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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베가스를 거쳐 브라이스 캐년으로

라스베가스에서 앤털롭 캐년까지 하루에 7시간을 달린 날.

by 별빛

이번 여행 중 가장 기대하고 있는 곳.

바로 캐년이다.

죽기 전 꼭 가봐야 할 리스트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그랜드캐년을 포함하여, 2016년 당시 핫하게 뜨고 있던 앤털롭 캐년과 브라이스 캐년을 일정에 넣었다.

더 많은 곳들을 보고 싶었지만, 운전을 해야 하는 거리가 만만치 않아 고심 끝에 고른 세 곳이다.

우린 캐년을 가기 위해 샌프란 공항에서 라스베가스로 비행기를 타고 날아왔다.

짧은 거리의 국내선이지만, 짐이 많아 쉽지 않은 이동이었다.

그냥 오래 걸려도 차로 갈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 많은 짐을 체크인해서 부치고, 다시 찾는 과정은 생각보다 훨씬 힘들었다.

짐이 많은 여행객이라면 항공 이동은 되도록 피하는 편이 좋다.


라스베가스에 도착한 첫 느낌은

"턱!"

숨이 막힌다.

건조한 공기덕에 숨을 쉬기가 힘들고 입술이 바짝바짝 타들어간다.

고작 하루를 있었을 뿐인데, 입 옆의 피부가 허옇게 일어나며 각질이 올라온다.

손톱 옆의 살들은 쩍쩍 갈라지며 피가 나기까지 한다.

너무 습해 일 년 365일 제습기를 돌려야 하는 섬나라에 살던 나에게 극강의 건조함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마치 온 얼굴이 쪼그라드는 느낌이랄까?!


라스베가스의 호텔들은 카지노 운영을 주목적으로 하는 곳들이라 가격에 비해 시설이 매우 우수하다.

우리가 묵은 베네시안 호텔 역시 기대 이상이었다.



라스베가스의 베네시안 호텔




실내라고는 믿기지 않는 어마어마한 규모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이탈리아 베네치아를 그대로 재현해 놓은 곳.

딸은 곤돌라를 타고 곤돌리에의 노래를 들으며 너무 행복해했다.

하룻밤 캐년을 가기 전 잠깐 쉬기 위해 들리기엔 너무나 아까운 곳이었다. 다음엔 조금 더 시간을 넉넉히 잡아 호텔과 도시를 찬찬히 둘러보리라!


하늘까지 완벽 재현해 놓은 베네시안 호텔에서 곤돌라를 타면서.


밤새 놀고 싶은 마음은 가득했지만, 내일 아침 일찍 브라이스 캐년을 거쳐 앤털롭 캐년까지 달려야 하는 힘든 코스라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우린 본격적인 로드트립에 돌입했다.

오늘은 차량으로 이동해야 하는 거리가 우리의 일정 중 가장 긴 구간이다.

구글맵 기준으로 총 7시간 정도를 달려야 한다.

장거리 자동차 여행을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아이들이라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잘 참아줄 수 있겠지?


베네시안 호텔에서 브라이스 캐년까지 4시간

그리고 브라이스 캐년에서 앤털롭 캐년까지가 3시간이다.

중간에 식사도 하고, 잠깐씩 쉬어가기도 해야 하니 아침 일찍 출발해야 하는데,

렌트를 하고 짐을 챙기고 하다 보니 어느새 예정했던 출발시간을 훨씬 넘기고 말았다.


드디어 긴 드라이브가 시작됐다.

다행히 캐년으로 가는 길은 매우 한적했다. 아니, 차가 너무 없어 오히려 무서웠다.

그럴 일이야 없겠지만 혹시 차가 고장이라도 나면 어디서 도움을 청하나 싶을 만큼 다니는 차량이 없었다. 중간중간 핸드폰이 터지지 않는 곳들도 있어 겁 많은 나는 살짝 긴장하기도 했었다.




돌산을 뚫어 만들어진 도로




아이들이 혹시라도 힘들어할까 봐 오늘도 아이스박스로 미니 냉장고를 만들어 간식과 음료수를 잔뜩 챙기고,

따끈한 피자도 한판 실어두었다.

