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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ylvia Apr 06. 2021

3. 사람의 정, 그 따뜻한 온도

비로소 마음의 벽이 무너져 내렸다

에레디아 (Heredia)에서 있었던 일주일이 후다닥 지나갔다. 하숙집 아줌마는 다른 건 다 좋았는데 음식에서 만큼은 참 인색하셨다. 나는 꼬르륵 소리에 일어나는 편이라 아침을 두둑이 먹어줘야 하는데 릴리아나의 아침밥은 항상 양이 부족했다. (음식에서 만큼은 진심인 편.) 더 달라고 하고 싶었지만 눈치가 보여 그냥 참기로 했다. 내가 조금 더 먹자고 가사 도우미에게 엑스트라 일을 만들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아침은 그냥저냥 넘어갔는데 저녁은 정말이지, 너무 정성이 없었다. 테이크 아웃 음식을, 그것도 별 맛도 없는 중국음식을, 대충 데워주는 것이었다. 차라리 나가서 사 먹는 게 더 좋겠다 싶었다. 그래서 아줌마에게 저녁은 챙기시지 않아도 된다고 하고 일주일 동안 어학원 친구들과 주위 레스토랑을 돌아다니며 저녁을 해결했다. (오히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서 결과적으로는 더 좋았다.)


에레디아를 떠나기 전 날, 딱히 혼자서 갈 곳이 없었기에 짐도 정리할 겸, 여행비도 아낄 겸, 일찍 하숙집으로 돌아왔다. 배가 출출해서 릴리아나 아줌마에게 저녁을 먹을 수 있냐고 물어보니 친척들을 다 초대한 대가족 저녁 파티가 있으니 와서 먹으란다. 스페인어도 제대로 모르는 상태에서 대가족 파티에 참석하는 게 뻘쭘해서 쿨하게 괜찮다고 했지만 내심 다시 물어봐 주길 바랬다. 한국인은 삼세판 아니었던가. 하지만 의외로 나의 대답에 아줌마의 미세한 안도가 느껴졌다. 나를 초대하고 싶다는 마음보다는 예의상 물어봤던 것이다. 그래도 저녁을 먹지 않았다고 했으니 따로 챙겨줄 거라 기대했는데 이런, 이것은 나의 오산이었다. 정말 괜찮다고 생각했는지 진짜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



내가 거절 해 놓고선 왜 괜히 화가 나는지. 배가 고파서 화가 나고, 소심한 내가 답답하고. 우이 씨, 나 배고팠는데 그냥 철판 깔고 가서 먹을걸. 결국 다시 나가 테이크 아웃을 시키고 방에 돌아와 혼자 밥을 먹었다. 뒷마당에서 들리는 화기애애한 웃음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먹고 있자니 뭔가 음식 때문에 나 자신이 비굴해지는 것 같았다.


홈스테이 학생을 가족처럼 대하는 것을 바랐던 건 아니지만 마음이 딱! 거기서 멈춘 것 같아 서운한 건 사실이었다. 어쨌거나, 릴리아나와 아쉽지 않은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다음 목적지인 싸마라 (Samara)로 향했다. 비치타운에 있는 어학원의 두 번째 캠퍼스였다. 걸어서 한 시간이면 온 동네를 다 돌 수 있을 만큼 작은 타운이어서 그랬는지 동네 입구에서부터 시골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도착하니 작은 체구의 할머니가 나를 반갑게 맞았다. 비치 입구에 위치한 곳에서 할머니부터 손주까지, 3대가 다 같이 모여사는 집이었다. 할머니가 릴리아나처럼 깐깐하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그건 쓸데없는 우려였다.


주인집 할머니 에밀쎄는 정이 흘러넘치는 분이셨다. 시골 인심이라는 것이 이런걸까.


할머니의 정은 그녀의 음식에 고스란히 나타났다. 첫 아침 식사 때 알았다. 삼시세끼 중 내게 가장 중요한 아침이 아주 푸짐~하게 나오는 것이었다. 꺄올! 나 로또 맞았구나! 에밀쎄 할머니의 아침은 그야말로 진수성찬이었다. 매일 과일, 단백질, 탄수화물이 적절하게 균형 잡힌 아침을 챙겨주시고 내가 물어보기 전에 더 먹어야 하지 않겠냐며 이미 두 번째 플레이트를 채워주시고 계셨다. (할머니 센스 최고!) 이렇게 정성 들여 준비한 아침을 내가 또 언제 먹어보겠냐며 진심을 다해 전투적으로 열심히 먹었다. (음식에 목숨 걸었냐..;;) 비단 아침뿐만 아니라 내가 점심에 집에 있는 날이면 식구들과 먹는 음식을 따로 내어 주시기도 하셨다. (떼 끼에로, 할머니~!) 그때 일기에 릴리아나보다 할머니가 밥을 많이 주셔서 엄청 좋다고 느낌표까지 팍팍 넣어서 써 놓기도 했다.


