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용인집을 나서기 전 딸에게 아우가 한국에 있을 동안 묵을 호텔을 알아볼 것을 부탁했다. 언제 또 호출될지 모르는 상황이니 당분간은 근처 호텔에 머무는 편이 좋을 것이었다. 몇 번의 전화통화로 간단히 예약수속을 끝낸 딸의 안내로 나와 딸, 아우가 같은 차로 호텔로 이동했다. 가는 차 안에서 딸이 물었다.
“작은 어머니는 왜 같이 안 오셨어요?”
나도 궁금했지만 묻지 않고 있던 질문이었다.
“미국 집이 크기만 컸지 낡아서 집수리가 한창이라 올 수가 없었다. 이미 시작한 공사고 계약금도 지불했는데 사정을 아무리 말해도 계약서대로 하자니 어쩔 수가 없더구나. 명시된 공사일정을 어기면 한 푼 돌려받지도 못하고 수리는 수리대로 다시 해야 할 테니 말이다. 부모 돌아가셨다고 무덤 옆에 삼 년을 집 짓고 살던 동양인들 정서를 코쟁이들이 어떻게 이해하겠냐.”
결혼 직후부터 내내 해외 주재원으로 떠돌다가 퇴직 후 아예 미국에 눌러앉은 아우 덕에 제수씨는 시집살이 한번 없이 내내 가뭄에 콩 나듯 넣는 전화와 최소한의 입금으로 ‘롱디 며느리’의 도리를 다했고, 덕분에 명절과 제사 때마다 아내는 오롯이 혼자 그 몫을 다해야 했다. 제 엄마의 그런 세월을 모르지 않는 딸은 그래서 작은 아버지와 작은 어머니에 대한 감정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걔들이 이해한 들, 퍽이나 오셨을라구요.”
입 안에서 발라낸 닭다리 뼈를 퉤 뱉어내듯 딸은 거침없었고, 그 말속의 뼈를 못 느꼈을 리 없는 아우는 대꾸를 안 하는 것으로 대꾸를 대신했다. 나는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럼, 석준이는요? 석준이는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거 아니었어요?”
딸은 내처 아우의 아들인, 사촌 동생 석준이가 오지 않은 연유를 물었다. 아우는 슬하에 딸 하나 아들 하나를 두고 있었고, 딸이 언급한 석준이는 재작년에 결혼하여 연년생으로 두 딸을 낳고 미국 회사의 한국 지점에 발령받아 한국에서 살고 있었다. 작년설엔 명색이 큰 집이라고 아이들과 며느리를 데리고 인사도 다니러 갔었다.
“영주권 유지하려면 일 년에 한 번씩은 미국에 들와야 하거든. 추수감사절은 지 엄마랑 같이 보낸다고 엊그제 들어온 애를 도로 한국으로 가랄 수가 있어야지. 이래저래 피치 못할 사정으로 나 혼자 왔지 뭐냐.. 많이들 아쉬워했어.”
아우의 말에 나도 딸도 대꾸를 하지 않았다. 차 안에는 늦은 오후 라디오 프로그램의 두 진행자가 주고받는 시답지 않은 농담과 낄낄대는 웃음소리만 가득했다.
호텔 입구에서 아우가 말했다.
“가까우니 어머니 자주 들여다보겠습니다.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연락드릴게요.”
미국에서 전화를 받을 때마다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연락 주세요.’ 하던 아우의 고정 레퍼토리가 생각나 피식 웃음이 나왔다. 비로소 아우가 한국에 왔다는 것이 실감이 나는 듯도 했다.
그리된 연휴로 이제 언제 가셔도 이상하지 않을 노인네를 두고 다 같이 기다리는 상황이 된 것이다. 기다리다니 무얼 기다린다는 건지. 아마도 아우가 말한 ‘무슨 일’을 기다리는 것일 게다. 장례와 발인과 적당한 애도와 추모의 시간까지 넉넉잡아 2주 정도. 삶의 루틴이 기꺼이 깨지는 것을 각오하고 모인 사람들은 이제 그 계획이 어그러지고 다시 대기모드가 되어 언제 일상이 흐트러질지 모르는 상태가 되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엉거주춤 서로의 눈치만 보고 있었다.