중간중간 쉴만한 곳이 보이면 내려서 가볍게 산책도 했다.

4시간이 넘는 긴 거리를 차로 달리며, 미국 땅이 정말 크긴 크구나- 실감할 수 있었다. 달리고 달려도 끝이 없는 길...


끝없이 이어진 길




그렇게 한참을 달려 드디어 도착한 브라이스 캐년



눈 앞에 펼쳐진 장관


와아-

멋지다!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다.


눈앞에 펼쳐진 장관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멋지다!

사진에서 보았던 바로 그 모습이 눈앞에 펼쳐져 있다니, 감격스럽다.

자연의 위대함 앞에 겸손해지는 기분이다.

조금 더 가까이서 보고 싶은 욕심에 위험천만한 곳까지 가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보기만 해도 오금이 저린다.

미리 들었던 대로 캐년에는 대부분 안전바가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7살 아들이 혹시라도 장난이라도 칠까 잔뜩 신경을 곤두세우고 손을 꼭 잡고 걸었다. 한걸음만 더 가면 끝도 보이지 않는 절벽 속으로 빠져들 것만 같아 가슴이 두근거렸다.

멋진 사진 따위는 필요 없이 오로지 안전한 곳에서만 사진을 찍었다.




브라이스 캐년




아이를 낳고 난 이후 나는 굉장한 겁보가 되었는데 한때 승무원이 되고 싶었을 만큼 비행기 타는 걸 좋아하던 나는 이제 비행기 공포증으로 늘 불안해,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비행기를 탄다.

그 잘 타던 놀이기구도 무서워서 못 타고, 캐년 같은 낭떠러지나 절벽도 가까이 가질 못한다.

사실 이번 여행에 남편은 홀스슈 밴드를 무척 가고 싶어 했는데, 아이를 데리고 가기에는 너무 위험해 보인다는 이유로 내가 강력히 반대했다.

오늘도 여지없이 나의 위험 감지 레이다는 경고등을 켜고 작동 중이고, 아이들이 움직이는 한 발짝 한 발짝마다 가슴을 조이며 감시해야 했다.



IMG_9072.JPG 국립공원 입구마다 기념샷을 남겼다.


멋진 브라이스 캐년을 감상하며 좀 더 시간을 보내고 싶었지만, 앤털롭 캐년까지 해가지기 전에 가려면 서둘러야 했다.

한적하고 단순한 도로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잘 모르는 길을 밤에 가는 건 불안한 일이니까...



또다시 시작된 길고 긴 드라이빙




한참을 달리던 중 발견한 멋진 곳. 잠든 아이들을 깨우지 않고 나 혼자 조용히 내려 사진을 몇 장 찍었다.




아이들은 피곤했는지 잠이 들었다.

점심은 브라이스 캐년 근처의 이름 모를 햄버거 가게에서 먹었는데, 역대급 맛없는 집이었다.

감자튀김은 물컹거렸고 햄버거의 고기는 바짝 말라있었다. 제대로 먹지 않고 내리 차만 타고 달리니 금세 배도 고파져 왔다.

아직 앤털롭 캐년까지 가려면 한참 남았는데 조금씩 하늘이 붉게 물들더니 급기야 온 사방이 까맣게 변해버렸다. 사막의 밤은 너무 급작스럽게 찾아왔다.

칠흑 같은 어둠.

정말 딱 맞는 말이다.

하늘의 별빛 외에, 다른 일체의 불빛이 없는 시골길.

가로등도 없고 앞뒤로 다른 차도 없이 깜깜한 길에 달랑 우리 차만 달리는 상황.

길이 잘 보이질 않아 상향 등을 켜봤지만 큰 도움이 되진 않았다.

밤눈이 어두운 남편을 조수석에 앉히고 내가 운전대를 잡았다.

하루 종일 운전한 피곤한 남편이 못 미더운 것도 있었다.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온통 사방은 깜깜하고, 오로지 하늘의 별빛만 무수히 비추고 있다.

혹시 도랑에 빠지는 건 아닌가 걱정하며, 보이지도 않는 길을 감으로만 운전하고 있었다.

이 길이 정말 맞는 길이겠지?

