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상(好喪)1화
전화가 울린다. 전화가 올 걸 알고 있었던 듯, 갑작스럽지도, 뜬금없지도 않은 전화벨 소리. 탁자 위에 놓인 핸드폰을 집어 들기 전 잠시 벨소리를 가늠해 보았다. 혹시 전화벨 소리에 조금이라도 비보(悲報)의 낌새가 섞여 있는지. 경망스러우리만치 경쾌한 벨소리에 그런 게 있을리 없건만도, 피아노 조율사 자격시험이라도 보듯 신중한 감별사처럼 눈을 감고 소리의 색을 구분해내려 애를 써보는 것이다. 이윽고 확인한 전화 발신인은 셋째 누이였다.
“그래. 아직 소식 없어.”
수화기 너머 누이의 질문에 퉁명스럽게 대답하고 나는 전화를 탁자 위에 언짢게 탁 내려놓았다.
“제길 뭘 기다리는 거야”
혼잣말처럼 내뱉는 소리에 아까부터 내 눈치를 보던 아내가 물었다.
“용인 소식 묻는 전화죠?
나는 애꿎은 아내에게 괜히 화풀이라도 하듯 탁자 끝에 위태롭게 매달린 전화기를 쇼파에 아무렇게나 내던졌다.
”소식은 무슨 소식.. 젠장 다들 뭘 기다린다는 거야 대체.“
나는 벌떡 일어나 냉장고에서 생수병을 꺼내어 병채로 벌컥벌컥 들이켰다.
”저녁 일찍 먹을래요? 출출하다면서요.“
아내가 뭐라도 챙길 태세로 소파에서 일어서려 할 때, 다시 전화가 울렸다. 소파에 아무렇게나 던진 전화의 발신인을 확인한 아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나를 보며 입모양으로 ‘용인 집이예요.’ 하고는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받은 아내는 연신 고개를 주억거리며 대답했다.
”응, 응.. 아이구..그렇겠다. 이런.. 고생이겠네 진짜. 알았어..내 찾아볼게.“
아내는 전화기를 든 채 안방으로 건너가 잘 개켜놓은 이불을 도로 다 꺼내어 켜켜이 뒤지며 뭔가를 찾기 시작했다
”우리 애들 쓰던 게 여기 있었는데.. 어디 갔더라...안 버리고 잘 뒀던 거 같은데..“
잠시 후, 아내는 ”아, 찾았다.“ 좋아라 하며 다시 용인집에 전화를 걸어 찾은 물건을 이번 주말에 내 편에 보낼 테니 좀 기다려 달라고 했다. 그동안 나는 내내 부루퉁한 표정으로 소파에서 애꿎은 신문만 찢어져라 거칠게 넘기고 있었다. 마음이 영 개운치 않고 불편한 것이 엉망으로 돌아가는 나라 꼴 때문인지, 아니면 모두가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용인집의 소식’ 때문인지 알 수가 없었다.
방문을 열었을 때 눈에 들어온 건 뼈만 남은 어머니의 하체였다. 누운 채로 묽은 변을 보는 와중에 노인용 기저귀 사이로 새어 나와 방금 씻겼다는 어머니는 아래 속옷을 입지 않은 채였다. 엉덩이에 물기를 닦아내느라 접어 세운 두 다리 사이로 깊은 동굴 같은 항문이 열린 채 벌어져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어머니의 정강이뼈는 갈급한 허기를 채우느라 남은 살점 하나 없이 다 뜯어먹고 뱉어낸 작은 닭 다리뼈 두 개를 포개어 세워놓은 듯했다. 근육이 모두 빠져나간 골반 주위의 살은 오래 전에 무두질한 늙은 젖소의 가죽으로 만들어져, 긴 세월 식구들의 무게를 견뎌내느라 주글주글해진 낡은 쇼파처럼 흐물거리는 주름을 드리우며 늘어져 있었다. 어머니의 하체는 이미 산 사람의 그것이라고 볼 수 없어 외설은커녕 민망하다는 느낌조차 없이 그저 비현실적일 뿐이었다.
칠십년 평생이 방금 닫고 나온 문 같은 요즘이었다.
그렇다면 저 작고 검은 구멍이 내가 열고 나온 최초의 문이었던가.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내 눈앞에 보이는 그 장면이 실제가 아니라 마치 브라운관을 통해 보는 화면인 듯 멍하니 보고 서 있었다.
