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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상(好喪) 3

by 한아

-3화-


코로나 이전부터의 선약으로 취소가 불가피한 여행이었다. 일주일이나 집을 비워야 해서 내키지 않았지만 약속한 일행들과의 오랜 관계가 있는지라 나와 아내만 빠지겠다고 할 수가 없었다. 가까이 사는 딸에게 가끔 들여다보라고 부탁을 하고 오긴 했지만 아무래도 기분이 이상해서 전화를 했다. 부녀 지간에 기운이 통했는지 딸은 이미 어머니에게 들른 후였다. 오늘따라 이상하게도 아무래도 가봐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집에 가보니, 할머니가 똥 싼 팬티를 반쯤 걸친 채 화장실에 쓰러져 있어 혼비백산을 했다고 했다.

”문을 열고 집에 들어가니, 늘 앉아있던 방안에 안 계시는 거예요. 어디 다른 방으로 가셨나 찾는데, 할머니가 글쎄 화장실에 엎드려 있는 거 있지. 의식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몸을 가누지 못하고 똥 냄새가 심하게 나더라구요. 이런 일은 처음이라 얼마나 놀랐게. 그래도 최대한 놀라지 않은 척 침착하게 “이그.. 냄새 난다. 씻자 할머니.. “ 하며 할머니를 부축했는데...”


딸은 놀란 가슴이 잘 진정이 안 되는 모양인지 잠시 말을 멈추었다.


“결국 화장실에서 쫓겨났지 뭐예요. 샤워 부스 안으로 엉금엉금 기어가더니 세숫대야 붙들고 앉아, 한사코 똥 싼 팬티를 움켜쥐고 안 벗는 거야. 내가 도와준데도 괜찮으니 나가라고 역정을 내며 한사코 떠밀잖아요. 몸도 못 가누던 노인네가 힘은 어찌나 쎈지. 결국 화장실 문 밖에서 수건 들고 기다렸지 뭐. 그 와중에도 손녀딸한테 똥 싼 속옷은 보이고 싶지 않았나 봐. 하여간 우리 할머니 못 말려 진짜.. “


몸을 가누지 못하면서도 똥 싼 팬티를 한사코 당신 손으로 빨아 널고 나오는 걸 보니 그래도 그때까진 어머니 정신은 멀쩡했던 듯하다.


”아빠, 이제는 정말 요양원을 알아봐야 하지 않겠어요? “


딸은 앞으로 이런 일이 점점 잦아질 텐데 엄마가 이걸 어떻게 감당하겠냐며 지 에미 걱정을 먼저 했다. 나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그러나 아내는 아직 정신이 멀쩡한 노인을 요양원에 어떻게 모시냐며 반대했다. 효심이라기보단 자존심이었다. 모든 것을 자신의 통제하에 두어야 직성이 풀리는 완벽주의 성향의 아내는 자신의 책임을 남에게 지우는 걸 못 견뎌했다. 나로서도 기력이 좀 쇠하고 가끔 깜빡거리기는 해도 여전히 눈치가 빤한 노인네를 요양원에 덜렁 넣어놓기가 맘이 편치 않을 듯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그러나 나도, 아내도 이미 일흔이 넘은 파파 할배, 할매였다. 내 한 몸 건사하기도 버거운 나이의 70 넘은 노인네 둘과 97세의 상노인이 한 집에서 엉기어 구물대니, 보기에도 딱했는지, 구리 이모의 큰 딸인 용인 누이가 먼저 제안을 해왔다.


“우리 애 아빠, 사업 말아먹고 무일푼으로 야반도주하듯 미국 들어갈 때 오빠가 우리 도와준 거 나 절대로 안 잊어요. 오빠는 도와줄 만해서 도와준 거라고 하지만, 그때, 오빠보다 더 형편 나았던 우리 친형제들, 아무도 오빠처럼 그렇게는 안 했어요. 우리 아부지 돌아가시고 큰 이모네 장남인 오빠가 우리 집 장남 노릇까지 두배로 한다고 우리 엄마가 얼마나 고마워했는데. 그래서 우리 엄마랑 이모랑 제일 각별하기도 했잖우. 애 아빠 하루아침에 죽고, 엄마까지 갑자기 그렇게...

