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괌을 벗어나 샌프란시스코로!

아이들과 함께 한달간의 미국 여행을 시작하다.

by 별빛

6년을 모은 마일리지가 이젠 충분해졌다.

사실, 진작부터 네 식구의 미국 왕복 티켓을 끊을 마일리지는 완성되어 있었지만,

아직 어린 둘째가 늘 맘에 걸려 미루고 있던 여행이었다.

그랜드 캐년은 낭떠러지에 안전바도 없다는데, 어린아이를 데리고 괜찮을까?

조그만 섬나라 사느라 어디 차를 타고 한 시간씩도 가본 적이 없는 애들이 과연 6-7시간씩 차를 타고 얌전히 앉아 있을 수 있을까?

한국, 일본 말고는 다녀본 적도 없는데 애들 데리고 긴 장거리 비행도 걱정이야...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그렇게 여행은 1년, 2년 미뤄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12월 밤,

평소와 다름없이 유나이티드 항공 사이트에 들어가 적립된 마일리지를 확인하던 나는,

귀신에 홀린 듯 충동적으로 미국행 왕복 항공권을 예매했다.

티켓 변경이나 취소에도 벌금을 물리는 유나이티드라, 이제 진짜 가야 하는 거다.

7살이면 둘째도 제법 잘 따라올 수 있을 것 같았다.

더 이상 기다리다가는 평생 떠날 수 없을 것만 같단 생각이 들었고, 책상 위 달력을 뒤적이며 아이들 방학 시작에 맞추어 미서부 가능한 마일리지 티켓을 검색해, 샌프란시스코 인- 샌디에이고 아웃으로 항공권부터 덜컥 잡아버렸다.


이제 항공 스케줄에 맞춰 우리의 여행 루트를 정할 시간이다.

미국 지도를 펼치고 내가 가고 싶은 곳들을 표시했다.

꼭 가야 할 곳은 그랜드캐년, 앤털롭캐년, 요세미티, 디즈니랜드, 유니버설 스튜디오.

10살, 7살 남매의 기준으로 좋아할 만한 놀이동산과 우리 부부가 가고 싶었던 캐년과 산을 넣었다.

놀이동산을 들릴 날짜는 되도록이면 주말을 피해 구체적으로 일정을 짜기 시작했다.

이동거리가 만만치 않아서 차로만 갈 것인지, 항공을 넣을 것인지 여행 후기들을 찾아보며 폭풍 검색을 시작했고, 최종적으로 샌프란 시스코 - 라스베이거스 구간만 항공 이동을 포함시켜 큰 일정을 확정했다.


우리의 여행 루트는,

샌프란 시스코-요세미티- 라스베이거스 - 캐년 - LA - 샌디에이고 이다.

이렇게 잡아두고 세부 일정을 더하며 호텔을 예약하기 시작했다.

요세미티나 그랜드캐년의 인기숙소는 6개월 전 예약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방이 마감된 곳들이 있었다.

사계절 바다와 야자수만 보며 자란 아이들에게, 산과 캐년의 웅장함을 가까이서 보여주고 싶어 검색에 검색을 거듭한 끝에 요세미티 국립공원 내의 숙소와, 그랜드캐년 안의 숙소를 잡을 수 있었고, 나머지 곳들은 호텔 예약 사이트의 후기와 가격, 위치 등을 살펴 내 마음에 드는 곳들을 골라 한 달에 걸친 모든 숙소 예약을 다 끝냈다.


아직 여행까지는 5개월이 넘게 남았다.

디데이를 알려주는 앱을 핸드폰에 깔고, 하루하루 날짜를 세어가며 여행만 기다렸다.

여행 중 아프거나 체력이 떨어지면 안 된다며, 헬스장을 등록해 운동도 시작하고, 가족 모두 홍삼과 비타민을 챙겨 먹이며 컨디션을 최고치로 끌어올렸다.

여행 출발 2주 전, 드디어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제일 큰 여행가방 두 개를 꺼내, 하나에는 남편과 나의 옷을 넣고, 다른 하나에는 아이들 옷을 넣었다.

작은 가방을 꺼내 매일 꺼내 써야 할 화장품과 세면도구 등 잡다한 용품을 넣고,

중간 가방에는 컵밥과 라면 등 간식과 먹거리를 넣었다.

기내에 들고탈 가방에는 카메라와 노트북, 아이패드와 충전기, 책 등을 챙겼다.


여기서 하나,

저 위의 짐 싸기는 잘못된 예이다.

저 여행을 시작으로 매년 한 달간의 장기 여행을 이어오며 나름 짐 싸기의 달인이 되었는데,

여행가방을 챙길 때는, 사람별로 챙기지 말고 일정에 맞춰 날짜별로 챙겨야 한다.

그래야 매번 모든 가방을 차에서 내려 숙소로 옮기지 않아도 된다.