똥 싼 기저귀와 둘둘 말아놓은 깔개를 한쪽으로 밀어놓고, 노인네 감기라도 들세라 분주하게 옷을 갈아입히느라 내가 들어오는 기척을 몰랐던 용인 누이는 문가에 우두커니 서 있는 나를 보고 기겁을 하며 서둘러 이불로 아랫도리를 덮어드렸다.
”에그머니나 오빠, 망칙한 꼴을 봤수. 기척이라도 하지 왜 그러고 섰어요?“
나는 시선을 돌리고 누이에게 고생이 많다. 노인네가 변을 많이 봐서 힘들겠다 인사 치레를 했다.
”그래두, 어제 오늘은 영 못드셔서 그런지. 양이 전만 못하네요. 한동안은 아주 돌아서면 싸붙이셔서 속옷이고 이불이고 남아나지가....“
누이는 말을 이어가다가 참담한 표정의 내 얼굴을 흘깃 보고, 내 손에 든 보자기 꾸러미를 받아 들며 화제를 돌렸다.
”이게 언니가 챙겨준 거 맞죠? 지난번에 오빠 손주들 배냇 포대기며, 아기 깔개며, 싹 다 걷어다 주어 아주 유용하게 쓰고 있었는데 요새 변이 늘어서 모자라지 뭐예요. 늙으면 도로 애기가 된다드니 그 말이 딱 맞지 뭐유? 증손주들 고물고물할 때 쓰던 포대기를 왕할머니가 물려받아 똥이불로 쓸 줄 누가 알았겠수. 후후..“
누이는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둘둘 만 기저귀와 이불을 대야에 담아가지고 밖으로 나갔다. 곧추 세워졌던 다리를 내리고 침대에 반듯이 눕혀진 어머니는 크지 않은 싱글 침대가 퀸 사이즈로 보일 만큼 작고 부피감이 없었다. 씻기면서 물이 튀었는지 옆구리 쪽 이불이 축축했다. 젖은 정도를 가늠해보느라 손으로 꾹꾹 누르는 인기척이 느껴졌는지 어머니가 감았던 눈을 뜨고 나를 보았다.
생기가 빠져나간 공허한 두 개의 검은 점이 나를 향하고 있었다. 구십이 넘어서까지도 지하철 노선도와 환승역 통로 위치까지 외우며 서울과 수도권 여기저기 흩어져 사는 일가붙이들 집을 혼자 찾아다니던 어머니였다. 시들지 않던 총기가 사라진 눈동자 속에는 허기를 채우고자 하는 동물적인 본능만이 가득했다. 어머니는 연신 입을 오물거리며 나에게 무언가를 말했다.이가 다빠진 입술은 입구가 쪼그라든 낡은 주머니 같았다 . 가랑가랑 가래 끓는 소리가 섞인 어머니의 목소리가 마치 먼 동굴 속에서부터 울리는 듯했다.
누이는 어느 틈에 들어와 깨끗이 빤 요와 옷, 새 기저귀 등을 서랍장에 가지런히 넣은 후 새 이불을 꺼내고, 어머니를 공깃돌 돌리듯 가볍게 돌린 채 한쪽 무릎으로 받치고, 남은 한 손으로 얼른 축축한 요와 바꿔치기했다. 그리고나서 모로 돌렸던 허깨비 같은 어머니의 몸을 다시 천장을 향하게 바로 눕힌 후, 한 겹이었던 윗도리 위에 수면 조끼를 덧입히고, 속옷 대신 입힌 노인용 기저귀를 살짝 풀러 통풍을 시켰다. 미라처럼 누운 어머니 위로 이불을 잘 덮어준 누이는 지문이 다 닳은 거칠한 손가락을 빗 삼아, 수십 년 된 싸리 빗자루같이 푸석한 어머니의 회색 머리카락을 쓱쓱 빗겨주었다.
누이는 이 모든 동작들을 마치 몸에 배인 듯, 지나치게 우악스럽지도 그렇다고 너무 히마리 없거나 보드랍지도 않게 했다. 어머니도 누이의 손에서 이리저리 돌려지는 모습이 하나도 힘들지 않고 편안해 보여 두 사람은 마치 오랫동안 호흡을 맞춘 한 팀인듯도 보였다.
