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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아 Oct 13. 2024

선악과의 맛



'찰스 다윈과 진화'에 대한 글을 읽던 장초딩의 질문.


"엄마는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했다고 믿어? 아님 다윈의 진화론을 믿어?"

"음. 엄마는 둘 다 믿어.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한 것도 믿지만 과학적 근거가 있는 진화론도 맞다고 생각해."

"일종의 하이브리드?"

"뭐.. 그렇다고도 볼수 있겠네. 너는 어떤 쪽이야?"

"나는.. 하느님을 믿긴 하지만 생물학적으로는 진화론 쪽에 한 표.  나는 T형 F거든. 기본적으로 감성 충만이지만 팩트를 중요시하는 거지."

"그래. 존중해. 과학적 진리도 중요하지."

"엄마, 엄마.  근데 나는 창조론, 진화론보다 더 궁금한 게 뭔지 알아?

"뭔데?"

"에덴 동산에서 아담이랑 하와랑 사과를 먹고 부끄러움을 알게 됬잖아? 근데 그 사과가 도대체 무슨 맛이었을지가 너무 궁금해."


여기서부터 이야기는 사과 맛으로 빠지기 시작하고...

또또또... 결국 먹는 얘기냐...

부족하게나마 내가 알고 있는 종교적, 과학적 지식을 총동원하여, 진화론과 창조론에 대한 열띤 토론으로 이 아이의 사고력을 넓혀주겠쒀!!

활활 불태우고 있는 에미의 열정에 찬물을 확! 끼얹는 장초딩.

그럼 그렇지.. 토론은 무슨...

목구멍까지 올라오려는 잔소리를 꾸욱 누르고 캄 다운... 워워....

그래...너의 눈높이에서 대화를 이어나가보자.


"음.. 글쎄.. 그게 무슨 맛이었을지는 엄마도 한번도 생각을 해본적이 없네. 근데, 요즘 먹는 사과랑 같은 맛은 아니지 않았을까?"

"엄마, 내 생각엔 말야. 한입 먹고 수치심을 느끼심을 느낄 정도면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맛'은 아닐 거 같거든?"

"그렇지..."

"음... 있지... 내가 영성체 받기 전에 그 동그랗고 납작한  빵 맛이 어떨지 너무 궁금했거든?  근데 막상 먹어보니 아무 맛도 없었어. 선악과의 맛도 그런거 아닐까?"

'와.. 요놈 봐라... 그럴 듯 한데??"

감탄한 에미.....


아이의 말을 듣고 생각해 보았다. 선악과를 먹은 후에 서로의 몸을 가릴 나뭇잎을 찾기 시작한 아담과 하와의 개안(開眼)은, 마치 세례를 받기 전 무지했던 우리가 세례를 받고 영성체를 처음 모신 후 세상의 진짜 선과 악, 참과 거짓에 대해 눈을 뜨게 된 것과 같은 게 아니었을까. 최초의 인류인 아담과 하와는 금지된 과실을 먹고 선과 악을 깨달아 원죄를 짓는다. 그렇다면, 거꾸로 하느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는 세례를 받고 처음으로 모시는 영성체는 세상의 기준과는 다른 참된 선과 악을 깨달아 그 원죄를 씻기 위한 '첫 한입'이 아닐까... 성경 공부를 제대로 해본 적이 없어 미천한 지식이지만 나름대로 하느님의 뜻이 뭘까.. 기도 속에서 사고의 폭을 넓혀본다. 수천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선악과의 첫 한입과 지금 현재 우리의 영성체의 첫 한입을 연결해 준 아이 덕분이다.  


"디게 맛있을 줄 알고 영성체 교리 열심히 받았는데 막상 먹어보니 밍밍하니 아무 맛도 안나서 완전 실망했잖아. 반죽할 때 설탕 좀 넣으면 안되나???"


방금 에미의 뒤통수가 띵~ 하도록 철학자같은 말은 하던 녀석은, 어느새 먹깨비 장초딩으로 돌아와서 영성체 빵이 무맛(無맛)이라 실망했다며 '설탕을 뿌리면 맛있을텐데..쩝쩝' 같은 한심한 소리를 하고 있다.


대체 너란 녀석의 스펙트럼이란....

코스터가 따로 없구나.

가끔은 엄마를 깜짝 놀라게 하는 예측불허의 너.

네 머릿속에 무변광대한 생각의 우주를 마음껏 탐험하렴.

잘 자라고 있어서 감사해.


사랑한다.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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