매일 사용해야 하는 세면도구나 화장품이 든 가방을 작은 걸로 따로 하나 만들어두고,

나머지 가방은 네 식구의 옷과 속옷, 양말들을 모두 한 가방에 챙겨 일주일씩, 혹은 열흘씩 짐을 싸면

그 순서에 맞춰 필요한 가방만 들고 올라가고 나머지 가방들은 그냥 차안 트렁크에 보관하면 된다.

지역에 따라 날씨도 크게 차이가 나기 때문에,

(샌프란시스코는 매우 쌀쌀해서 바바리를 걸쳐야 했고, LA는 폭염으로 얼음을 물고 다녀야 할 정도였다)

기왕이면 미리 날씨를 체크하고 그에 맞게 옷을 구성해 넣으면 좋다.


그렇게 이주에 걸쳐 나름 완벽한 짐을 챙기고,

산더미처럼 쌓인 짐이 과연 차 안에 다 들어갈 수 있을지를 걱정하며 6월 7일 새벽, 우린 공항으로 향했다.

마일리지가 많았던지라 캘리포니아로 들어가는 편은 비즈니스를 예약할 수 있었고, 아주 편히 라운지를 즐기며 널찍한 비즈니스석에 앉아 일본을 거쳐 샌프란시스코로 날아갔다.

괌에서 미국 본토로 갈 때는, 직항이 없어 하와이나 일본을 경유하게 되는데,

마일리지 항공권을 끊을 당시 하와이를 경유하는 노선은 남은 좌석이 없어서, 일본을 거쳐 가게 되었는데,

일본 공항의 라운지 시설이 하와이보다 훨씬 좋았을뿐더러, 일본 공항 면세점에서 맛있는 일본 과자와 주전부리들을 살 수 있어서 여행 내내 간식 걱정 없이 잘 지낼 수 있었다.


비즈니스석에선 정말 끊임없이 먹을걸 줬다.

배가 꺼질틈도 없이 계속 먹기만 하다 보니, 드디어 저 멀리 샌프란이 보였다.

다행히 편한 비즈니스석 덕분인지 아이들은 게임을 하거나 영화를 보며 '엄마' 소리 한 번을 안 하고 그 긴 장거리 비행을 마쳤다.



정말 끊임없이 먹느라 잠도 못잤다.



게이트를 나와 짐을 찾는데 두리번거리며 카트를 찾으니, 저쪽에 묶여 있다.

미국은 카트도 돈을 내고 써야 한다.

신용카드를 넣어 결제를 하니 덜컥하고 카트 바퀴의 락이 풀리고 카트가 나온다.

잠깐 공항을 빠져나가는데만 쓸건대 왠지 억울한 생각이 들었지만, 짐이 너무 많은 우리로선 방법이 없었다.

아이들이 좀 더 크면 아이들과 짐을 나눠 들어 카트를 안 써도 될 날이 오겠지....

억울한 맘을 뒤로하고 공항을 빠져나오니 택시들이 쭉 서있다.

우린 짐이 많아 택시를 어떻게 타야하나 걱정하고 있었는데, 다행히 큰 대형 택시들도 있었고, 순서에 맞춰 택시를 잡아타고 첫 숙소가 있는 피셔맨스 와프로 이동했다.



베이브릿지를 지나며


집에서 6월 7일 새벽에 나왔는데, 다시 6월 7일 아침이다.

왠지 하루를 선물받은 기분이 든다.

비행기에선 설렘에 거의 잠을 자지 못해 졸음이 조금씩 밀려왔으나, 일단 샌프란의 공기를 맛보겠다며 호텔에 짐만 두고 바로 내려왔다.

샌프란에선 렌트를 하지 않을 계획으로 비싼 호텔비를 감수하면서 숙소를 피셔맨스 와프로 잡았다.

베스트 웨스턴 플러스 투스칸.

3.5성급 호텔로 되어있지만, 하루에 $400에 육박하는 샌프란의 숙박비는 어마 무시했다.

다행히 호텔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좋았고,

마침 내 생일이 겹쳐 스위트룸으로 업그레이드를 해주고 와인까지 넣어주어 기분 좋게 일정을 시작하게 되었다.





호텔에서 얼마 걷지 않아 바다가 보이고, 갈매기들이 날고 있었다.

날씨는 무척이나 쌀쌀했는데, 사계절 더운 곳에서만 살던 우리는 여름인데 눈오는거 아니냐고 오바를 떨며 두꺼운 자켓을 여미며 모자를 뒤집어썼다.

길거리엔 해안가 답게 여기저기 던져니스 크랩을 파는 식당들이 있었고, 우린 그중 한 곳으로 들어가 괌에선 좀처럼 먹기 힘든 던져니스 크랩을 시켰다.

갑각류를 싫어하는 딸을 제외하고, 1인 1 크랩을 주문하니 아주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

크랩을 시키면 샐러드와 클램 차우더는 따라 나온다.