누이는 잠시 목이 메이는 듯 말을 잇지 못했다.

”나.. 하루아침에 과부 되고, 의지하던 엄마까지 그렇게 가시고 나서 나도 진짜 허하고 맘 둘 곳 없고 그랬는데, 엄마랑 제일 가까웠던 이모 보면서 엄마 생각도 하고 좀 좋아요. 공짜로 하겠다는 거 아녜요. 비싼 요양 원비만큼은 아니지만, 노인네 먹을거리, 기저귀 같은 거 사고 나 용돈이나 할 정도는 받을게요.”


“그래도, 노인네 모시는 일이 애 보기보다 힘든 건데, 병원도 아닌 가정집에서 어떻게 그러냐.”

누이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열심히 나를 설득했다.

“요양병원 보내서 이 사람 저 사람 손에 줄줄이 돌리지 말구 내가 모실께 오빠. 애들 아빠도 가는 그날까지 따로 간병인 안 두고 내가 직접 다 했구... 엄마도 돌아가실 때까지 이 집에서 내 손으로 모셨는 걸 뭐. 병원에서 더 이상 해줄 수 있는 게 없다고 해서 진즉 집으로 모셔와 여기서 보내드렸잖우. 나 있죠, 애 아빠 가고 나서 뭐라도 벌어먹고 살아야겠다 싶어 한국 들어오자마자 부랴부랴 요양보호사 자격증 따고 현장에서 일도 많이 했어요. 이래 봬도 나 베테랑이야 오빠.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급한 대로 딴 요양사 자격증이었는데 선견지명이 있었는지, 내 식구들한테 더 요긴하게 쓰였지 뭐유.. 후후 내 팔자야..”


체념 섞인 누이의 미소가 선했다.


“시설 좋은 요양원만은 못해도, 엄마 모시느라 이러저러 환자용으로 필요한 물건들 구비해 놓은 것도 그대로 있고, 이모도 건강하실 때부터 이 집 자주 드나드셨으니 요양원보단 훨씬 맘 편할 거 아뉴. 나 요양사 할 때도 인기 많았어요. 좋은 과외선생 한테 한 집 형제, 자매 줄줄이 맡기듯 내 소문 듣고 자식, 며느리들이 자기 시댁으로, 친정으로 모셔가 나한테 서비스받겠다고 부러 기다리기도 했다우.”


”그래도, 집보단 병원이 낫지 않겠어요. 그리고, 집에서 모실 거면 우리 집에서 해야지 고모가 왜... “

책임감을 떨치지 못한 아내가 말은 그리 하면서도 걱정은 되는지 말끝을 흐렸다.


”언니 같은 깔끔쟁인 노인네 못 모셔요. 이모한테도 어디 나가 앉을 풀 한뙤기 없는 여기 아파트보단 그래도 우리 집엔 코딱지만 해도 마당도 있구, 텃밭도 있구 허니 노인네 콧바람 쐬기도 좋을 거 아뉴.. 엄마 살아계실 때, 우리 텃밭이 이모랑 울 엄마 놀이터 였잖어. 걱정 마요. 내 잘 모시다가 편히 가시게 할 테니. 이거야말로 누이 좋고 언니, 오빠 좋고 아니우??“


누이는 짐짓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딴 곳만 보고 있는 나에게 다짐이라도 받듯 말했다.


”오빠두 어머니 요양병원 맡겨놓고도 맘 안 편할 거 아녜요. 아직 정신도 멀쩡한 모양이든데. 그리고 그 노인네가 좀 똑똑해? 글타고 언니한테 조만간 똥오줌 받아내 얄지도 모르는 노인네 그 뒤치닥꺼리까지 하라고 할 거유? 45년을 한집서 시집 살게 한 것도 모자라서? 오빠 그럼 진짜 양심 불량이야. 흐흐..”

누이가 나를 보고 양심 불량이라고 할 때, 아내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주억거리는 걸 나는 봤다.