”그래도.. 오빠 있죠, 이모가 우리 엄마보다 훨씬 체구도 작고 가벼워 그런지 힘이 덜 드는 것 같아. 아니다. 우리 엄마니까 더 무겁게 느껴졌을 수도 있겠네. 그치? 이모?“
거친 손바닥으로 어머니의 얼굴에 로션을 차닥차닥 바르며 누이가 쓸쓸하게 웃었다. 어머니의 얼굴에서 누이는 제 어머니의 모습을 찾는 듯 보였다.
”자... 다 됐어요. 아유, 우리 할마시 이뻐졌네. 증손주가 오랜만에 보고 놀라 도망가면 어쩌나 했는데 이젠 좀 안심이우.“
나는 같이 데리고 온 열두 살 손주 녀석을 방으로 들어오게 했다. 어머니가 아직 운신과 의사 소통이 가능하던 때를 기억하는 큰 손주는 뼈만 남아 미라처럼 보이는 노쇠한 증조할머니를 보고 조금 겁을 먹은 듯했다. 태어난 살아온 평생이 열두 해를 지났을 뿐인 아이에게 백년 가까이 산 어머니의 모습은 책에서나 보던 사진이 눈앞에 현실로 나타난 느낌이었을 게다. 가까이 살며 왕래가 잦아 나하고도 스스럼없이 지내는 녀석이었건만, 녀석이 알고 있는 제일 나이 많은 사람인 나보다도 더 나이 많은 생명체 앞에서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주춤거렸다.
”왕할머니다. 기억하지? 인사드려라.“
나의 말에 손자는 엉거주춤 침대 옆에 앉아 "왕할머니 안녕하세요." 인사를 했다. 손자의 목소리에 빈 동굴 같은 어머니의 시선이 향했다. 무섬증을 참고 아이도 그 시선을 마주했다. 초점 없는 시선이 아이의 얼굴을 잠시 살피더니 먼 곳에서 들리듯 웅얼거리는 소리로 어머니가 뭔가를 웅얼거렸다.
”..준아...“
발음이 불분명하고 소리가 작긴 했지만, 어머니가 부르는 이름은 미국에 살고 있는 막내아우의 큰아들 이름이었다. 아우는 삼십여 년 전 발령받은 주재원 임기가 끝나고도 기어이 해외에 남더니 결국 미국 시민권자가 되어 버렸다. 그곳에서 낳은 아우의 큰아들은 이미 결혼해서 두 아이의 아빠가 되어 있었다. 어머니가 그 아이를 실제로 본 건 25년 전인가, 아우의 가족이 한국에 잠시 다니러 갔을 때 한번, 한나절도 안되는 시간이 전부였다. 그러고 보니 그때 그 아이의 나이가 지금 손자의 나이인 열두 살 무렵이었던 듯했다.
어머니는 가시 같은 손으로 손자의 손을 잡고는 입을 오물거리며 연신 뭐라고 말을 하려 애를 썼다. 손을 잡힌 채 울상을 하고 있는 녀석을 대신해 나는 어머니의 입술 옆에 귀를 가져갔다.
”돈 줄게 고기 사 먹어요.“
”어머니, 나 고기 많이 먹었어요.“
”당신이 뭐 잡숫고 싶으면 저러신다니까. 돈 줄테니까 뭐뭐 사 먹어라. 가만 들어보면 당신 자시고 싶은 거 사 먹으라고 하는 거야. 사다가 니들도 먹고 나도 좀 달라 이거지. 하긴, 정신 멀쩡할 때도 염치라면 둘째가라면 서럽더니.. 하여튼 귀여워 노인네..“
노인네 의중도 모르고 잘 들리지도 않는 귀에다 대고 고기 많이 먹었다고 악을 쓰는 내가 보기 딱했던지, 우스웠던지 용인 누이가 설명해주었다. 어느새 손자 녀석은 멀찍이 도망가버리고, 어머니는 빈 허공에 대고 연신 입을 오물거리며 천천히 눈을 반쯤 감았다 떴다를 반복했다. 온몸을 가늘게 떨며 이따금 막대기같은 손목을 휘젓는 어머니의 모습은 살아있는 미라처럼 기괴하면서도 처연했다.
-2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