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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의 발견 14

소셜말고 통속소설

by 한아

취향의 발견


14

해나는 아이처럼 소리 내어 우는 윤경을 끌다시피 해서 데리고 나왔다. 남에게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하는 윤경이었다. 그런 그녀가 폐허처럼 형편없는 모습으로 무너져 내렸다. 해나는 이런 윤경의 모습을 아주 오래전에 본 적이 있었다. 윤경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였다. 차갑고 도도하기 이를 데 없어 ’얼음 공주‘라는 별명으로 불리웠던 윤경이 그렇게 온몸으로 버둥거리며 목청껏 우는 모습에 해나는 아버지를 잃은 친구의 지극한 상실감을 가늠할 수 있었다. 그때처럼 윤경은 자신을 놓아버렸다. 사람들의 힐끔거리는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던 윤경의 울음소리가 잦아들더니 신음으로 바뀌었다. 해나는 부드럽게 윤경을 다독였다.

-우리 너 무시한 적 없어.단 한 번도. 알면서 그래.

윤경이 비틀거리며 해나의 팔을 꽉 움켜쥐었다.

-지란이 성격 알잖아. 오를수록 더하는거.

-해나야..

윤경의 손에 힘이 풀리며 바닥으로 주저앉았다. 놀란 해나가 윤경을 부축하려 했지만 그녀는 바닥에 몸을 붙일 듯 웅크리고 온 몸을 벌벌 떨며 고통스러워했다.

-윤경아! 왜 그래? 응?

-병원...해나야, 나 병원에 좀.. 나 임신했어...

윤경이 주저앉은 바닥이 점점 피로 흥건해지고 있었다.




자신을 부르는 해나의 목소리가 아득해졌다. 땀으로 흥건해진 손에서 윤경은 예전의 감촉을 다시 느꼈다. 어린 시절 학교 앞. 연노랑색 병아리를 담은 박스 앞에 쭈그리고 앉은 윤경의 손바닥에 병아리 장수가 한 마리를 올려주었다. 손바닥에 닿은 병아리의 심장은 마치 먼 곳에서 누군가가 울리는 북소리같이 약하지만 분명하게 뛰고 있었다. 윤경은 그 작은 병아리를 데려와 깨끗한 상자에 넣고 낡은 손수건을 깔아주고, 작은 그릇에 물도 넣어주었다. 다음 날 아침, 평소보다 일찍 일어난 윤경은 제일 먼저 상자로 달려가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병아리를 가만히 들어 손바닥 위에 올렸다. 북소리는 어제보다 더 먼 곳에서 들렸다. 북을 맨 사람이 점점 먼 곳으로 가고 있는 듯이.


북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게 되었을 때, 병아리도 윤경의 손바닥에서 꼼짝하지 않았다. 뻣뻣하게 굳어버린 병아리를 손수건에 싸서 정원 구석 나무 아래 묻어주며 어린 윤경은 미안한 마음을 어떻게 전해야 할지도 몰라 그저 화난 사람처럼 내내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그 후로 한참 동안 윤경은 병아리 장수가 있는 앞문을 피해 일부러 학교 후문으로 빙 돌아서 갔다. 다리가 아팠지만, 조금이라도 미안한 마음이 덜 해 질 수 있다면 참을 수 있었다.


윤경은 지금 그때처럼 북을 맨 누군가가 점점 멀어지고 있는 것을 느꼈다. 누군지 알 수 없는 그 사람을 애타게 불렀다. 쫓아가도 쫓아가도 그 뒷모습과의 거리는 좁혀지지 않고,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주위의 안개는 점점 더 짙어졌다. 아스라이 안갯속으로 희뿌옇던 그 모습마저 완전히 사라지고 이제 윤경의 시야에는 온통 흰 안개벽만이 보였다. 하늘과 땅을 분간할 수 없이 완전히 방향 감각을 잃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달려가던 윤경은 발을 헛디디고 까마득한 낭떠러지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 선연한 추락의 느낌에 몸서리를 치던 윤경에게 아득한 곳에서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윤경아, 윤경아!!

