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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상(好喪)4

by 한아


-4화-


구리 이모가 떠났다는 이야기를 들은 후 눈에 띄게 노쇠해졌던 어머니는 용인 집으로 간 후 하루하루 기력을 회복하는 듯 보였다. 용인 누이가 핸드폰으로 전송하는 사진 속의 어머니는 백수(白壽)가 가까워 가는 노인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여전히 짱짱했다. 김장 김치를 담그러 모인 동네 아낙들과 교회 자매님들 한 켠에 앉아 배춧잎을 휘두르며 오만가지 참견을 하고. 오이지를 담기 위해 다라이 한가득 오이를 쌓아놓고 소금으로 문질러대고, 마당 테이블에 앉아 꽃을 바라보며 웃는 듯 우는 듯 햇살에 눈을 찡그리는 어머니의 모습을 사진으로 보며, 가족들은 아직도 왕성한 어머니의 기운과 여전히 형형한 생에 대한 의지에,


“우리 왕할머니 아직 쏴롸있눼.. 대단허시다..정말..” 감탄을 마지 않았다.


그렇게 이년 여가 흐르고, 어머니는 이제 해를 넘기면 백 세가 된다. 한 인간이 오롯이 살아낸 백 년이라는 세월이 어마어마한 시간인 것 같다가도, 어느덧 일흔이 훌쩍 넘은 내게도 백 살까지 삼십 년도 채 남지 않았다는 걸 생각해보면, 그리고 지금껏 내가 살아온 칠십여 년의 시간의 속도를 가늠해보면 이 우주의 무한한 시간 속에 인간의 백년은 얼마나 하잘 것 없는가 싶어지는 것이다.


지팡이를 짚고, 동네 노인들 부축을 받으며 마을 입구에 새로 생긴 카페로 마실을 갔는데, 아메리카노에 ‘크라뭐시기‘라 하는 빵을(아마도 크로와상일 듯) 혼자 다 자시더라, 미장원에서 머리를 자르며, 얼마나 총기있게 오지랖을 떠시는지, 동네 터줏대감인 미장원 원장이 백세 노인의 믿을 수 없는 정정함에 기함을 하더라는 소식을 전하며 누이는 살가운 눈으로 어머니를 바라봤다. 어머니의 모습에서 제 어머니의 모습을 더듬어보는 듯 했다.


“땅 기운을 받아 그런지 이 집에 온 후로 전보다 오히려 젋어지신 것 같어요. 이모는 나이를 거꾸로 먹나 봐. 내가 모시는 게 아니라 오히려 날 도와주기도 한다니까요. 노인네가 좀 부지런해야지. 잠시도 가만 안 있고 뭐라고 해야 직성이 풀리니.. 내가 따라다니기 힘들 정도라우.”


그러나, 우리 집 노인의 시계라고 섭리를 거슬러 특별할 수 있을까. 그 대화를 나눈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가끔‘ 사람을 못 알아보던 일이 점점 잦아지고, 신생아처럼 잠을 자는 시간이 늘었다고 했다. 그러더니 하루는 어머니가 이틀이 넘도록 아무것도 못 먹고 드러누웠다는 전갈이 왔다. 혹시 모르니 마음의 준비를 하고 늦기 전에 인사를 드리러 오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하여 온 식구가 출동하기를 몇 번 하였다. 그러나 그때마다 어머니는 또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좋아져서, 누이는 아무래도 ’할머니가 손주들이 보고 싶어 그랬나보다‘ 고 머쓱해하기도 하는 것이었다.


그날은 용인 누이에게서 아침 일찍 전화가 왔다. 보통 사나흘에 한 번꼴로 오전 9시 경이면 어머니의 간밤 상태를 알리는 전화가 오곤 했지만 그러기엔 지나치게 이른 시간이었다.


”오빠, 아무래도 이번에는 진짜 좀 다른 거 같애. 한 이틀 거의 못 드시고 잠만 주무시네. 그동안은 잠은 늘었어도 드시는 건 잘 드셨는데. 암만해도 오늘은 이모 옆에 와 계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이대로 무난히 백세를 넘기나 싶었는데, 이번엔 진짜 떠나려 하는 것 같다는 경험 많은 누이의 말에 ’아이구... 우리 어머니 세 자리 숫자의 나이는 감당하기가 부담스러우신가.. 아내가 탄식하듯 조용히 말하며 눈물을 보였다.

