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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슴푸레 Mar 27. 2024

착한 사람 하나하나 제리뽀

  마트 입구를 들락거릴 때마다 진열대에 놓인 젤리뽀가 눈에 띄었다. 옛날엔 제리뽀라고 불렀었는데 외래어 표기법에 맞게 제품명을 바꿨나 보다 생각했다. 투명 플라스틱 구멍 세 개에 쏙쏙쏙 들어 있던 세 가지 맛 제리뽀는 당시 100원이었다. 사과 맛, 포도 맛, 딸기 맛 중에서 사과 맛을 제일 좋아했다. 끙차. 힘을 줘서 뚜껑을 벗기면 과일 향이 났다. 밑으로 갈수록 좁아져 바닥이 꽃 모양인 제리뽀는 오른속으로 살짝 쥐고 누른 채 후릅 하면 입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목구멍으로 삼켜지지 않게 늘 조심하면서 아껴 가며 깨물어 먹었다. 1986년 버스 요금 60원. 제리뽀는 100원. 사 먹기는 쉽지 않았다. 버스비를 몇 번 모아야 먹을 수 있었다.


  제리뽀 세 개 중에 사과 맛을 빼서 호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친해지고 싶은 아이를 만나면 줄 생각이었다. 말수가 적어 나랑 친구 할래 그 말을 못 했다. 끝내 누구에게도 주지 못했고 제리뽀는 주머니 속에서 하도 만지작거려 뭉개져 조각버렸다. 갈가리 쪼개진 제리뽀였지만 호로록 입으로 들이마시면 단맛이 가득 퍼졌다. 과연 제리뽀였다.


  제리뽀를 다 먹어도 용기를 버리지 않았다. 꽃 모양 용기는 씻어서 소꿉장난을 할 때 썼다. 모래를 담아 뒤집으면 무너졌고 물기 있는 검은 흙을 담아 뒤집으면 미니 케이크가 만들어졌다. 깨진 벽돌이나 슬레이트판에 미니 케이크를 엎어 풀과 들꽃을 꽂아 장식했다. 구멍 세 개가 쏙쏙쏙 파여 있는 직사각 투명 플라스틱은 가스레인지라며 비 맞아 골목에 나뒹구는 우굴쭈굴한 나무 판때기를 분질러 구멍 위에 올렸다. 꽃 모양 용기는 케이크 틀도 됐다가 밥솥도 됐다가 냄비도 됐다. 햇빛을 등지고 쪼그려 앉아 소꿉을 놀고 있으뒷머리와 어깨와 등이 따뜻했다.


  그동안 착한 사람 하나하나 제리뽀를 까맣게 잊고 살았다. 그러나 그때의 시엠송은 모르는 새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었나 보다. 동네 마트에서 젤리뽀를 집어 계산하면서 속으로 그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엄마, 사과 맛이 제일 맛있다. 작은애가 말했다. 역시 넌 내 딸이구나! 엄마도 사과 맛 제일 좋아했었어. 와 정말? 응 저엉말.


  앉은자리에서 동난 젤리뽀를 오늘 또 한 봉지 사 왔다.


포장도 이름도 회사도 맛도 조금씩 바뀌었지만
착한 사람에게 주고 싶던 그 마음은 여전했다.  

#제리뽀#1980년대#과일맛푸딩#젤리뽀로이름이바뀌어도#추억은그대로#레트로#시엠송#유년#친구#그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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