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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아 Nov 06. 2024

뻔할 뻔했던 이야기




"아들, 엄마 있지.. 요즘 좀 이상해."

"왜?"

"별 거 아닌 일에도 맘이 너무 아프고, 아무것도 아닌 일에 눈물이 막 쏟아져. 엄마 가을 타나봐."

"응, 아냐. 엄마 그거, 갱년기라서 그래."

"우씨....너 갱년기가 뭔지는 알아?"

"노인네들의 사춘기."

".... ..... ....."

"정확하네. 그니까. 너 사춘기따위로 엄마한테 들이댈 생각 마. 너의 사춘기는 엄마의 갱년기를 이길 수 없으니까."

"아, 눼눼...알겠습니다."


아 놔... 아 자슥이...노...노인네라니.. 약 올리듯 깐족거리는 녀석에 슬슬 열받는 에미.


"근데, 엄마. 실은, 엄마가 F라서 그런거야. 엄마가 원래 감성이 좀 쩔잖아."

"왜, 아까는 갱년기라더니?"

"그 대답은 브런치 용이고. '갱년기 엄마와 사춘기 아들'. 좋~찮아?  엄마 그거 쓰려고 그랬던 거 아냐? 얼른 써."

"와...너 혹시.... 엄마 글감 줄라고 일부러 그렇게 대답한거야?"

어깨를 으쓱 하더니,

"라이킷 하나당 백원!"


뭐냐, 이 녀석... 내 머릿속에 들어와있나..

솔직히 고백컨데.  대화의 첫 운을 떼면서, 아이가 "엄마.갱년기라서 그래" 라고 대답을 하기를 은근 바란 거.. 사실이다. 상투적인 이야기이지만 사춘기 아들과 갱년기 엄마의 창과 방패같은 드립 배틀은 모두의 공감대 형성이 가능한, 비교적 안전한 글감이 될 터. 그러니, 일상을 글밭삼아 늘 하이에나처럼 어슬렁거리는 에미로서는 '상투적이어도 좋다. 그러나 거짓말을 할 순 없으니 전개에 맞는 답을 하여 글감을 내놓거라.' 하는 마음이었던 것. 들킨 듯 민망한 와중에 글감 제공자의 권리라며 '좋아요'의 갯수를 제 몫의 경제적 가치로 야무지게 환산까지 해놓았으니.. '어린 것이 여간 잔망스럽지 아니한가.'

진부하고 상투적인 뻔한 이야기를 허를 찌르는 앞선 수읽기로 뻔하지 않게 만들어준 발칙한 놈.


그래.. 초여름 같은 너의 사춘기와 늦가을 같은 엄마의 갱년기가 나란히 흐르고 있구나.

눈물을 흘리며 춤을 추는 잎으로 떨어져 기꺼이, 기쁘게 너의 거름이 되어줄게.

초여름이 지나고 너의 계절이 익어갈 때,

마침내 뻗어나갈 너르게 곧고 늠름한 가지와

무성해질 잎사귀의 짙푸른 녹음을 기대하며.

이윽고 너만의 향과 너만의 맛으로 맺을 열매를 온 맘으로 응원하며.  

그러니까 우리, 사춘기도 갱년기도 슬기롭게 ,우리답게, 잘 건너가 보자.  


잘 자라주고 있어서 고맙다.

사랑해 아들.  


 

사진출처: kor.pngtree.com  무료일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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