용인 누이는 웃는 듯, 우는 듯 난감한 표정이었다.
“오빠 내가 미안허네요. 노인네들 숱하게 보내드렸지만 그 지경까지 가고 이렇게 도로 멀쩡해지신 분은 없었거든.. 가실 때 되면 정도는 달라도 공통점이 있단 말이지. 틀림없었는데 말예요.”
“미안하긴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 보고 싶은 사람 다 보고, 인사 나누고. 이제 모두 마음 편해졌으니, 다행히 아직 시간이 더 남아서 더 계셔도 좋고, 이제 어느 때고 고생 없이 편히 가셔도 좋고. 어찌 되었든 감사한 일이지. 별소릴 다한다.”
“아니.. 그래도 이렇게 다 집합을 했는데, 저러시면... 저러실 줄 알았나.. 큰일이네.. 참.. 미국 오빠는 여기 마냥 계실 수도 없을 거 아냐. 뱅기표 값이 한 두 푼이에요. 일단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랠 수도 없구. 어떡해요. 도로 가시랄 수도 읎구....”
“큰 일은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 마라.”
“미음도 드시고 이제는 죽도 드시고. 어제는 눈을 뜨고 사람을 알아보시더니 좀 아까는 한 시간이나 꼿꼿이 앉아계시지 뭐유. 보고 싶던 막내아들이 불로장생 약이 된 건가. 기적이유 기적... 하.. 나 참...”
누이는 어머니가 부활이라도 한 듯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표정이었다.
“아휴 내가 괜히 입방정을 떨어 가지고 여러 사람 곤란하게 하나 봐요. 미안해 죽겄네. 아니 근데.. 오빠 알다시피 요양사로 일하면서 내가 모시다 보내드린 노인네가 한 둘이겠수? 우리 엄마도 그렇고. 하루 이틀 차이 정돈 있었어도 이렇게 말짱하게 살아나시긴 또 첨이야. 우리 이모 강해. 지인짜 강한 양반이야...”
누이는 이럴 리가 없다는 듯이 고개까지 절레절레 흔들었다.
우리 집 거실에 형제들이 모여 앉았다. 아내와 딸, 며느리가 오랜만에 대식구의 식사를 차려내느라 분주하게 주방을 오가며 거실에 편 상으로 음식을 날랐다. 마침 용인 누이가 오늘 오전 어머니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어 가족 단톡방에 올린 것을 다 같이 보는 중이었다. 화면 속의 어머니는 몰라보게 살이 붙어있었고 검붉게 피어오르던 저승꽃도 눈에 띄게 줄어들어 피부가 오히려 보얗게 피어나는 듯 보였다.
“하 참.. 우리 어머니 다시 살아나셨네. 그날 그 길로 가시는 줄 알았더만.”
핸드폰을 멀찍이 들고 사진을 들여다보며 둘째 큰누이가 혀를 찼다. 옆에서 사진을 같이 들여다보던 셋째 누이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러게, 언니, 나 작년에 분양받은 아파트 있잖아. 잔금이 다음 달이거든. 우리 엄마가 가시면서 선물을 주나 보다 했지 난 또...”
나와 시선이 마주친 셋째 누이가 시선을 피하며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변명하듯 말했다.
“아니.. 내가 그동안 뿌린 축의금, 조의금이 얼마니... 목돈 어서 나서 잔금 치르나 걱정했는데. 엄마가 ‘옜다. 우리 딸 선물 주마’ 한 거 같드라니까. 그나저나 오빠는 도로 미국 들어가 봐야 하는 거 아뉴? 언제까지 여기 있을 순 없잖아요.”