이제 미국에 있는 작은 오빠한테도 다시 한번 전화를 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용인 누이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요양 보호사 자격증을 딴지 20년이 넘은 누이는 그동안 숱한 노인들의 마지막을 지켜봤다. 아무래도 이번에는 진짜로 며칠 넘기기 힘드실 것 같다는 소리에 미국에 사는 막내 아우놈에게 전화를 넣었다.


80년대 초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회장님의 명을 받들어 해외 주재원으로 나간 후 줄곧 이 나라 저 나라를 떠돌던 아우는 더 이상 그 회사에서 할 일이 없어진 후에도 만리타국 미국 땅에 뿌리를 내렸다. 내 나라에서의 모든 인연과 기억의 마지막 미련까지 털어버리려는 듯 영주권 획득도 모자라 아예 그 나라 시민권을 획득하고 귀화를 했다는 전갈에 축하를 해야할 지 역정을 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하긴, ‘트렌스젠더’인지 뭔지.. 남자로 태어나 여자가 되기도, 여자로 태어나 남자가 되기도 한다는데, 한국인으로 태어나 미국인 되는게 뭐 대수랴. 싶다가도, 제 나라 국적을 그렇게 화투장 뒤집듯 바꿀 수 있다는 게 놀랍기도 이해 불가이기도 했다.


어머니가 더 이상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게 되면서 미국집에 전화를 몇 번 했지만 그때마다 아우의 전갈은 한결같았다.


“형님, 어머니 상태가 안 좋아지면 연락 주세요.”


미친 새끼, 얼마나 안 좋아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연락을 하라는 거야. 노인네 상태가 언제 어떻게 될지 알고. 사실 날이 정확히 며칠이나 남았는지 정확한 시간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아예 돌아가셨단 소릴 듣고 오겠다는 건지 언짢아서 두말 섞지 않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이번에는 진짜 마지막인 것 같단 소리에 비행기표를 알아보겠다며 전화를 끊은 아우로부터 두어시간 후 다시 전화가 왔다. 추수감사절 기간이라 표가 귀하다, 바로 출발하는 표가 없어 경유지를 거쳐 나흘 후에나 도착한다는 전갈이었다


“집에 그렇게 모셔둘 게 아니라 병원에 모셔야 하는 거 아니예요. 형님? 그래도 최선은 다해봐야 하지 않습니까.”


“최선이라니?”


“못 드신다면서요. 수액이라도 맞혀봐야 하는거 아니예요. 그렇게 굶도록 둘 순 없잖아요?”


수화기 너머 아우가 다분히 힐난조로 말했다.


“최선, 최서언? 도대체 누굴 위한 최선이야.”


“요즘 세상에 집에서 돌아가시는 경우가 어딨어요. 요양 병원에 계셨으면 거기야 의사가 있겠지만 어머닌 그것도 아니니....”


“너 편한 대로 거기서 죽치고 이제나 저제나 상태 나빠져 임종 임박했단 소리 들을 때까지 자빠져 있다가 막판에 임종 못 지킨 후레 자식 소리 들을까 봐 부랴부랴 비행기 잡아타고 오는 주제에, 이제 와서 자식 도리 하겠다고 노인네를 호스에 줄줄이 엮어매서 병원에서 연명을 시키라고? 그게 최선을 다하는 거라고? 지랄 염병하네.”


“형님. 그런 말씀이 아니라요. 그래도 아직 살아 계신데 엄마를 굶어 죽게 할 순 없는 거 아닙니까.”


“호스 꽂아서 포도당 집어넣는 게 밥이냐? 뼈랑 가죽만 남은 100세 노인을 이리저리 끌고 다니며 주사바늘 꽂아 돌리는 생각은 안 해? 너 올 때까지 숨만 붙어있게 해 달라는 거 아니야. 이 나쁜 자식아.”


전화기를 쥔 손이 부들거리는 걸 다른 한 손으로 누르며 아우에게 뱉듯이 말했다.


“너는, 참.. 어떻게 그렇게 끝까지... 이기적인 새끼..”


“..서울 들어가서 뵙겠습니다.”


질린 듯 아우는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이른 오전부터 형제들이 용인집으로 속속 모여들었다. 금방이라도 숨이 끊어질 듯 헐떡이는 어머니를 둘러싸고 형제들이 앉고 서고 엎드리고 손,발을 하나씩 붙들었다. 둘째 큰 누이와 셋째, 넷째 작은 누이들이 어머니 침대 맡에 무릎을 끓고 울어댔다.


“엄마 미안해요 미안해.. 나 어릴 때 친엄마 아니라고 못되게 굴어서 미안해. 그래두 엄마가 우리 잘 키워줘서 다들 잘 살았수. 고마워요..고마워...”


