 스케줄상 이동하기 좋은 요지에 위치해 있었으며, 막 새로 오픈하여 리뷰조차 별로 없는 새 호텔이었기 때문이다.
방에 들어가자 모든 게 반짝였다.
우리가 처음 사용해 보는 것은 아닐까 싶을 만큼 냉장고, 식기 세척기 모든 가전이 깨끗했고,
넓은 방과 거실, 커다란 소파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냥 '집'같았다.
레지던스로 왔으니 남은 일정이라도 뭘 만들어 먹어볼까? 잠시 망설였으나, 지체 없이 이 귀한 시간을 요리 따위를 하며 낭비할 순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주방은 과일을 씻거나 물병을 닦는데만 이용했다.
샌디에이고에 들어오니 전체적으로 LA 보다 깔끔한 느낌이다. 바로 옆 바다를 끼고 있어 우리가 사는 곳과 비슷한 안정감을 느껴서인지 이상하게 정이 간다.
미국으로 이사를 오게 된다면 샌디에이고에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운전자들도 다른 도시보다 여유가 느껴진다.
"미국인들이 은퇴 후, 가장 살고 싶어 하는 도시"라더니, 그럴만한 이유가 있네...
언젠가 이 곳에 살 내 모습을 잠시 상상해 봤다.
라호야를 가기로 했다.
구글맵에 라호야를 치자 라호야 코브, 라호야 비치, 라호야 바다사자 관찰지 이렇게 여러 곳이 떴다.
우린 그중 바다사자 관찰지로 향했다.
마침 일요일이었던지라, 입구부터 도로까지 차가 꽉 들어차 도저히 주차할 공간이 없었다.
돌고, 돌고, 또 돌고, 간신히 빈 공간 하나를 찾아 힘겹게 주차를 하고, 멀리 보이는 바다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무언가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한다.
아니 저긴 잔뜩 몰려있잖아!
엄청난 무리의 바다사자들이 바닷가 돌 위를 덮고 있었다.
샌프란시스코 피어 39에서 봤던 것보다 훨씬 가까운 곳에서 더 많은 바다사자들을 관찰할 수 있었다.
사람들이 다가오거나 말거나, 바다사자들은 귀찮은 듯 옆으로 누워 눈동자만 굴리고 있었다.
이런 건 동물원에나 가야 볼 수 있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흔하게 나뒹굴고 있다니!
바닷바람이 꽤나 차가웠다.
신기한 바다새들이 올망졸망 모여있었다.
바다사자들이 몰려있던 돌밭을 지나 모래사장이 있는 비치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선셋이 드리운 라호야는 너무도 아름다웠다.
바닷물에 발을 담가보니 얼음물처럼 차갑다.
혹시나 해서 옷 속에 수영복을 입고 온 아이들이 내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옷을 벗기 시작했다.
너무 추워서 감기 걸릴 것 같은데.....
엄마의 걱정은 안중에도 없는 아이들은, 힘차게 물속으로 뛰어들어갔다.
한적한 해변가에서 아빠와 뛰어노는 아이들을 보니, 마치 영화속의 한 장면처럼 느껴진다.
아름다운 라호야의 선셋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세계 최대의 동물원, 샌디에이고 주
어디나 있는 흔하디 흔한 동물원이지만, 우리가 사는 괌에는 그 흔한 동물원도 없다.
그런 이유로, 한국에 가면 꼭 동물원에 들리곤 한다.
세계 최대 규모라는 샌디에이고의 동물원은 과연 어떨지? 잔뜩 기대를 하고 길을 나섰다.
샌디에이고 주의 특이 점은, 투어버스를 타고 한 바퀴 돌며 전체적인 동물원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어마어마한 사이즈의 동물원을 두발로 걸어서만 보기에는 한계가 있는데, 이렇게 버스로 전체 투어를 해주니 참 편하고 좋았다.
지도로만 보면서 어디 어디를 갈지 정하는 것보다, 동물원 투어를 버스로 시작하면 미리 좋아하는 동물들의 위치를 파악해 두고, 다시 볼곳들을 찜해두면서 계획을 세워볼 수 있어 좋다.
규모가 커서 동물들이 너무 멀리 있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한국의 동물원보다 오히려 가깝게 동물을 볼 수 있었다.
중간중간 나무 위나 건물 지붕 위를 보면 커다란 공작새가 날개를 펼치고 앉아있기도 했다.
동물들을 직접 만져볼 수 있는 페팅 하는 곳에는 꼭 손을 씻는 공간들이 잘 마련되어 있어,
굳이 화장실을 들어가 손을 씻지 않아도 돼서 좋았다.
샌디에이고의 화창한 날씨에 동물원을 거니는 일은 더없이 행복했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에 머리칼을 날리며,
덥지도 춥지도 않은 딱 적당한 날씨에, 눈부신 햇살을 가릴 선글라스를 끼고,
아이들 손을 잡은 채 나무 그늘 사이를 걸었다.
그러고 보니 난 결혼하기 전에도 동물원을 참 좋아했었다.
마음이 심란했던 어느 날, 차를 몰고 서울대공원에 가 혼자 동물원을 돌아다녔던 기억이 난다.
한참을 그렇게 걷고 나니, 복잡했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었다.
나중에 내가 이곳에 살게 된다면 종종 동물원에 와 걷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다음날, 우린 샌디에이고 사파리로 향했다.
40여분 정도 사막을 향해 달리면 어마어마한 규모의 사파리가 나타난다.
동물원의 아기자기함과는 다른 넓은 자연에서 자유롭게 살고 있는 동물들을 만날 수 있다.
동물원과의 거리가 그렇게 먼 것도 아닌데 사파리는 굉장히 뜨겁고 더울 거라는 말을 들었던지라,
미리 얼린 물을 충분히 챙겨서 출발했다.
아니나 다를까, 사막의 불타는 태양이 우리를 다 태워버릴 기세로 미친 듯이 쏘아대고 있었다.
잠깐을 걷기만 해도 주룩 주룩 땀이 쏟아지고, 얼음을 입에 물지 않고는 돌아다니기가 힘들 정도였다.
아프리카 트램을 타고 사파리 투어를 시작했다.
어마어마한 규모-
이게 사파리라고? 그냥 아프리카 초원인 것 같다.
너무 광활해서, 동물이 보이지 않을 지경이다.
샌디에이고 사파리의 최대 단점은 너무 커서 동물이 먼지같이 보인다는 점이다.
한편으론 이런 사파리라면 동물들도 우리에 갇힌 느낌 따위는 받지 않겠구나....
자유롭게 뛰노는 스트레스 없는 동물들이 살고 있을 것 같았다.
사이즈가 얼마나 큰지, 5시간이 지났지만 아직 사파리의 절반도 보질 못했다.
너무 불타는 날씨 덕에 우린 더 이상 보기를 포기하고, 녹초가 되어 나오고 말았다.
하루 종일 걷느라 피곤해진 다리를 풀어줄 겸,
호텔로 돌아와 풀장으로 향했다.
해가지고 쌀쌀해진 날씨에 차가운 바람이 쌩하니 불고 있었지만,
따뜻하게 데위 진 히티드 풀에 풍덩 뛰어들었다.
반짝이는 별이 콕콕 박힌 까만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물 위에 누워있자니 행복한 마음이 몽글몽글 올라와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첨벙이며 물을 뿌려대는 활짝 웃는 아이들의 얼굴을 보니,
그 어느 때보다 건강하고 행복해 보인다.
여행을 오길 정말 잘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