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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아 Oct 30. 2024

어떤 대화


"아내분이. 그렇게 가셔서 참 유감입니다. 벌써 한... 두달 넘었나요?"

"네..세 달쯤 되었습니다. 염려해주신 덕에 장례 잘 치르고 주위 분들 도움으로 서울 근교 납골당에 자리도 하나 잡을 수 있었습니다."

"한.. 2년...투병생활 하셨지요? 곁을 지키느라 못지 않게 고생하셨겠습니다. 00이도요."

"발견 당시 이미 뇌종양 4기여서 솔직히 이미 각오는 하고 있었습니다. 생각보다 오래 버텨준 것 같습니다.저보다..00이가 많이 힘들었을 겁니다. 지 엄마 병원비 때문에 학교도 휴학하고, 밤낮으로 아르바이트하고, 저 없는 동안에는 병실도 지키구요. 의식이 없는데도 그 녀석... 먹지도, 자지도 않고 지키더라구요."

"OO이가 누구보다도 엄마를 좋아했죠. 누구보다 충격이 컸을 겁니다."

"하나뿐인 아들 학교도 제대로 못다니게 하고, 밤낮으로 일만 시키고, 부모로서 참.. 면목이 없습니다."

"이제 둘만 남았으니, 서로 의지하고 사셔야죠. 그래도 학교는 마치게 하면 좋겠네요. 아직 앞날이 창창한 아이 아닙니까."

"네.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애비가 되가지고 ....오히려 OO이가 저보다 더 어른스러운 것 같아 마음이 아프고 미안해 죽겠습니다."

"모쪼록 건강 챙기시고,  간 사람은 간 사람이고 산 사람은 살아야지요."

"네.. 감사합니다. 정말...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죄송합니다.정말 죄송합니다. 제 아내가...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그래서 정말 죽어버리셨네요..." (아마 이 마지막 말을, 남편은 하지 않았을거다.) 




선하디 선한 나의 남편은,

우리 집을 이렇게 풍비박산을 내고

뇌종양에 걸려 결국 죽어버린 여자의 

남편과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고 전했다. 

여보 미쳤냐, 물으니,

마주앉은 그 여자의 남편에게 화를 낸다고 

달라질게 무어냐길래.

입밖으론 '당신이 성인군자요' 했지만, 

속으로는 '너 잘났다' 하고 말았다. 


나는 그녀가 암병동에서 투병하는 동안

단 한번도 가지 않았다. 

나 역시 그 기간 내내 한주먹 두주먹 약을 삼키며 제정신이 아니었기도 했지만,

정신이었어도 안 갔을 거다.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도, 

장례식장에도 물론 가지 않았다.

대신 그날부터 100일 묵주기도를 시작했지만,

그조차도 

절대로 그녀의 영면을 위한 것이 아닌, 

나의 평안을 위한 것이었다. 


당신을 그토록 믿고 좋아하던 나를... 

우리 가족을...

이 지경을 만들어놓고,

병까지 걸려서 

당신 머리채 한번 못잡게,

멱살 한번 못잡게,

따귀 한대 못때리게

중환자실로 도망을 치더니, 

그깟 뇌종양 하나 못이기고

영영 못잡을 곳으로 도망을 쳐?

당신이 그러고도 사람이야? 소리도 못하게 

이렇게 귀신이 되버려?


내가 너무 좋아하던 당신 아들이 눈에 밟혀서

차마 지옥가라 소리는 못하겠고,

편히 눈 감지는 말아주면 좋겠다.

당신이 나의 평안을 영영 앗아갔으니. 




아버지,

죄송합니다.

아직도 차마 나오지가 않습니다.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우리가 용서... 하듯이,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용서 안하면 저도 용서 받지 못한다 하셔도

어쩔 수가  없겠습니다.

아직은 그 소리가 기꺼이 입 밖으로 안나옵니다.

내 탓이요, 내 탓이요, 내 큰 탓이로소이다.

아멘. 



그림출처: Home - Art Renewal Ce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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