눈을 뜨니 해나가 앞에 있었다. 감정이라곤 섞이지 않은 메마른 어조의 의사가 안경을 추어올리며 설명했다.

-아직 임신 초기여서 안정기가 아닌 데다가 산모분은 태반이 약해서 유산 위험이 높아요. 임신 기간 내내 절대 무리하시면 안 되고, 오늘 같은 일이 또 있으면 아기의 안전을 장담할 수가 없습니다. 입원 기간 중에 몇 가지 검사를 더 해볼게요. 그 후 정기 검진은 다시 얘기해 보죠.

해나는 윤경에게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다만 그동안 재민이를 챙길 테니 걱정하지 말고 푹 쉬라는 당부를 했을 뿐이었다.

-고마워.

세련되고 화려한 모습은 간데없이 파리한 얼굴의 윤경은 지쳐 보였다. 윤경에게 아이의 선생님의 연락처와 유치원 주소를 받으며 해나는 마침 백화점을 그만두어 아이를 챙길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백화점 앞으로 갈게. 저녁이나 같이 먹자.

지란의 문자였다. 입원한 윤경을 대신해 재민이를 돌보느라 윤경의 집에 머물던 해나가 3일 만에 집에 돌아와 현관을 막 들어서는 참이었다. 해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답을 보냈다.

-나 관뒀어.

문자를 전송하자마자 전화벨이 울렸다. 지란이었다. ‘지금 어디 있냐’는 물음에 대답을 망설였다. 해나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전화를 끊은 지란은 잠시 후 집 앞이라며 문자를 보냈다.

-니가 갈 데가 어딨겠어. 방구석에 처박혀 있었겠지. 나와.


해나는 지란이 어쩌면 진석보다 자신을 훨씬 더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지니에게 되사왔던 로열 코펜하겐 커피잔 2인조 중에 진석이 깨버리고 남은 한 개가 해나의 눈에 들어왔다. 윤경과 함께 백화점에 왔던 날, 굳이 안 사도 된다고 말리던 해나에게 지란이 눈을 흘기며 그랬었다.

-야, 너무 그러니까 나 쫌... 자존심 상한다?

이것저것 둘러보던 지란이 커피잔을 들어 가격을 살피더니 한 개를 내밀었다.

-이거, 한 개씩도 파는 거 맞지? 일단 하나만 살게. 어차피 커플로 먹을 일도 없어. 아, 진짜 드럽게 비싸고 지랄이야.”


해나는 윤경에게 선물하려고 나머지 한 개를 장바구니에 담았던 것을 떠올렸다. 깨지고 남은 것이라는 게 조금 마음에 걸렸지만, 어차피 한 개씩 모으면 다시 두 개가 되는 거니까. 그날 이후 집을 나간 진석은 아직 연락이 없었다. 해나는 문득 자신과 진석도 이렇게 다시 만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한 세트가 될 수 있을까... 생각했다. 해나는 고개를 저었다. 사람은 컵이 아닌 걸. 작게 한숨을 쉬며 봉투에 컵을 담았다.

편의점 앞 파라솔 아래 지란이 맥주캔을 따서 해나에게 내밀었다. 해나는 로얄 코펜하겐 커피잔을 지란 앞에 놓고 맥주를 따라주었다. 지란이 잔에 흘러넘치는 거품을 재빨리 입으로 핥으며 웃었다.

-뭐야? 여기다 맥주를 마시라고?


-너 지난번에 한 개만 사갔잖아. 이거 너 줄게. 세트로 맞춰.

-이거 나 주면 너는? 진석이랑 쓰려면 두 개 있어야잖아?

진석보다 해나를 훨씬 더 잘 알고 있는 지란이었다. 지란은 해나의 대답 없이도 이미 해나를 읽고 있었다.

