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 냄새를 맡으며 자는 아이

by 어슴푸레

어릴 때의 나는 몸을 모로 웅크린 채 내복의 목 부분을 끌어 올려 코에 대고 흠흠 냄새를 맡아야만 잠이 왔다. 짙은 쌀 색깔의 내복엔 겉과 안에 공평하게 세로로 긴, 누빔 줄이 엿가락처럼 들어가 있었고 제법 두께가 있어 톡톡했다. 어른들은 그렇게 생긴 내복을 ‘에어메리’라고 불렀다. 땀내와 살내가 적당히 섞인 내복 냄새가 좋았다. 내복을 콧잔등 위에 걸치고 있으면 코에서부터 배까지 길쭉한 고깔 모양이 되었다. 들숨과 날숨이 가두어져 그 안은 따뜻했고 내복에선 엄마 냄새 비슷한 게 났다. 꽤 클 때까지 그 자세로 잠을 잤다. 엄마는 삼남매 중에 유독 나만 그렇게 잔다고 별나다고 했고, 목이 늘어난다고 소리를 빽 지르기도 했다. 몰래몰래 또 내복을 끌어 올리면 스르륵 오던 잠. 이불 밖은 추웠고 몹시 추운 밤엔 들뜬 벽지 틈으로 바람이 웅웅거렸다. 누운 맞은편으로 고동색 장롱이 놓여 있었고 장롱 중간에 네모난 거울이 붙어 있었다. 중간 장롱은 간이 화장대 역할을 했고, 밑으로는 서랍장이 일체형으로 들어가 있었다. 서랍 속에는 혹한을 날 쥐색, 미색의 에어머리가 뒤엉켜 있었다. 장롱을 보고 모로 누우면 조금 눈물이 났다.


팔삭둥이라는 말을 듣고 그 뜻을 알게 된 후로 나는 늘 뭔가에 빚진 기분이었다. 어려서부터 주눅이 들어 있었다. 극도로 소심했고 심하게 부끄러움을 탔다. 친척들이 다 모인 명절날, 노래 한번 불러 보라는 말이 그렇게 싫었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마지못해 부르는 노래가 ‘테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에, 정말 좋겠네.’였다. 흥이라곤 전혀 없이, 애교라곤 눈 씻고 찾아 볼 수 없이 숙제하듯 늘 똑같이 그 노래를 불렀다. 그렇게 재미없게 부르는 노래를 왜 만날 때마다 시키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태어나 거의 죽어 가는 애를 그 당시 흔하지도 않은, 인큐베이터라는 물건에 한 달이나 두고 지켜보기란 두 분 살림에 쉽지 않은 용단이었다고 했다. 마침 그 무렵이 구매탄에 집을 살 때였다고 했다. 어른들이 별 악의 없이 던지는 “네 아빠 덕에 네가 살았다.”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매번 불에 덴 듯 아팠다. 나는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집 한 채 잡아먹고 태어난 아이였다. 엄마와 영동시장을 갔다 화성역에서 29번 버스를 타고 성빈센트 병원 언덕길을 지날 때마다 ‘아, 저 병원.’ 했다. 단 한 번이라도 엄마나 아버지가 ‘널 사랑해서야. 부모로서 당연한 거야.’라고 다정하게 말해 주었다면 나는 그 돌덩이 같은 부채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까. 그랬다면 매사에 조금은 더 당당할 수 있었을까.


8년 전 두 돌이 채 되지 않은 딸애가 제 팔을 끌어다 손목 언저리에 코를 대고 자는 모습을 봤을 때 큰 충격을 받았다. ‘아, 저 모습은….’ 그 순간 내복 냄새를 맡으며 자던 내가 겹쳐 보였다. 나는 자는 아이의 등 뒤에 조용히 모로 누워, 꼬마 적 나와 엄마를 생각했다.


노란색 공단이 굵고 하얀 명주실로 시쳐져 있던, 꽤 두껍고 무거운 이불과 그 속에 숨은 듯 들어가 내복 냄새를 맡으며 자는 아이.


나는 조금 울었다. 그러고 금방 잠이 들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