일찍이 과부가 되어 요양보호사 자격을 딴 용인 사촌 누이는 어머니와 10살 터울로 특히 각별했던 구리 이모의 큰 딸이었다. 남편의 빚보증이 잘못되어 땡전 한 푼 없이 야반도주하듯 미국으로 이민 갈 때, 당시만 해도 사업이 흐름을 타서 경기가 좋을 때라 당장 미국 들어가 몇 달 치 집세라도 하라고 보태준 걸 누이는 두고두고 잊지 않고 고마워했다. 바지런한 부부가 합심해서 세탁소에, 네일 샵에, 24시간 한인 슈퍼를 운영하며 고생고생한 끝에 자리를 잡았고, 좀 허리 편다 싶을 때쯤 동서가 갑작스런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남편이 죽고 나자 그곳에서 결혼하고 자리를 잡은 자식들은 두고, 손주들의 애바라지로 이민길에 따라나섰던 넷째 이모와 누이 둘만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어머니하고 이모는 수십 년 만에 재회하여 살뜰히 왕래하며 지내다가 폐렴으로 이모가 한 달도 안 되어 돌아가신 게, 간병이 그리 일찍 끝나버릴 줄 모르고 요양원 못지않게 구비구비 노인네 모시기에 편한 환경을 집에 갖추게 된 연유였다.


아내는 생판 남이 차라리 낫지, 친척 지간이라 돈 줄 거 다 주고도 할 말도 못 하고 눈치만 보게 되면 어쩌냐고 처음에는 반대했지만, 나는 누이의 그 제안이 돈 때문만이 아니라 나에게 고마워하는 마음에서 우러난 진심인 걸 알고 있었다. 누이도 요양병원에 출근해서 일하느니 집에서 우리 노인네를 모시면 병원과 나누어야 할 중간 수수료 걱정 없이 생계에도 도움이 될 터였다, 나로서는, 생판 모르는 요양원에 들락거리며 느껴야 할 일말의 죄책감과 불편한 마음도 덜고, 이제 70이 넘어가는 아내에게 어머니를 맡기기는 더욱 난감했던 터라 갑작스런 누이의 제안이 구세주 같았다. 아내는 누이에게 미안해서 어찌 그러냐고 했지만 실은 나도 아내도 알고 있었다. 조만간 분명히 닥칠 똥오줌을 어찌 받아낼 거냐는 누이의 말 이후, 이미 맘을 굳힌 아내가 실은 인사치레로 그렇게 말한다는 것을.


“나랑 같이 용인집에 가서 며칠 계시다 오십시다. 이모..”


누이의 이 말에 제일 반색을 한 건 뜻밖에도 아내가 아닌 어머니였다.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미리 싸놓은 짐보따리를 옷장에서 꺼내 앞장서듯 집을 나섰다.


그날로 누이를 따라나선 어머니는 45년을 함께 산 아들, 며느리 집을 떠나 처음부터 거기가 당신 집이었던 양 돌아올 생각을 안 했다. 아무리 누이가 먼저 제안하여 모셔갔다지만, 노인네를 돌보는 일이 황혼 육아 못지않게 손이 많이 가고 신경이 쓰일 터였다. 게다가 용인 누이 역시 이팔청춘도 아닌 이미 예순을 넘어선 중노인이었다. 요양원비 납입하듯 정해진 날짜에 따박따박 자동이체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는 서울 근교의 꽤 괜찮은 요양원비 이상의 비용을 누이 몫으로 넉넉히 챙겨주었다. 누이에게 미안한 마음도 있었지만 실은 나도, 아직 정신 멀쩡한 노인네를 똥바람 한 번에 남의 집으로 덜렁 쫓아낸 것 같아 큰 자식 된 도리로 죄스러운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래, 몇 달만 바람 쐬고 집으로 돌아오시라 했지만, 어머니는 잠시 증손주들 보겠다며 집에 다녀왔다가도 해가 지기도 전에 이제 ‘우리 집’에 가자며 누이를 앞세워 뒤도 안 돌아보고 가버렸다. 여북하면 신혼 초부터 자그마치 45년을 어머니를 모시고 한 집에서 복닥거리며 결코 편치만은 않은 세월을 보냈을 아내마저 그 칼같이 여지없는 용인집으로의 귀가를 섭섭해할 지경이었다.


-4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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