-너 무슨 일 있지. 양말 한 짝 사는 것도 벌벌 떠는 니가 이런 비싼 커피잔을 다 사고. 갑자기 그만둔 건 또 다 뭐고... 말해. 뭐야.

-하나씩 물어.... 정신없어.

-하나씩 천천히 대답해. 나 시간 많아.

-일은 무슨... 아냐. 그냥 좀 쉬고 싶어서..

-지랄하지 말고. 내가 널 몰라? 얼른 말 안 해?


꾹꾹 눌러두었던 감정이 기어이 비어져 나왔다. 사실은 “너 어디야?” 할 때부터 말하고 싶었다. 나에게 와 달라고. 실은 지금 너무 힘들다고.

그러지 않았던 건, 해나의 오랜 버릇이었다. 나만 참으면 된다고, 그럼 다 괜찮아진다고. 다 지나간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버텨온 시간이었다. 진석을 버팀목으로 삼았고, 그 버팀목이 제자리에 있어주기만 하면 자신도 쓰러지지 않을 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다 틀렸다. 이제 해나는 기댈 곳도 서있을 힘도 없었다.

-지랄하지 말고 말해. 얼른.

거칠지만 다정하게 안부를 물어주는 지란의 말에 버팀목을 잃고 휘청거리던 해나의 감정이 무너져 내렸다.


해나의 이야기가 끝났을 때. 지란이 벌떡 일어났다.

-가자.

-어딜?

-나 오늘, 이 새끼 가만 안 둬.

해나가 웃었다.

-진석이 어디 있는지. 너 알아? 나도 좀 알려주라.

지란이 모르고 그런다는 걸 해나도 알았다. 그저, 그렇게 튕기듯 일어나 허공에 삿대질을 해대는 지란의 연극이 자신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서임을 알기에, 그것만으로 까마득하던 발아래 검은 허방이 조금 안전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고맙다

해나가 작게 웃었다.

자리에 앉으며 지란은 진석에게 시원하게 욕을 내질렀다.

-개만도 못한 새끼. 머리 검은 짐승도 아까운 놈. 식충이! 아메바 같은 새끼!!

차라리 잘됐어. 잘 했어. 송해나! 진즉에 이랬어야 해. 내 속이 다 시원하다. 야.

-큭큭...지랄하네. 는 왜 안 나와. 니 시그니처 아냐?

해나가 웃으며 캔을 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맥주를 끝까지 들이켠 지란이 캬.. 하며 캔을 내려놓곤 말했다.

-나, 이수랑 헤어졌어.

마시던 맥주를 다 마시지도 못하고 캔을 내려놓은 건 이번엔 해나였다


-왜, 왜 그랬어. 너 이제 좀 편해져도 되잖아. 지교가 그렇게 된 건 니 탓이 아니야.

-지교 때문이 아니야.

-그럼?

-지교가 아니라...

지란은 캔을 만지작거리며 망설였다.

-나 때문이야. 미안해... 너한테. 미안해. 해나야.

-응? 나한테 미안할 게 뭐 있어.

-지교는 핑계였어. 실은, 내가 자신이 없어서였어. 용기가 안 나서.


해나가 고개를 들어 지란을 마주 보았다.

-첨에는 그랬어. 지교 그렇게 가고 나서 한동안 그 아이가 늘 내 옆에 있어서 힘들었고, 지금도 가끔은 내 옆에 있는 거 느껴. 지교 두고선 절대 사랑 같은 거, 결혼 같은 거 안 하고 평생 행복이라는 거 모른 채 살아야지 그랬던 적도 있어. 근데, 어느 순간 알았어. 그게 지교가 바라는 게 아니라는 거... 지교는 나를 진즉에 놓아줬어. 걔는 나를 진짜 사랑하거든.

문제는 나야.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나니, 또 그럴까 봐 두렵고 무서워... 다시는 그러기 싫고. 그래서 자신이 없었어.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 사람과 헤어지지 않고 오래 함께 할.. 만약 잘못되면.. 헤어지면 그다음을 견딜 자신이 없어지는 거야..


