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에서 잠시 쉬어가다.
라스베가스를 떠나는 날 아침,
우리가 머물던 미라지 호텔의 시크릿 가든을 들렀다.
예쁜 돌고래가 놀고 있는 큰 수영장과, 조금은 답답해 보이는 좁은 우리 안에 갇힌 백호를 구경하는데,
뜨거운 사막의 태양이 우리를 태워버릴 기세로 이글 대고 있었다.
라스베가스를 떠나기 전 도시를 좀 더 둘러보고 싶었지만, 불타는 사막 날씨에 벌써 지쳐버리고 말았다.
한낮의 베가스는 야외 활동이 쉽지 않다.
다음을 기약하며, LA를 향해 차를 몰았다.
LA까지의 이동거리는 차로 4시간가량 걸린다.
캐년을 다니며 하루에 7시간씩 차를 탔더니, 이제 4시간은 가뿐하다.
그간 긴 이동이 많아 차를 타고 달리는 시간이 많았던지라, LA에서는 한 곳에 머물면서 한 템포 쉬어갈 예정이다.
차 타고 꼼짝없이 앉아있느라 힘들었던 아이들을 위해, 맛있는 한국 음식도 먹고, 유니버설 스튜디오도 가고,
나머지 시간들은 여유 있게 박물관과 미술관을 다닐 예정이다.
특히, 한국보다 더 맛있는 곳이 LA 한식당 이란 말에 잔뜩 기대 중이다.
미리 지인을 통해 몇 곳의 맛집 리스트도 받아두었고,
한식당 접근이 용이한 한인 타운의 호텔로 숙소도 잡아두었다.
어차피 낮동안은 관광 포인트를 돌아다니거나 놀이동산에 있을 거라, 잠만 자면 되는 호텔이니,
식사하기 편한 곳이 좋을 법도 했다.
한참을 달리다 보니, 70년대 시골에서나 보일 법한 예스러운 한글 간판들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다.
구두방도 있고, 병원도 있다.
한인 타운이라기 보단, 그저 한국 동네가 자리 잡고 있었다.
호텔에 짐을 내려놓자마자 숯불 집으로 달려가 갈비와 된장찌개를 게눈 감추듯 먹어치우고,
한국 마트에 가서 간식거리도 잔뜩 장을 봤다.
다음 날 갈 유니버설 스튜디오의 티켓도 미리 출력해 두었다.
짧은 시간 많은 것을 봐야 하는 여행객인 우리에겐 시간이 곧 돈이다.
놀이 기구 하나를 타기 위해 몇 시간씩 줄을 서지 않고 바로바로 탈 수 있는 프런트 오브 더 라인 티켓을 끊었다.
비싸기 했지만, 충분히 그 값어치는 했다.
오전 11시쯤 들어가, 오후 5시가 되기 전에 모든 라이드를 끝냈다... 라이드를 타기 위한 줄은 보통 15분이면 충분했다.
아이들은 유니버설 스튜디오에 열광했다.
딸은 해리포터 시리즈를 몇 번이나 읽어댄 해리포터의 광팬으로, 애초부터 이곳에 가서 무얼 쇼핑할 건지도 정해두고 있었다.
나는 라이드보다는 워터 월드쇼나 스튜디오 투어 같은 볼거리가 더 좋았고,
뜨거운 태양을 피해 파라솔 아래서 먹는 시원한 생맥주 한잔과 소시지가 더 좋았다.
다음 날, 우린 할리우드로 나갔다.
주차할 공간을 찾아 한참을 헤맨끝에 간신히 비어있는 한자리를 찾아 동전을 잔뜩 넣었다.
길거리는 몹시 더럽고 냄새났으며, 날은 너무 뜨겁고, 다리는 아팠다.
이런 지저분한 거리를 걸으며 내 귀한 여행의 시간을 쓰고 있다니....
타는 속을 달래러 스타벅스에 들어가 아이스커피 한잔을 사들고, 얼음을 와그작 와그작 씹으며 간신히 할리우드 스타들의 손도장이 찍힌 바닥까지 걸었다.
큰 실망을 앉고, 향한 다음 목적지는 그리피스 천문대.
참 이쁘다.
파란 하늘은 더할 나위 없이 맑았고, 내려다 보이는 풍경은 아름다웠다.
주말이라 근처 사는 동네 주민들까지 다들 나와서인지 주차장은 만원이었지만,
전망대에 올라가 내려다본 LA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해가 진 시간에 별을 보러 올라오면 더 좋겠지?
다음은, 게티센터
오늘 하루를 다 이곳에 투자할걸... 후회가 되는 순간이었다.
게티센터는 미국의 석유재벌 J 폴 게티의 개인 소장품과 기금으로 조성된 문화 단지로, 아름 다운 건물로 지어진 박물관과 정원, 전망대까지 모든 곳이 사랑스러운 장소였다.
주말이면 콘서트가 열리기도 하는데, 마침 토요일이었던지라 콘서트를 보러 몰려드는 인파가 북적였다.
잔디밭에는 얇은 피크닉 매트를 깔고 앉아 맨발로 뛰어노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젊은 부부들이 있었고,
다정하게 셀카를 찍는 연인들도 있었다.
문화공간 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볼 수 없는 시골 외딴섬 괌에 사는 우리에게,
이런 멋진 시설을 아무 때나 누릴 수 있는 이곳 사람들이 너무나 부러웠다.
주말 저녁 가볍게 나와 음악을 듣고, 예술 작품을 감상하고, 그림 같은 정원에서 뛰어놀고 책을 읽으며,
해가지는 모습을 바라보면 얼마나 행복할까?
해가 지고 별이 뜰 때까지 우린 게티센터에서 시간을 보냈다.
여행의 삼분의 일이 지나갔다.
피곤한 일정에도 지치지 않고 잘 따라와 주는 아이들이 참 기특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눈만 마주치면 툭탁 거리는 우리 부부도 웬일인지 여행 내내 말다툼 한번 안 하고 잘 지내는 걸 보면, 우린 여행 체질인가 싶다.
아직 남은 일정이 더 길지만, 하루하루 지나갈수록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건 피할 길이 없다.
사진기 속 차곡차곡 쌓여가는 우리의 추억들을 보며
매 순간을 후회 없이 즐기리라 다시 한번 다짐하며 행복한 꿈을 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