“야. 이러고 갔다가 언제 또 불려 올 줄 알고. 노인네 저러다가도 또 한순간 어찌 될지 몰라. 그리고 비행기 값이 한두 푼인 줄 알어? 아무리 쟤가 이젠 좀 먹고살 만하다 해도 몇 달 상간으로 미국, 한국을 옆 동네 버스 타고 가듯 드나들 순 없을 거 아냐,“
막내 누이를 향한 둘째 누이의 지청구에, 고모들이 하는 소릴 내내 듣기만 하고 앉았던 큰아들도 입을 떼고 난처한 듯 주저하며 말했다.
”저.. 전 다음 달에 유럽 출장 가거든요. 수행비서 대동하고 회장님도 가시는 출장이라, 임원급 아닌 평사원은 저뿐인데... 저한테는 놓치면 안 되는 기회예요. “
아들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늦둥이로 낳은 막내 입시를 치르는 중인 둘째 누이가 말을 가로챘다.
“다음 달이면 이제 수능이잖아. 꼼짝없이 들앉아 온갖 정신과 신경을 다 쏟아부어도 모자란 시기인데, 장례식장 오고 가고 일정 겹치면, 애 산란해져서 어떡해... 아후... 참 큰일이네...”
전화기를 들여다보며 연신 카톡으로 뭔가를 주고받던 아우가 누이의 말을 이어받았다.
”미국에 벌려놓고 온 일이 있어서. 이거 참.. 낭패네요. 집수리도 집사람 혼자 다 결정하랄 수도 없고... 평생 살았어도 영어 쓸 일 없어 아직도 헬로, 땡큐가 다인 여편네이니... 제가 필요한 일이 자꾸 생기나 봐요. 한번 들어가면 나오는 게 영 쉽지 않으네요.“
가만히 듣고 있던 나는 숟가락을 가만히 내려놓고 조용히 일어섰다. 아내를 위시하여 아들, 딸 누이들과 아우가 입을 벌린 채 멍하니 나를 쳐다봤다. 잠시 서서 그들을 내려다본 후, 나는 힘껏 밥상을 엎어버렸다. 아직 덜 식은 찌개와 국, 김치, 잡채, 고기며 생선에 나물 반찬들이 공중으로 솟구쳐 올랐다가 펄럭이며 떨어졌다.
“아 뜨뜨...뜨거!”
“오빠 미쳤수? 뭐예요?”
“아버지!”
“낭패? 나앙패?? 뭐가 낭패냐. 노인네가 빨리 안 죽는 게 낭패냐?
이 새끼야. 내가 뱅기표 끊어 줄 테니까 당장 돌아가. 다행히 어머니 아직 정신 있을 때 너 보고 인사도 했으니 됐어. 임종 까짓 거 지킨 걸로 해주마. 어차피 니 지인들은 다 미국에 있을 테니 여긴 올 사람도 없을 거고. 장례식장에서 누가 너 찾으면 잠깐 화장실 간 걸로 해 줄 테니 지금 꺼져 이 개새끼야.”
막내 여동생이 내 팔을 붙잡았다.
“오빠.. 진정해요... 그런 뜻이 아닌 거 아시면서...”
“너도 조의금 받아 메꾸겠다고 턱 괴고 앉아 노인네 가는 거 이제나저제나 기다리지 말고 잔금 대출이나 뭐나 미리 알아봐. 내가 니 몫으로 들어온 조의금 목에 칼이 들어와도 안 떼먹을 테니 그거 받아 나중 갚든가 하고.”
둘째 누이가 입을 샐쭉거렸다.
“아유,, 오빠도 참. 성질 좀 죽여요. 여기 어머니 빨리 돌아가시라고 비는 사람 어딨겠수. 예상했던 거랑 너무 달라서 좀 당황스러운 거지. 어머니 생각, 오빠만 하는 줄 알우?”
