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디에이고 레고랜드에서의 3박 4일
디즈니랜드에서의 추억을 뒤로하고, 칼즈배드를 향해 차를 몰았다.
오늘은 레고랜드 호텔에 체크인하는 날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 달간의 미국 여행 중, 아니 우리가 그간 묵어본 모든 호텔을 통틀어, 아이들이 가장 좋아했던 곳이 바로 레고 호텔이었다. 도쿄 여행을 할 때 디즈니 호텔에 묵은 적이 있는데, 그때보다도 더 좋아했으니 아이들에게 레고 호텔 이상은 없는 것 같다.
우린 이곳에서 3박을 묵었다.
아이들과 함께 오는 가족호텔이다 보니, 이곳 역시 엄마 아빠를 위한 킹 베드 한 개와 아이들을 위한 이 층 침대가 각각 분리된 공간에 놓여있다. 이층 침대 밑의 서랍을 열어보니 풀아웃 베드가 하나 더 숨어있다.
아이들 방 침대 옆엔 보물 상자가 하나 놓여 있는데, 이 속에 매일 새로운 선물을 넣어주고 아이들이 암호를 풀어 열면 그 선물을 가질 수 있다.
호텔 수영장에선 매일 밤 영화를 틀어주고, 핫 코코와 커피를 나눠준다.
저녁을 먹고 나면 선선해진 풀장으로 내려가 타월을 뒤집어쓰고 풀 베드에 누워 영화를 보곤 했다.
폭염 속 LA를 벗어나 샌디에이고로 오니, 한결 날이 시원해졌다.
한낮의 태양은 여전히 뜨겁지만, 해가 지고 저녁이 되면 밤바람이 차서 수영장에 들어가기가 꺼려질 정도다.
여행을 시작하고 지금까지 추웠다 더웠다를 수없이 반복하며 옷차림도 계속 달라지고 있다.
너무 더위를 먹었던 탓인가, 그래도 시원한 게 훨씬 좋은 것 같다.
레고 호텔에 묵는 동안 우리는 모든 식사를 호텔식으로 포함시켰다.
근처에 나가서 먹을만한 식당이 없어 보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3일간 완벽히 리조트 안에서만 지낼 생각에서였다. 언제든 놀다 지치면 방에 와서 쉴 수 있고, 굳이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호텔에서 모든 식사를 해결하니 더할 나위 없이 편했다.
식사가 썩 맛있는 건 아니었지만,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메뉴들로 잘 구성되어 있었고, 야외 테라스석도 있어 따뜻한 아침햇살을 맞으며 먹는 조식 타임이 참 좋았다.
호텔 로비에선 매일 레고 만들기 대회를 하며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누어 줬고,
엘리베이터를 타면 디스코볼이 돌아가며 YMCA 노래가 나오는 클럽으로 변신했다.
레고 호텔도 디즈니랜드 호텔과 마찬가지로, 레고랜드 오픈 전 투숙객에서 30분 일찍 입장할 수 있는 혜택을 준다. 대부분 초등학생 위주의 놀이기구들이라, 디즈니랜드처럼 사람이 많지는 않아 굳이 일찍 입장할 필요는 없었다. 대부분의 어트랙션을 별로 기다리지 않고 탈 수 있었고, 맘에 드는 어트랙션은 그리 오래 기다리지 않고 몇 번이고 더 탈 수 있었다.
레고랜드 안에는 모든 것들이 레고로 만들어져 있었는데, 그 디테일함에 깜짝 놀란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어떻게 저런 걸 레고로 만들지? 싶은 것들이 참 많았다.
레고랜드 안에는 놀이동산 외에 수족관과 워터파크도 있다.
특히 워터파크가 잘 되어 있는데, LA의 무더위를 벗어나 갑작스러운 기온 변화로 남편과 나는 감기 초기증세를 겪고 있어 아이들만 물놀이를 즐겼다.
중간중간 수영장 물이 얼음물 같다는 말을 해주곤 둘이서 신나게 놀이기구들을 타고 돌아다녔다.
해가 쨍쨍한 무더운 날 여기서 놀면 참 좋을 것 같다.
이제 여행의 삼분의 이 지점. 남은 날이 지나간 날보다 적다.
샌디에이고를 끝으로 여행이 마무리될 거라 생각하니, 벌써부터 가슴이 쿵- 내려앉는다.
여행은 늘 그렇다.
여행을 즐기는 그 순간보다 준비하는 기간이 더 설레고 행복하다.
하나하나 필요한 짐들을 챙기며, 갈 곳들을 노트에 정리해두며 얼마나 가슴이 두근거렸던가?
막상 여행을 하는 중에는 정신없이 지나가는 시간 덕에 행복을 실감하지도 못한 채 지내다가,
여행이 끝나고 나면 비로소 얼마나 행복했는지, 얼마나 아쉬운지 실감하게 된다.
아이들은 이번 여행을 통해 부쩍 성장한 것 같다.
스스로 필요한 것들을 챙기고, 아침엔 실랑이하지 않아도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나갈 준비를 한다.
우리가 가볼 곳을 하루 전날 미리 검색해 보기도 하고,
어디를 가면 좋겠다고 제안을 하기도 한다.
누나는 동생을 끔찍이도 챙기고, 동생은 누나를 한시라도 놓칠세라 부지런히 따라다닌다.
우리는 매일 밤 별을 보며 행복했던 하루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아침을 먹으며 더 행복할 오늘의 플랜을 구상한다.
바쁘게 지내던 일상 속에선 할 수 없었던 많은 것들을 우린 지금 함께 하고 있다.
레고 호텔에서의 세밤을 지내고, 샌디에고 투어를 위해 남쪽으로 차를 몰았다.
그러다 발견한 멋진 공원-
우린 차를 세우고, 차안에 있던 축구공을 들고가 잔디밭을 원없이 뛰어놀았다.
언제 어디서든 우리가 원하는 걸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
공하나 만으로로 아이들은 한참을 신나게 놀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