해나가 고개를 가만히 끄덕였다.

-있잖아 해나야. 너, 내가 이수를 어디서 만났는지 알아?

-일하다 만난 거 아니었어? 네 글에 들어갈 사진 같이 작업하는 작가였다며.

-응, 맞는데, 그건 나중에 알게 된 거고. 처음 만난 건 지교 있는 곳이었어.

-납골당 말하는 거야?

-응, 이수는 거기 아버지가 계시거든. 거기서 처음 만났어.

-아, 그게 처음이었구나...

-이수가 점점 좋아지면서 내 감정이 걷잡을 수 없어지던 무렵에 지교가 꿈에 나왔어. 니가 행복해야 내가 행복하다고. 그러니까 이제 그만하라고. 충분하다고.

-어쩌면.. 지교가 만나게 해 준거네,

-그 꿈 이후에 지교가 잘 안 보였어. 가끔은 지교가 너무 보고 싶어서 기다리는데 예전처럼 자주 안 와. 이수를 만나고 나선 한 번인가, 두 번 인가... 요즘엔 그나마 전혀...


지란의 눈에 고여있던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윤경이를 욕하고, 널 바보 같다고 했지만, 실은 내가 제일 비겁해. 나는 어느 쪽도 용기가 안 나서 차라리 지켜보는 쪽을 택했어.

너 진석이한테 빨대 꽂혀 호구노릇 하는 거 답답하다 욕하면서도 한편으론 그런 사랑을 할 수 있는 니가 부러웠어. 그 용기가 그 사랑이. 나는 그런 사랑을 할 자신이 없어서 차라리 그건 세상에 없는 거라고 믿고 싶었나 봐. 그래서 두 가지 마음이 같이 들었어. 너의 사랑을 응원하고 싶은 맘과 그 사랑이 언젠가는 깨지기를 바라는 맘.


해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

-어, 나 못됐어. 나쁜 년이야. 알어.. 미안해.

-그랬니.

해나가 작게 웃었다.

-니 바램대로 됐네. 후후.

기분 나쁜 말투는 아니었다. 담담히 말하는 해나의 시선을 피해 지란이 고개를 숙였다.

-이 말을 너에게 해야 내가 좀 맘이 편할 거 같아서.

-...

-이것도 내 맘 편하자고... 나 진자 뼛속까지 이기적인 년이야. 이것도 진짜 미안.

윤경이가 결혼 정보 회사 통해 그렇게 결혼하는 거 진짜 속물이다 재섭다 안 됐다 싶으면서도, 니가 하는 사랑이, 진석이를 위한 마음이, 그것도 실은 그냥 연민 같은 거라고, 진짜 사랑은 없다고 누가 증명해 주길 바랬어. 나는.. 이쪽도 저쪽도 선택하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중간에서 구경하길 택한 거야. 어느 쪽이 맞더라도, 나는 선택 자체를 안 했으니 상관없다는 맘으로. 행복하려 한 선택이 잘못될까 봐 겁이 났어.. 미안..해..


지란은 해나의 손을 마주 잡았다.

-그치만 해나야, 니가 행복하길 바랬어. 이건 진심이야.

-알아..

해나가 따뜻하게 지란의 손을 마주 잡았다.

나직한 해나의 목소리가 울고 있는 지란을 위로하듯 했다.

-... 너는... 겁쟁이가 아니라 진짜 사랑을 하고 싶었던 거야. 다만 진짜 그런 게 있는지 확신을 하지 못했을 뿐이고. 확신 없는 일에 달려들지 않는 건 비겁한 게 아니라 신중한 거 아닐까?

나도 확신을 가지고 진석이에게 그랬던 건 아니야. 다만, 내가 진짜로, 사랑이란 걸.. 하면 된다고 생각했어. 근데, 그게 있잖니. 지란아.


해나는 잠시 멈춰 한숨처럼 작게 숨을 뱉었다.