할머니의 정성이 듬뿍 들어간 음식을 먹을 때마다 냉기가 서렸던 마음에 봄이 오는 듯했다. 이별의 상처 때문에 타인에 대해 의심부터 했던 나였다. 가까이 오지 말라고 선부터 긋기 바빴는데 타인으로부터 관대한 친절함을 받으니 베를린 장벽처럼 굳게 서 있었던 마음의 벽이 조금씩 허물어져 갔다.


플란테인 (바나나 아님)을 기름에 볶아 먹으면 정말 꿀맛이다. 제일 좋아하는 중남미 음식.


코스타리카 아침 음식인 Gallo Pinto (가요 삔또: 검은콩 볶음밥). 계란과 치즈까지 균형 잡힌 아침식사를 매일같이 선물해 주셨다.


과일도 이렇게 정성 들여 깎아 주셨다. 아, 눈물 나. ㅠㅠ




여느 때처럼 아침을 먹으러 나온 어느 날, 고소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강아지처럼 킁킁거리며 냄새를 따라가니 부엌에서 분주히 열심히 무언가를 부치고 계시는 에밀쎄 할머니가 보였다. 궁금해서 할머니께 물었다.


"부에노즈 디아즈 에밀쎄~ 뭐 만드세요?"


"(방긋 웃으시며) 오늘 아주 특별한 걸 만들고 있지."


"왜 특별한데요?"  


"지금이 옥수수 철인데 이건 옥수수를 직접 갈아서 만든 또띠야거든. 마트에서 파는 거랑은 차원이 달라. 저기 집 앞 옥수수 밭 보이지? 저기서 따서 어제 반죽을 만든 거야. 일 년에 한 번씩 밖에 못 먹는데 마침 네가 여기 와 있네. 넌 정말 럭키 걸이야~"


큰 대야에 가득 찬 부침개 반죽 같은 것을 보고 있으니 불현듯 외할머니의 김치가 생각났다. 뜨거운 여름 태양 아래 고추를 말리시고, 잘 말린 고추를 방앗간에서 곱게 빻아 김치 재료로 쓰시던 할머니. 왜 이렇게 번거롭게 김치를 하시냐고 물으면 이렇게 해야 맛있다며 확고한 김치 철학을 알려주시기도 했다. 에밀쎄 할머니가 옥수수를 직접 재배하시고, 손수 갈아서 또띠야를 만드시는 것을 보니 할머니가 그리워진 것이다. 불같은 성격을 가지고 계시지만 먹는 것에 있어서 만큼은 항상 푸짐하셨던 할머니였다. 한국과 멀리 떨어진 타국 땅에서 몇십 년 만에 우리 할머니의 온기를 마주하게 되다니. 마음의 벽에 쌓였던 벽돌이 조금 더 무너져 내리는 게 느껴졌다.


에밀쎄 할머니는 겹겹이 쌓은 또띠야 타워에서 몇 장을 빼내 내 접시에 올려놓으셨다. 정월 대보름달 같이 동그랗게 잘 구워진 또띠야. 노란 보름달 앞에서 시각과 후각은 이미 난리 부르스를 치고 있었다. 기대를 가득 안고 크게 한 입 물었다. 고소, 스윗, 촉촉, 바삭. 캬~ 이것이 예술이 아니면 무엇이 예술이라더냐! 입 안에 가득 찬 또띠야의 향을 참지 못하고 작은 신음 소리를 냈다. 곱게 갈린 옥수수에 할머니의 정성도 함께 갈아 넣으신 걸까. 여러 남미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먹었던 또띠야 중 단연 최고였다. 아마 할머니의 정성이 묻어나서 그런 것 일테지. 이 또띠야에 우리 할머니표 김치가 있었으면 찰떡이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또띠야를 통해 두 할머니의 따스한 정이 동시에 느껴진 순간, 마음에서 우렁찬 소리가 들렸다.


두두 두두둑.



오랫동안 굳건하게 서 있던 베를린 장벽이 무너져 내린 것이다. 동독과 서독만큼이나 멀리 떨어져 있던 나와 타인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었다. 마음이 외쳤다. "나는 더 이상 시베리아 벌판에 혼자 있지 않아." 사람의 정이 이 정도로 강한 힘이 있는 것이었나. 지나간 옛사랑의 잔해와 어깨를 짓누르는 삶의 무개로 갈퀴 갈퀴 찢어져 있던 마음에 두 할머니의 따뜻한 온기가 시나브로 스며들었다.



매몰찬 바람이 불었던 내 마음속에 작은 꽃이 흔들흔들 피어오르며 수줍은 인사를 건네는 듯했다.  





인생 또띠야를 먹으면서 마음에 타인을 위한 공간 하나를 마련했던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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