“너 말 잘했다. 할머니 명줄 땡겨 몇 문제 더 푼다고 새한이 갑자기 성적이 오르냐? 초중고 도합 12년을 뭐 하고 쳐 자빠졌다가 두어 달 남기고 총력전은 무슨. 한 달 먼저 장례 치른다고 인서울도 힘든 새끼가 갑자기 뭐 서울대라도 들어간다든?”
“여보.. 그만해요.”
보다 못한 아내가 나섰다. 둘째 누이가 눈에 쌍심지를 켜고 달려들었다.
“오빠! 말이 지나치우?. 애한테 저주를 하는 것도 아니고. 오빠만 효자고 우린 다 후레자식이에요? 그냥 산 사람은 집집마다 스케줄들이 있는 거 아뉴.”
“너 그러는 거 아니다. 맨날 니 새끼들 싸고도느라 어머니 일 년에 몇 번이나 들여다봤다고, 어차피 오늘내일하는 노인네 명줄을 못 채서 안달이냐?”
“애 입시는 평생 한 번이잖아요. 그것도 이해 못 해요?”
“어머니는 평생 두 번 죽냐? 입시는 재수라도 하지. 너 죽을 때 ‘스케줄’대로 죽어라. 나쁜 년!”
“아유.. 그만들 좀 하세요.. 제발...”
말리고 나선 건 딸이었다. 고모들과 삼촌을 일으켜 세우고 서둘러 배웅한 딸은 깨진 접시들과 흩어진 음식으로 엉망이 된 거실을 치우고 있는 아내를 조용히 도왔다. 슬금슬금 눈치를 보던 아들은 깨진 그릇 조각들을 주워 봉투에 담아 밖으로 나가버렸다.
나는 용인으로 가시기 전 어머니가 쓰시던 방으로 들어갔다. 얼마 있다 오실 줄 알고 치우지 않았던 침대는 이젠, 늦게까지 불을 켜고 책이나 신문을 보는 나의 습관을 불편해하는 아내를 피해 내가 쓰고 있었다. 방을 둘러보니, 어머니가 쓰시던 물건들은 대부분 정리되고 내 책과 서류들이 더 많이 보였다. 이곳에서도 어머니의 흔적은 이미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나는 옷장을 열어보았다. 몇 개 남아 걸려있던 어머니의 자켓을 쓸어보다가 주머니에서 사탕 하나를 발견했다. 아내와 딸이 아기들에게 주지 말라고 질색을 하던 일본 소금 사탕이었다. 눅눅해진 껍질을 벗기고 입에 넣었다. 달고 찝찔한 맛이 혀 끝에 맴돌았다. 순간, 왠지 눈물이 났다. 소금 사탕처럼 찝찔한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충전기에 꽂아놓은 전화가 울렸다. 아내가 수화기 너머로 “응 응..” 대꾸를 하더니 전화기를 든 채로 안방으로 가서 이불장을 뒤지기 시작했다.
“저번에 가져다 드린 이불로도 아무래도 감당이 안되나 봐요. 빨기 좋은 패드 같은 걸 좀 더 가져다 달라네.”
아내는 장롱 깊숙이 넣어두었던 손주들 어릴 때 쓰던 포대기를 모두 꺼내어 바닥에 펼쳐놓았다. 기저귀만 한 크기의 작은 포대기부터 제법 큰 담요까지 서너 장의 아기 이불 군데군데 누런 오줌똥 얼룩이 남아있는 것이 보였다.
“참. 사람이 나이가 들면 도로 아기가 된다드니 우리 태준이, 승준이 쓰던 포대기를 어머니가 물려받으시네.”
이불을 차곡차곡 개어 보따리에 싸며 아내가 무참한 듯 중얼거렸다.
아내가 싸 준 보자기를 들고 나는 방으로 들어섰다. 어머니는 여전히 텅 빈 시선을 천장에 고정하고 연신 입을 오물거리고 있었다.