-나 참.... 오만했더라. 주제 파악을 못한 거지. 사랑은 혼자 하는 게 아니라는 너무 당연한 전제를 무시했어. 어쩌면 나는 그런 사랑의 가치를 믿는 내 모습에 도취되었던 건지도 몰라. 그리고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사랑이 아니었어. 일방적이고 이기적인 자기만족. 나는 그걸 했던 거야. 나 혼자서.

더 최악인 건, 그런 나를.. 난 좀 다르다고 생각하면서 다른 사람들을 경멸하고 무시했어. 응... 맞아... 나, 솔직히...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이랑 조건에만 맞춰 결혼하고 껍데기로 살아가는 윤경일 멸시했고, 한 사람에게 정착하지 못하고 이 사람 저 사람 가볍게 만나고 다니는 너를 무시했어.


지란이 따뜻하게 해나를 응시했다. 해나도 지란을 보며 미소 지었다.

-누구도 그럴 자격은 없는 거야. 그걸 이제야 알겠어. 미안한 건 나야. 나도 미안해. 지란아.

해나는 지란에게 진석과의 완전한 끝을 말하며, 윤경의 임신 소식과 입원 소식을 알렸다.

-너는 그 얘기를 이제하면 어떡해..!! 애기는, 애기는 괜찮은 거야? 나 때문에 아기 잘못된 거야? 어떡해....어떡해...

울 듯하며 어쩔 줄 몰라하는 지란을 해나가 진정시켰다.


-아기는 괜찮아. 앞으로 조심은 해야 한데. 이번 주말에는 퇴원할 거야. 난 내일 아침에 재민이한테 다시 갈 거고.

-내일 윤경이한테 갈 건데. 같이 가주라.. 나 혼자서는 윤경이 얼굴을 볼 자신이 없어.

-어이구? 천하의 이지란이 겁이 나는 것도 있어?

-너무 그러지 마. 나 지금 엄청 후회하는 중이야. 말도 못 하게.

-너, 그날 솔직히 말이 좀 쎄긴 했어. 니 말투 아는 나도 헉! 하드라. 윤경이 지 속도 편치 않다는 거 너 알면서도 굳이 그렇게까지 후벼 파야 했어?

-반성하고 있어... 너 알잖아.. 나 한번 돌면 끝까지 가는 거.

-존 거 아니야. 알면 좀 고쳐... 오해받아도 상관없다 이러지 말고. 나이 들어 그러면 추해.

-알았어... 기집애야.. 고만해. 반성하고 있다니까.. 근데, 재민이는 뭐 좋아해? 나 뭐 좀 사갈까 응?

-말 돌리긴...

‘6살 남자아이가 좋아할 만한 장난감’을 검색하며 이건 어때? 이건? 신이 나서 자신에게 보여주는 지란에게 해나는 밉지 않게 눈을 흘겼다.




-잘 지냈어요?

한 달 만에 만난 이수는 많이 야위어 있었다. 뺨이 패이고 정돈되지 않은 수염 자국으로 꺼칠해진 이수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지란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아니, 잘 못 지냈어.

지란은 내가 미안했다고, 겁이 나서 그랬다고 말하려 했다. 이수를 안으며 이렇게 말할 것이었다. 헤어져 있는 시간 내내 단 한 번도 편한 적 없었다고. 너 없이는 안 되겠다고 다시 시작하자고. 아니 처음부터 끝이 아니었다고.

-이수야...

-많이 생각했어요.

-나도, 계속 네 생각뿐이었어. 이수야. 우리...

-헤어져요. 그게 맞겠어요.

이수의 젖은 눈이 지란을 보고 있었다.


16화에 계속



P.S.

나는, 우리는,

해나일까, 윤경일까, 지란일까요..

어쩌면 모두 다 일지도.

사랑을 믿는 여자,

사랑을 믿지 않는 여자.

사랑을 겁내는 여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결국 진짜 사랑을 찾기를 바랍니다.

어쩌면 제가 그러길 바래서일지도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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