살이 꽉 들어차 있었던 던져니스 크랩




피곤하고 배부르니 급 피로가 몰려오기 시작한 우리는,

다시 호텔로 들어가 대충 샤워를 마치고 다 같이 약속이나 한 듯, 밤잠처럼 긴 낮잠을 잤다.

여전히 우리의 시계는 괌에 맞춰져 있었고, 눈을 떴을 때는 아직 해가 지진 않았지만 여전히 몽롱하고 머리가 띵했다.

간단히 저녁을 먹으로 미리 찾아두었던 보딘에가서 크램차우더와 그릴드 치즈를 먹고,

피어 39에 가서 바다사자를 구경하며 사진을 찍었다. 동물원이 아닌곳에서 바다사자를 본다는게 신기해서 열심히 셔터를 눌러댔는데, 나중에 샌디에고 라호야비치를 가니 샌프란의 바다사자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근처의 수비니어 샵들을 돌며 기념이 될만한 볼펜과 자석, 아이들이 친구들에게 나눠줄 선물들을 사서 호텔로 돌아왔다.

긴긴 하루를 마친 우리의 여행 첫날밤이 그렇게 저물어가고 있었다.




기념품가게에서 골라온 것들




다음날,

아침은 남편이 근처의 맥도널드에서 사 온 맥모닝으로 해결하고, 본격적으로 관광을 시작했다.

첫 코스는 크루즈.

금문교를 찍고 알카트래즈 섬도 보고 오는 코스였는데, 가뜩이나 추운 날씨에 어찌나 칼바람이 불던지

너무 추워서 얼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구름 한 점 없는 새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배 위에서 바라보는 새빨간 금문교는 마치 그림 같았다.

내가 정말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건가?

아직도 여행책자 속 사진을 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크루즈 배에서 오디오 가이드를 끼고 칼바람을 맞으며



크루즈를 마치고 잔뜩 멀미를 한 딸을 달래러 근처의 커피숍에서 음료수를 한잔씩 마신 뒤,

우린 샌프란시스코의 상징인 케이블카를 타고 유니언 스퀘어로 향했다.

파란 하늘은 더없이 청명했고, 케이블카의 열린 창으로 들어오는 바람은 코끝을 간지럽혔다.

하늘을 가리는 높은 건물들로 꽉 찬 거리. 유니언 스퀘어에 도착했다.

알록달록 개성 있는 사람들의 옷차림.

두꺼운 무스탕부터 반팔티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의 옷차림이 참 다양했는데,

샌프란에 하루 있어보니 그 옷차림이 이해됐다.

아침저녁으론 쌀쌀한 바닷바람이 불어 외투를 입어야 했지만, 한낮엔 해가 쨍하니 너무 따갑게 내리 쐬어 반팔을 입어도 괜찮을 날씨였다.



샌프란 시스코의 명물, 케이블카에 오르는 아이들.




메이시스 꼭대기층에 있는 치즈케이크 팩토리에서 점심을 먹기로 하고, 백화점을 둘러보며 올라갔다.

멋진 날씨를 즐길 수 있는 야외 테라스석은 이미 만석이었고, 우린 실내에 앉아야 했다.

다음 일정을 상의하며 느린 점심을 먹고,

여행책자에서 이쁜 사진을 보고 찜해두었던 롬바드 꽃길로 향했다.

마침 딱 맞춰 온 6월의 롬바드 꽃길은 수국이 만발해서 사진 속 보다 더 아름다운 모습을 뽐내고 있었다.

언덕길을 오르며 알록 달록 만개한 수국을 보니 힘든 줄도 몰랐다.




만개한 수국



중간중간 아이들 사진을 찍어주면 언덕 꼭대기에 도착. 이제 방향을 바꿔 우리 숙소가 있는 피셔맨스 와프를 향해 걸었다.

사시사철 습하고 더운 괌에서는 거리를 걷는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인데,

이렇게 멋진 날씨에, 상쾌한 바람을 맞으며 걷는 기분은 너무나 행복했다.

스타벅스에 들러 한껏 게으름을 피우며 느긋하게 커피도 마시고,

지나가다 맘에 드는 레스토랑에 계획 없이 들어가 저녁도 먹고,

그렇게 밤이 되니 낮과는 또다른 차가운 바람이 매섭게 불어댔다.

오돌오돌 떨며 호텔에 들어서자, 한쪽 벽에 활활 타고 있던 따뜻했던 벽난로.




따뜻했던 벽난로



꽁꽁 언 손과 발을 녹이며 따뜻한 차를 마시니 온몸이 노곤 노곤 기분이 좋았다.

나 지금 여행중이지- 나도 모르게 배시시 미소가 지어지며 행복을 온몸으로 만끽했다.

샌프란에서의 두 번째 밤. 아직 여행이 시작된지 고작 이틀째 인데, 벌써 이 여행이 끝나갈때가 되면 얼마나 아쉬울까 하는 걱정이 된다.


내일 우린 요세미티를 향해 떠난다.

차갑고도 따가웠던 샌프란의 공기.

그 공기가 오래도록 그리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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