‘방금 죽을 한 사발 드셨는데, 요즘 소화가 잘 되시나 봐요. 한바탕 또 싸시고는 또 금방 저렇게 입맛을 다시네. 아침에는 딸기도 다섯 알이나 자시고.. “
”그래도 저렇게 배고파하시는데, 양을 너무 줄인 거 아녜요? “
장 봐온 음식들을 냉장고에 부려놓은 아내가 방으로 들어서며 누이에게 말했다.
”줄이긴요 언니, 한 번에 자시는 양이 줄어 그렇지 횟수는 오히려 늘었다우. 그러니까 변비도 없이 이렇게 양이 늘었죠. 아이고, 우리 이모 하여간... “
생전 힘든 기색 없던 누이의 말투에 짜증이 묻어났다. 누이는 아내에게 숟가락을 넘겨주고 한 켠에 둘둘 말아 밀어놓은 이불과 변이 묻은 기저귀 등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구린내가 진동을 해서 아내가 숟가락을 든 채로 얼굴을 찌푸렸다.
어머니의 입가에 숟가락을 가져다대니 눈을 감은 채 입술을 오물거리던 어머니는 믿을 수 없는 흡입력으로 빈 숟가락을 핥았다.
”아이구.. 이렇게 배가 고파서야. 원...“
아내는 손주들에게 이유식을 먹일 때의 말투가 되어 된죽을 어머니의 입속으로 밀어 넣었다.
몇 번을 받아먹던 어머니는 숟가락을 뺀 후에도 계속 입을 쩝쩝거렸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그만 못 볼 것을 본 듯 무참해졌다.
”이제 고만 드세요. 순애가 너무 힘들어서 안돼. “
그때였다. 어머니가 눈을 뜨고 아내를 보았다. 초점이 완연히 서린 시선을 아내에게 주며 어머니는 천천히 팔을 들어 올렸다. 헐렁한 소매가 흘러내리며 옹이 진 막대기 같이 뼈만 남은 손이 허공에 잠시 멈추었다. 아내의 시선이 어머니의 손끝을 향했다.
어머니는 천천히 엄지손가락을 세웠다. 아내가 소리를 내며 웃었다.
”어머니 지금 나한테 엄지 척 하나 봐. 여보. 아이고.. 노인네 나 누군지 알아보나 보네. 어머니, 나, 당신 며느리, 최고라는 거죠? 후후.. 가~암사합니다...“
결혼 직후부터 45년을 어머니와 함께 산 아내의 세월이 그 엄지 척 한 번으로 해소될 리 없건마는, 아내도 이제 일흔이 넘은 노인이었다. 70년이면 곪아 썩었던 물도 자정 작용을 거쳐 맑게 고인 물이 되기도 하는 세월인 것이다.
저녁을 먹고 가라는 누이를 향해 손사래를 치며 아내가 차가 막히기 전에 올라가자고 서둘렀다.
”그래, 오빠. 저녁 안 먹을 거면 퇴근길 차 막히기 전에 얼른 출발하슈. 그리고 이번 주는 더 이상 오지 마요. 오빠도 힘들어..”
“오늘은 내가 모시고 잘 테니... 그러고 싶다. 너 오랜만에 편히 자라.”
나는 아내를 먼저 보내고 누이와 마주 앉아 간소한 저녁을 먹었다.
저녁을 먹고 누이는 다시 어머니의 똥을 치워야 했고, 속을 비워낸 어머니는 다시 입을 쩝쩝거리기 시작했다. 누이는 어머니를 아기처럼 달래 가며 죽을 조금 먹였다. 밤새 어머니의 기척을 살피느라 편한 잠을 자지 못하는 누이를 일찍 방으로 보내 쉬라고 하고 나도 어머니 옆에 누웠다.