막내 누이가 엄마 발을 붙들고 흐느꼈다. 7년 전 암으로 세상을 떠난 큰누이의 영정 사진을 엄마에게 보이며 둘째 누이는 어머니 귀에 대고 큰소리로 당부했다.


“큰 언니는 먼저 갔어. 엄마 기다리고 있을 거야. 우리 중에 큰언니가 엄마한테 제일 살가웠잖우, 걱정말고 가서 언니 효도 받고 기다리우. 나도 곧 가우, 응?”


그렇게 누이들이 울고불고하는 사이, 막내 아우로부터 공항에 내렸다는 문자가 도착했고 보낸지 정확히 3시간 후, 아우는 어머니가 계신 방문을 열고 들어섰다.


“어머니.”


나직하게 부르는 소리에 눈을 감은 채 고양이같이 가랑거리는 소리를 내며 간신히 할딱대던 노인이 거짓말처럼 눈을 반짝 떴다. 멍하니 아우의 얼굴을 보던 초점 없는 눈동자가 점점 또릿해지더니 동공이 커지며 놀라움이, 이어서 반가움이 가득 차올랐다. 지난 며칠을 아무도 못 알아보던 어머니는 가시같은 손목을 들어 거친 손바닥으로 평생을 떨어져 산 막내아들의 얼굴을 하염없이 쓰다듬기 시작했다.


“내 새끼, 내 새끼. 내 새끼야..”


어머니는 발음도 또렷하게 내 새끼야...를 하염없이 반복했다. 상황을 알려주면 가겠노라는, 야멸차도록 싸가지없는 소리만 반복하던 아우조차도 노모의 모정에 감복했는지 눈물을 흘렸고, 주위를 둘러싼 가족들 모두 막내 얼굴보고 떠나려고 여태 기다리셨나 보다며 모자 상봉의 기적에 눈물을 흘렸다.


사망선고의 절차를 위해 섭외한 동네 의원의 의사가 동석한 가운데, 어머니가 우리집에 계실 때 오래 다니던 본당에서 모시고 간 신부님이 오셔서 어머니를 위한 마지막 생미사를 드렸다. 가족들은 어머니가 미사 중에 자연스럽게 이승의 문을 닫고 마침 기도를 올리고 마침 성가를 부를 즈음에는 그 노랫소리를 들으며 하늘에 올라 천국의 문을 여실 거라 의심하지 않았다. 성가를 부르는 가족들의 성스러운 하모니는 사운드 오브 뮤직의 폰트랩 합창단 못지않았다. 마침 성가는 1,2절도 모자라 3절까지 부르고 미사가 끝났다. 눈을 감은 어머니는 편안해 보였다. 내내 오물거리던 입술의 움직임이 멈추고 고요해진 입가에 엷은 미소마저 감도는 듯 보였다. 막내 여동생이 흡~ 하며 울음을 참고 어머니의 얼굴을 안으려는 듯 몸을 숙였다. 어머니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대고 작별 인사를 하던 막내 여동생은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잠시 후 고개를 들더니 갸웃했다.


다들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으고 조용히 기다리는 가운데...가랑가랑... 작게 가래끓는 소리에 섞인 희미하고 불규칙한 숨소리가 끊길 듯, 끊길 듯 이어졌다. 막내 누이가 작은 소리로 다시 찬송가를 부르기 시작했고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따라 불렀다. 두어곡의 찬송가가 더 이어지고 울음소리도 잦아들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가랑가랑, 쌕쌕...이어지던 숨소리는 점점 고르게 안정되며 잠시 후 낮게 코고는 소리로 바뀌었다. 어머니는 아기같이 단잠에 빠져있었다. 우리는 여전히 두 손을 모은 채 세상 평안한 얼굴로 새처럼 작은 가슴을 고르게 들썩이며 자는 어머니를 가만히 내려다 봤다. 신부님이 헛기침을 하더니 성호를 그으며 먼저 일어나셨고, 뒤를 이어 무안한 듯 주섬주섬 한 명씩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인제 슬슬 막이 내리고 다들 퇴장하여 막 뒤의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감독의 컷 사인이 안 떨어진 뭐 그런 경우랄까. 감동의 눈물을 글썽이며 나란히 손을 잡고 고개 숙여 인사를 한 배우들은, 박수 소리도 잦아들고 앵콜 요청도 없는데 여전히 커튼은 닫히지 않은 무대 위에서 서로 옆 배우의 눈치를 보며 어정쩡하게 수그리고 서 있는 꼴을 연출하고 있었다.


-5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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