공포영화에서처럼 구글맵이 가르쳐준 길 끝이 낭떠러지면 어쩌나?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며 깜깜절벽 밤길을 달리고 달려 드디어 저 멀리 불빛이 나타나며 차가 한두 대 보이기 사작했다.

휴- 살았다

안도의 한숨을 쉬며 불빛을 향해 달리고 달렸다.


예약해둔 숙소에 도착한 시각은 9시 무렵.

날이 저물고 길이 안 보여 속도를 줄이다 보니 예정보다 한 시간은 더 걸린 것 같았다.

어쨌든 안전하게 도착했으니 다행이다.

배가 고파 어디 고를 것도 없이, 제일 먼저 눈에 뜨인 근처 데니스에서 저녁을 먹고, 내일의 투어를 위해 잠자리에 들었다.






앤털롭 캐년 가는 날


한창 앤털롭 캐년의 사진들이 sns에 핫하게 뜨던 시절. 그 한 장의 사진을 보고 망설임도 없이 일정에 넣은 곳이다.

앤털롭 캐년은 투어를 신청해 돌아보게 되는데, 하루 중 오전 11시의 한 타임만이 그 멋진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빛이 들어오는 시간이라고 했다.

그 시간을 예약하는 것도 경쟁이 치열해서, 여행을 계획한 초기부터 미리 예약해 두었더랬다.



예약해놓은 투어 회사에 도착해 판매하는 기념품들을 둘러보며 우리 순서를 기다렸다.

-이 곳에서 플루트를 하는 딸아이가 고른 피리모양의 악기를 하나 사주었는데, 나중에 네이티브 원주민들이 천막을 치고 물건을 팔던 길가의 노점상에서 삼분의 일 가격으로 팔고 있었다.-

트럭처럼 생긴 투어버스를 타고 앤털롭 캐년으로 이동하는 길은 롤러코스터를 탄 것 같았다. 비포장 도로인 길이 무척이나 험하기도 했지만, 가이드였던 나이 든 여자분이 어찌나 터프하게 운전을 하시는지 엉덩이가 남아나질 않았다.

이러다 이차 뒤집히는 거 아냐?

절로 걱정이 되는 순간이었다.


뒤집어 질듯 난폭하게 달리던 투어버스




그렇게 달려서 도착한 앤털롭 캐년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앤털롭 캐년




사람이 무척이나 많았다.

여름 성수기, 그것도 가장 인기 많은 피크타임이어서였을까?

캐년 안에 들어간 사람들이 캐년을 꽉 채워 일체의 빈 공간 없이 모두가 한 발씩 동시에 이동하는 식이었다.

모래 먼지는 말도 못 했고, 너무 사람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어 사진을 찍으면 무조건 단체사진이 되었다.

키가 작은 아이들은 모래먼지에 더 쉽게 노출되는 상황이라, 아이들을 데리고 이곳에 온걸 두고두고 후회했다.


10살 딸아이가 내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들. 그냥 막찍어도 멋지다.



그럼에도 불고하고, 앤털롭 캐년은 멋졌다.

어디서 셔터를 눌러대도 그냥 다 작품이었다.

가이드가 중간중간 포인트를 알려주면 다들 줄을 서서 한 명씩 셔터를 눌러대며 사진을 찍는 시스템.

사실 사람이 너무 많아 가이드의 설명도 잘 듣기 힘들었다. 그 좁은 공간 안에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있는 것인지....

아무리 멋진 경치라도 이런 식으로 보고 싶지는 않았는데.... 아쉬움이 남았다.



빛의 각도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앤털롭 캐년의 모습. 내 카메라에 담긴 사진들.



정신없던 투어를 마치고,

근처 타이 식당에서 만족스러운 점심을 먹었다. 매콤한 음식이 들어가니 살 것 같았다.


맛있었던 타이식당을 기억하고 싶어 사진을 남겼다.




서둘러 그랜드캐년을 향해 출발했다.

오늘 달려가야 하는 길은 대략 세 시간 정도.

어제의 악몽은 반복하고 싶지 않아, 점심을 먹자마자 서둘러 출발했다.

오늘은 목적지까지 쉬지 않고 달릴 예정이다.

어두워지기 전에 도착해야 해!


오늘도 텅 빈 사막을 달리고 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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