눈을 감은 어머니는 편안해 보였다. 꽃무늬 파자마의 목둘레가 헐렁하여 옹이같이 툭 튀어나온 쇄골뼈와 그 아래 빗장뼈까지 마디마디가 드러났다. 작고 고르게 움직이는 가슴의 움직임을 따라 뼈들이 조금씩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었다. 그 미세한 움직임을 따라 나도 천천히 호흡을 맞추며 한참을 어머니를 쳐다봤다.
“이제 그만 가셔도 되잖아요....”
나는 아내가 싸준 보자기에서 작은 베개를 꺼냈다. 아내 모르게 내가 찾아 넣은 배냇 베개는 나의 첫 손주가 쓰던 것이었다. 베개에 코를 가져다 대니 보얀 분유 냄새 같기도 하고, 시척지근하면서도 달큰한 아기 땀냄새 같기도 한 냄새가 배어 있었다. 나는 천천히 작은 베개를 어머니 얼굴 위로 가져갔다. 고른 숨을 쉬던 어머니의 작은 몸이 살짝 크게 꿈틀.거렸다. 나는 잠시 그렇게 있었다. 이내 어머니는 편안한 표정이 되었다.
북적이는 어머니의 장례식장엔, 그 흔한 의례적인 곡소리 한번 들리지 않았다. 이십여 년 전 퇴직하고 작게나마 아직 사업체를 운영하는 나를 찾은 손님 몇을 제외하고는 거의 누이의 지인이나 먼 친척들, 용인 누이를 위시한 동네 노인들과 교회 지인들 이어서 장례식장은 온통 늙은이들로 버글거렸다. 그 사이를 아내와 딸, 며느리가 바쁘게 오가며 육개장과 편육, 도라지무침이며 김치나 맥주 음료 등의 음식이 떨어지지 않는지 살폈다. 먹고 마시고 왁자하게 떠드는 끝에 노인들은 부러운 듯 하나같이 같은 말을 했다.
“노인네 복도 많지 호상이네 호상이야..”
“자식들 다 잘 됐지, 손주 손녀들 줄줄이 자손 번성했지. 평생을 똑똑한 며느리 시중 받으며 호강만 하다가 어디 한 군데 아픈데도 없이 자식들 다 보는데서 자다가 눈 감았으니. 캬.. 이거야말로 모든 노인의 로망 아닌가요?”
“나 죽을 때도 우리 서울 할머니 같이만 갔으면 좋겄네.”
“형님은 어디 가서 죽었는지 살았는지 코빼기도 안 보이는 아들 새끼 먼저 잡아오슈. 세상 누가 이 집 아들, 며느리처럼 할까. 진짜 노인네 복도 많아.”
식당 쪽에서 들려오는 소음을 피해 소주를 병째로 들고 어머니 영정 사진 앞에 불콰하게 술에 취해 늘어져 있는 내게로 아들이 다가왔다.
“모두들 호상(好喪)이라고 하네요. 아버지.”
“호상이라.. 누가 좋을 호(好)인가. 죽어서 좋다는 호이냐.. 남은 사람에게 좋을 호이냐... 나중에 너, 나 죽어도 호상이다 잘 죽었다 할 거냐?”
“아부지도 참...우리 할머니 복 많은 노인이라고 그러시는 건데 뭘 그리 과하게 반응을 하세요.”
”나 죽으면 호상이다 조오타! 그래라. 이 후레자식아. “
나는 아들을 향해 주먹질을 했지만, 헛팔질을 했을 뿐, 아들 몸에 닿지도 않았다. 나는 소주병을 든 채 그대로 뻗어버렸다. 왁자지껄한 주위의 소리가 천천히 사위어갔다.
입춘이 지났지만 야외에 오래 서 있기엔 아직 추운 날씨였다. 작은 돌들이 줄줄이 늘어선 추모 공원은 멀리서 보기에 하얗고 까만 바둑돌들을 일렬종대로 박아놓은 듯 보였다. 봄, 여름, 가을엔 이곳에 묻힌 고인들의 가족 및 지인들이 가져다 놓은 꽃다발들로 화사해 보였겠으나 추운 겨울이라 꽃다발을 가져다 놓은 이도 별로 없고, 그나마 비석 앞에 널브러져 있는 몇 개의 꽃다발들도 밤새 추위에 얼다가 녹다가 하며 시들시들 갈변하여 볼썽사나웠다. 어머니의 비석을 둘러싼 가족들은 코가 빨개져 연신 콧물을 훌쩍였다. 아내는 콧물을 닦은 손수건으로 비석 위에 묻은 흙을 털어내고 그 자리를 문질러 닦았다. 모든 절차가 끝나고 헤어지기 전 나는 각각의 조의금을 정리한 봉투를 아우와 누이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가방 안에 봉투를 챙겨 넣으며 셋째 누이가 당부하듯 말했다.
”오빠, 진짜 나 오해하지 마요. 우연히 시기가 그렇게 된 거지 추호도 엄마 돌아가시기 바란 적 없수. 괜히 입 밖으로 냈다가 나 완전히 천하에 불효막심한 년으로 오빠한테 찍혔지 뭐유. 나 진짜 억울하다구요..“
“그래 알아.. 나도 진심으로 한 말 아니니. 담아두지 말아라.”
나는 어머니의 납골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흙을 다지고 있는 아우에게 말했다.
”너도, 이제 어머니도 안 계시고 한국에 나올 일 없겠구나. 아.. 나 죽으면 또 나와야 할라나. 내 장례식에는 안 와도 된다. 제수씨한테 안부 전하고. 집수리 마무리 잘하고. “
“형님도 무슨 그런 섭섭한 말씀을 하세요.”
”섭섭해할 거 없어. 다른 뜻 없이 내 진심이다. 큰형이랍시고 암 것도 해준 것도 없이 나 살기 바빠서 그 이역만리에서 고생하는 너 들여다볼 겨를도 없었다. 너 거기 갈 때 나 한참 힘들었잖냐. 내가 무능해 너한테 도움도 못 주고 면목 없다. 거기서 그만큼 자리 잡고 잘 살아주는 걸로 충분해. 진짜로 안 와도 돼. 나 죽고 없는데 너 왔는지 안 온 지 내가 알게 뭐냐. 쓸데없이 비행기 푯값 날리지 말고 니 가족 잘 건사하고 건강하게 잘 살어.”
3일장이 끝났을 뿐인데. 3년이 지난 것 같았다. 나는 목을 조이고 있는 검은 넥타이를 느슨하게 조이고 서재 의자에 깊숙이 앉아 눈을 감았다. 아니, 어머니가 용인 누이집으로 가신 후 방금까지의 3년이 불과 3일 전인 듯도 했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는지, 가늠할 수 없는 시간이 지나고 나는 이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김사장 나요. 대금 보냈으니 확인해 봐요. 내가 틀림없이 약속 지킨다고 했잖아요. 나하고 하루 이틀 거래했소? 아, 연락이 안 돼서 걱정했다고? 한 며칠 바빴어요. 어디 좀 다녀오느라고. 잘못되긴 누가 잘못돼. 그럴 일 없다고 했잖소. 차질 없도록 일 진행시키세요. 수고하시오. “
나는 전화기를 꺼버렸다. 전화기는 아득한 동굴 속에서 울리는 듯한 소리를 내며 죽어갔다. 그 소리에 섞여 문 밖에서 노크를 하는 아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 피곤해도 한술 뜨고 주무시지 그래요.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먹었잖아요. “
”생각 없어요. 좀 쉬고 싶네. 한숨 자고 나갈 테니 당신도 쉬어요. 고생 많았소. “
나는 옷장에서 베개를 꺼내 이불도 깔지 않은 맨바닥에 드러누웠다.
굵은 눈물이 툭 떨어져 나는, 그만 팔을 들어 눈을 가렸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